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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용구 Mar 08. 2024

연구자로 살아남기

(상편) 진심으로 연구하기 싫다.

    수요일 26시 30분,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자고 공저자 형에게 말한 뒤, 나는 몸만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엉망인 집안 꼴을 쓱 쳐다보고는,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더미에서 냄비와 젓가락만 건져 씻은 뒤 라면 물을 앉혔다. 외투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워 눈을 잠시 감고 있다가, 물 끓는 소리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뒤통수는 베개가 건네는 수직항력을 계속 느끼고 싶다며 강하게 저항했다. 5분 만에 라면을 끓여 다시 5분 만에 먹고, 다시 싱크대에 더러운 그릇들을 복원시켜 놓았다. 샤워를 했다. 뒤질 것 같아서. 뜨거운 물로 머리에 엉겨 붙은 피로를 씻어낸 다음, 거울을 보니 씻은 것이 무색하리만큼 초췌한 내가 있었다. 면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며칠째 미뤘었는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찌 됐든, 논문 제출일 전날이니 몸을 단정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연구실로 돌아온 것은 수요일 30시. 논문 제출 마감까지 딱 24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수요일 50시, 그러니까 금요일 새벽 2시. 결국 더는 견디지 못하고 논문을 제출한 뒤 퇴근을 했다. 마감 시간인 새벽 6시까지 계속 이걸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 검토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멀쩡해 보이는 문장들이 오류가 있어 보이다가. 괜찮다가. 그냥 괜찮은 걸로 할까 싶다가. 아무래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닥쳐, 요즘 나의 최선은 이 정도 된다. 함께 고생한 형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닥이 고르지 못해서 타고 있던 자전거 핸들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이라면 분명 죽겠지. 그럼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다.


    오해하지 마라. 조금의 자조 섞여있는 농담일 뿐이니까. 이틀 동안 잠을 전혀 안 잔 것도 아니고, 논문을 낸 후에는 후련함도 분명 느꼈다. 한숨 자고 난 지금은 이제 눈앞에 당장의 사선(deadline)이 없다는 사실에 기쁠 따름이다. 2주 후에 동아리 MT도 가고 (그걸 님이 왜 가요;;), 4월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무려 5박 6일의 일본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대한 교수님의 허락도 받았다 (18일 입소합니다 ㅂㅂ). 마음이 아주 명랑하다. 그런데 다만, 어제 제출한 논문에 대한 어떤 애정 어린 성취감이 있지는 않다. 그냥 하나 해치웠다. 이야, 총알 한 발 장전했다. 굿 럭, 제발 accept길만 걸어라. 이런 막연한 응원만 보낼 뿐, 벌써 옛일 또는 남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고백하면 제출한 후로 파일을 다시 열어보지도 않았다. 놓친 실수 하나를 마주하면 멘탈이 터질 것 같아서.


    그래, 이것도 사실은 과장이다. 왜 애정이 없겠냐, 지난 몇 주의 노력이 들어간 작품인데. 이런 말 하면 함께한 공저자들한테 실례다. 다만 완성한 14페이지의 논문(*참고문헌 제외)을 바라보면, 그것이 호크룩스, 그러니까 어느 비극과 죽음의 사연이 있는 내 영혼의 조각 같아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연구하기 싫다. 으레 하는 귀찮아, 출근하기 싫어, 이런 말이 아니라. 그냥 연구라는 행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구하기 싫어"라고 진심으로 입 밖으로 낸 것은 며칠 전이 처음이었다.


S기업에서 연구실에 채용 설명회를 열어주었다. 학교 단위도 아니고, 우리 연구실만 위해서. 고작 네다섯명의 학생들을 위해서 대전까지 내려온 채용 담당자분들께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도 받았다. 만원도 아니고 2만원짜리였다. 역시 대기업... 샘 습 숭 배. 그런데 몇 개 부서의 채용 설명회를 들으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어떤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나, 졸업하고도 연구하고 싶은 거 맞아? 그런 생각을 분명, 대학원 들어올 때는 하지 않았다. 연구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5년 전의 나였다.


만약 내가 S기업에 취업하게 된다면, 나는 분명 연구 부서로 입사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막 몇 개씩 뽑아낸다면 해외 기업 취업도 하고, 포닥(post doc.)을 해서 교수 임용도 노려보고 했겠지만. 어림없지 ㅋ 그래, 취업해서 조용히 녹봉 받아먹으며 연구나 하자~ 라고 생각했었다. 운이 좋다면 회사에서도 논문 실적을 계속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잘 풀리면 그러다가 또 교수가 될 수도 있겠지. (실제로 S기업의 모 부서는 "교수사관학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이미 가있는 연구실 선배도 몇 있고, 회사 위치며 이름값도 괜찮겠다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었다.


그런데 정작 채용 설명회에서 가장 내가 많은 매력을 느낀 부서는 다름 아닌 사업 부서였다. 그러니까, 당장 내년에 발표될 기업의 제품에 적용될 기술을 개발하는 부서였다. 매년 발전하는 휴대폰 카메라 성능, AI를 활용한 새로운 기능. 이런 것들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부서가 일하면서 보람 느끼기에도, 재미 느끼기에도 제법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채용 담당자분의 설명에서도 한 부분은 명확했다. 우리는 연구를 하는 부서는 아니다.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석박사 등 인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개발하고 구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지 논문을 쓰며 개인의 학술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전 같았으면 '개인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겠구나 하며 아쉬워했을 법 부분인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냥 그렇겠지, 그게 뭐 어때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길이 열리면 그걸 걷는 사람도 있어야지. 누군가는 이 거대한 수레바퀴에 작 톱니바퀴 하나는 되어야지. 오히려 세상과 동떨어진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만의 벤치마크에서 의미 없는 숫자 경쟁하는 사람들보다,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어차피 다, 돈 벌자고 하는 일 아니냐? 사실. (사업부서가 연구부서보다 성과급 더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도 매력 어필에 한 몫함.)


갑자기 실사구시의 정신을 버리고 이용후생, 경세치용을 외치는 나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졌다가. 그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 내가 학문의 길을 좇을 거였으면 진작 전자과, 전산과 대신 물리학과를 갔겠지. 잘하지도 못하는 거 하겠다고 고집부리다가 대가리 깨지고 주위에 폐 끼치고, 그런 거 멋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니까 더욱 깊어지는 고민. 나, 계속 연구를 해야 하나? 이 짓을?



현자타임에 쐐기를 박은 것은 다시 며칠 전의 술자리에서였다. 친애하는 잔디와의 보름팟. (나에게는 7년째 음력 15일마다 술잔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 무려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야, 학회 제출을 2주도 남기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 녀석에게 위의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어차피 다 의미 없는 일인데 말이지. 내가 밤새고 몸 상해가며 논문을 만들어봤자, 그게 붙을지 말지는 또 모르는 일이고. 이것이 붙는다고 내가 세상에 대단한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야. 인용수 몇 개 늘겠지. 아마 나보다 잘난 방법을 만들었다고 '옛날에 있었던 시도' 사례 정도로 내 논문을 소개하겠지.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야. 뭐 당장은 졸업이 걸려있으니 절박해지고 구차해지고 하는 건데, 내가 박사를 따고도 평생 이 지긋지긋한 짓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열심히 했는데도 실패했다고 비참해하고, 논문 붙었다고, 그 익명의 리뷰어의 인정에 기뻐하고. 이런 거 자체가 비참한 삶 아닐까?"


이런 말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또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 논문을 못 써서 괴로워하고. 논문을 써야만 어떤 성취를 느끼며 나의 가치를 느끼고. 그런 구조 자체가 불행하게 살기 위한 맞춤형 시스템이다. 나의 행복은 나의 성취와 별개여야지. 꼭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선보이는 사람이어야만 행복할 자격이 있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삶이더라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소모하는 즐거움, 그러니까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그런 원초적인 행복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애초에 나는 왜 연구라는 행위를 내 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 업에서 존재의 가치를,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직업이 꼭 업일 필요는 없다, 돈을 벌고 생존하기 위한 수단. 소모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내 최소한의 책임. 그거면 사실 되는 거였다. 하, 애초에 대학원을 왜 왔을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뭐 대단한 연구를 해내겠다고. 의미도 없고 보상도 드문 이 연구라는 짓거리를 내 명운이 달린 일처럼 목매고 있을까.


잔디는 이런 나의 말을 들으면서 어떤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얘 왜 이렇게 고장 났어?" 같은 말만 하면서, 수화기 너머에서 본인 술만 열심히 먹었다. 넌 대학원 안 갔잖아, 일 하는 건 어때 재밌니. 뭐, 재밌진 않지. 그치, 일이 꼭 재밌을 필요는 없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살잖아. 맞지. 맞지.


아. 그날은 정말. 사실 멀리에서도 시간을 내주는 잔디 덕분에, 또 다가오는 학회에 논문 제출은 가능할 것 같아서, 처음엔 기분이 꽤 좋았단 말이지. 그런데 푸념을, 엄살을 늘어놓다 보니. 그 위악처럼 쏟아낸 자조의 말들이 어느 하나 거짓 아닌 것이 없어서. 나는 진심으로 고장 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쯤에서 글 잠깐 쉬어갑니다. 절망 엔딩으로 마쳐서 미안한데요, 사실 뒤에 어느 정도의 정신 승리는 해낸 상태입니다. 다만 논문 제출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서 좀 피곤할 뿐임. 후편은 조만간 쓰겠지만, 공감이나 위로나 조언이나 응원이나 뭐든 다 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단 논문 낸 거 축하부터 해주세요~ 대단한 일 해낸 것 같은 착각이라도 받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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