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나답게 살아내는 일
차가운 계절이 문턱을 넘어오면, 어김없이 마음 한구석에 고요한 질문 하나가 생겨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창밖의 나뭇잎들은 이미 제자리를 떠났고, 가지를 비운 나무는 홀연히 청초하게 서 있다.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쓸쓸하지만, 어쩌면 온전하게 완성이 담긴 장면이다. 할 만큼 제 역할을 다했기에,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자연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은 무심하면서도 따스하다. 모든 생이 품은 당연한 연결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쓸쓸한 바람결은 끝에 대한 생각을 불러온다. 그 끝은 사라짐이라기보다 완결이다. 생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끝이 있기에 삶은 더 반짝인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이치가 조금은 아프지만, 그 아픔이 나를 깨어 있게 한다. 모든 인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만남을 얼마나 귀하게 만드는지 일깨워준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순간임을 알게 된다.
삶은 끊임없이 흐르고, 또 인간은 그 흐름 위를 건넌다.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있다. 단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존재하는 삶. 단지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자각하며 살아가는 일. 루소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의 일상을 흔든다. 사실 어떤 행동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어떤 마음으로 나를 증명하고 있는가의 물음이다.
삶의 품격은 자각에서 시작된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삶은 텅 빈 껍데기처럼 가볍다. 밥 한 그릇을 지으며,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며, 작은 선택 하나를 할 때조차 마음을 담아내는 일. 그런 삶은 자연스레 온기를 품게 된다. 그 온기는 또 다른 이에게 스며들어 오래 기억된다. 자각을 하는 것은 사람의 생을 품위 있게 붙드는 조용한 힘이다.
흔히 인간은 성취와 행복을 따라가며 허둥거린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진정한 행복은 자기 존재의 목적에 충실할 때 찾아오는 내면의 평화다. 자신이 가진 본성대로 진심을 다하고, 그 진실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요한 기쁨.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행복이다. 그렇기에 바깥의 소란함보다, 내면의 결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명예는 한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또 부는 언제든 흩어질 수 있지만 진심과 진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의 향기가 되어 세상을 감싸고, 또 사람 곁에 오래 머문다.
세상에 남는 것은 마음뿐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지낸 한 사람의 흔적은 또 다른 이들의 가슴에서 온기를 만들고, 그 온기는 다시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마음의 연결은 절대 가볍지 않은 고귀함을 남긴다.
삶은 무상하지만, 또 찬란하다. 봄엔 꽃이 피고, 여름엔 나무가 자라고, 가을엔 열매가 익고, 겨울엔 고요히 숨을 고르듯, 인간의 삶 또한 그렇게 계절을 닮아 순환하고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다. 품위는 비싼 옷이나 높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지키고 신뢰를 나누고, 다른 이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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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뭘까. 아마도 의미를 가지고 의식 있게 살아가는 일이다. 거짓 없고 굴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답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의미를 완성한다. 늦가을 햇살 아래 작은 낙엽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다 조용히 땅으로 내려앉는다.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조차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잎이 생의 모든 계절을 진심으로 성실히 지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