brunch

매거진 Daily Grun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백스프 Oct 13. 2017

그래서 타블로의 진실은 밝혀졌습니까?

삶은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예전에 선거 관련 일을 할 때, 본의 아니게 관리계정으로 올라오는 ‘아고라 발’ 글들을 많이 봤다. 그 때는 세월호 사건이 막 터졌던 2014년 4월이었다.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국면 전환용 자작극이란 말부터 시작해서 잠수함 충돌설까지. 모든 설은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나름의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올라오는 거의 모든 설들을 의도적으로 믿지 않았다. 이야기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빈자리는, 누가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결론이 쉽게 달라질 수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이 사건과 관련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믿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조각난 사실 몇 개를 가지고 새로운 ‘확증’을 쏟아내는 근사한 이야기꾼들이 신기하긴 했다. 방향은 나쁘지만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실제로 스스로를 네티즌 수사대라고 일컫는 한 이는 잠수함 충돌설을 결론으로 하는 방대한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가 나온 이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은 이제 진실이 밝혀졌다며 수사당국의 무능과 정치권력의 부패를 탓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나온 이후 모든 설은 천천히 배격 당했다. 조각난 이야기 사이사이의 구멍들은 새로이 등장한 증거들에 의해 메워졌고 만 3년이 넘어서야 드디어 조금씩 ‘믿을만한’ 진실들이 나오고 있다. 뭐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때의 이야기꾼들이 쏟아낸 설들과 각 설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향했던 방향들이 적어도 어떤 개인의 삶을 직접적으로 파탄 내는 방향으로는 향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그 때보다도 좀 더 몇 해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잘남’이 주요 마케팅이었던 가수 타블로는 학력위조사건에 휘말렸다. 그가 명문대에 나왔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꽤나 오래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얼마나 시끄러웠던지 주요 뉴스는 물론 방송사에서까지 심층 취재를 했다. 타블로는 증거를 계속해서 들이밀었지만 그를 의심하는 이들은 또 다른 ‘의심’을 들고 나오며 해명하라고 했다. 잇단 해명에 타블로는 지쳐버렸고 자신의 일상이 파괴되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 방송에서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 라고 말하며 서럽게 울었다.     

떠오르는 사건들은 더 있다. 2012년 강용석 변호사를 시작으로 병역비리 의혹을 받게 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녀 박주신씨는 ‘공개 MRI촬영’이라는 강수까지 두며 해명했지만 여전히 의심은 꼬리를 물었고 수많은 의심의 정황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것들은 조작된 것이었고 어떤 것들은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반박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모든 게 해명되기 전까지는 박주신의 병역비리는 사실’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지금도 박원순 시장과 관련한 기사 에는 박주신의 재검을 요청하는 댓글이 달린다.     


최근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故김광석 씨의 자살이 사실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는 몇 가지 결핍된 사실과 김광석 씨 부인의 평소 행실을 엮어 용의자를 만들어냈다. 서해순 씨는 이에 대해 조리 있게 해명하지 못했고 의심은 증폭되었다. 그의 사생활은 하루가 멀다 하고 까발려졌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 익숙했지만 의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개인을 조금만 상상해보자면 참 끔찍한 일이다.     



결국 故김광석 씨와 그의 딸에 대한 부검감정서가 등장했다. 서해순 씨를 향한 의심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실한 증거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것은 서해순 씨의 불륜이나 사생활, 그리고 그의 재산에 대한 정당성이다. 이제 2라운드는 어떻게 흘러갈까? 그래도 욕먹어도 싸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아니면 남은 의심들이 풀리기 전까지는 유죄라는 확신일까?     


나는 타블로씨와 박주신씨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서해순 씨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서해순 씨가 질이 나쁜 사람이라며 떠든다. 하지만 쉽게 변할 수 없는 게 있다. 서해순 씨를 처벌로 이끌 수 있는 근거는 그의 평소 생활이나 개인의 윤리관 같은 게 아니라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처벌에 이르지 않는 작은 의심과 비난들이 오로지 한 개인을 향해서만 몰려들었고 개인의 삶은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이에 대해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언급했던 이전의 사건에서, 의심을 했던 많은 이들이 반성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반성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의심에 몰린 자가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 때 아고라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정의감과 확신에 차있었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정의감은 자신의 유희를 예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단 의심이 들었다. 요새는 그 의심이 점점 더 확신으로 변하고 있다. 누군가의 유희 때문에 한 사람들의 삶은 종종 파괴된다.

백스프 소속허프포스트코리아 직업기자
구독자 2,855
매거진의 이전글 볼빨간사춘기는 진짜 7,000만원만 벌었을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