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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Feb 25. 2022

버거킹이 싸다고?

Price: 가격 설정과 포지셔닝


육즙이 흐르는 고기, 신선한 양상추, 잘 구워진 빵, 비장의 소스와 함께 들어가는 치즈, 토마토, 양파 등의 풍부한 토핑. 아무리 뱃살의 주범이자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해도, 먹음직스러운 자태와 없던 식욕도 만들어내는 냄새를 거부하고 햄버거를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햄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햄버거가 고기, 야채, 빵이 적절히 조화된 완전식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지요. 살을 빼기 위해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햄버거만은 버리지 못해 콜라와 감자튀김 대신 블랙커피와 샐러드를 햄버거와 함께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겨우 음식을 먹기 시작한 두세 살짜리 어린이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아저씨까지 누구나 맛있게 즐기고, 때로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음식이 바로 햄버거이지요.


이렇게 인기 있는 음식이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 햄버거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햄버거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얼마 전부터는 햄버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유행하는 셰이크쉑 같은 버거 체인점들도 속속 한국에 진출하고 있지요. 셰프가 직접 개발한 훌륭한 맛을 내세운 수제버거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햄버거 가게가 있지만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 가장 일반적인 햄버거란 어느 번화가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롯데리아, 맥도널드, 그리고 버거킹일 것입니다. 그리고 롯데리아가 가장 저렴한 편이고, 맥도널드가 중간, 버거킹은 조금 비싸다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지요. 버거킹은 프리미엄 햄버거집답게 직화구이 패티의 향과 큼지막한 와퍼 사이즈가 만족스러운, 비싸더라도 제 값을 하는 햄버거라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버거킹의 햄버거 가격은 정말 비싼 걸까요? 사실 버거킹은 최근 들어온 새로운 햄버거 체인이나 수제버거에 비하면 저렴한 편에 속하는 가격입니다. 햄버거집들을 모두 가격순으로 줄 세운다면 분명 저렴한 그룹 안에 들어가겠지요.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가 늘 생각하던 버거 가격의 기준이 갑자기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대체 적절한 버거의 가격은 얼마인 걸까요? 버거킹의 가격은 정말 저렴한 걸까요?


그 비싼 버거킹이 '사딸라'라니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것 같지만, 똑같은 햄버거인 맥도널드는 원래 사딸라입니다.


프리미엄이기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 비싸기 때문에 프리미엄이다

잘 생각해보면 ‘싸다’, ‘비싸다’라는 개념은 결국 상대적인 말입니다. 만약 세상에 다른 무언가로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어떤 상품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에 어떤 가격을 붙여놓더라도 싸거나 비싸다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요. 우리가 사실 통상적으로 버거킹을 약간 높은 가격대의 프리미엄 버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맥도널드를 무의식 중에 버거 가격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업계나 상품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소비자들은 상품에 붙어 있는 절대적인 가격보다 학습된 평균적인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특정 상품을 비싸거나 싸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알게 되면 그 상품이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갖고 있는지 다른 상품과 비교하며 판단하기 시작하지요. 이때 소비자들은 중립적인 요소도 자연스럽게 가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합니다. 사실 냉철하게 따져보면 와퍼가 빅맥보다 비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와퍼가 크긴 하지만 빵 세 개와 고기 두 개를 넣은 빅맥이 원가는 더 비쌀 수도 있지요. 고기를 그릴에 굽던 오븐에 넣었던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사이즈가 커서, 토마토가 있으니까, 그릴에 구웠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약간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 불만을 품지 않습니다.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은 저렴한 기호상품일수록 더욱 자주 일어나지요. 즉, 소비자는 냉철하고 계산적으로 상품을 하나하나 따지며 가격이 정당한지 계산하기보다는 기준이 되는 상품과 다른 특별한 점을 찾아내고 그것에 부가가치를 부여하며 가격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은 단순히 우리 상품에 비싼 원재료를 사용했다든지 혹은 좋은 디자인을 사용한 것만을 바탕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실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시장의 경쟁자들과 대체재의 가격인 것이지요. 시장의 주요 경쟁사들과 우리의 가격을 비교하면 우리가 시장 안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포지셔닝을 하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우리의 포지셔닝을 바탕으로 판매 전략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 것이지요. 경쟁사보다 가격이 높다면 소비자들이 그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매력적이고 특별한 상품의 특징(USP: Unique Selling Points)을 더욱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상품의 USP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하다면 상품을 다시 디자인하거나 혹은 가격을 재조정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소비자를 최종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가격, 상품,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것을 통해 완성되는 가치제안이 하나로 완성되는 흠결 없는 스토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햄버거는 품질 좋은 쇠고기만을 엄선하여, 최고의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그릴에서 굽고, 수백 번의 실패 끝에 찾아낸 황금 레시피를 사용한 소스에 신선한 채소를 올려 완성하였다는 멋진 스토리가 우리의 가치제안이 되는 순간, 소비자들은 경쟁사보다 높은 가격을 흔쾌히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준을 만들고 소비자 통제하라

이렇게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행동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닌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것을 감안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전략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고 가치를 따져보며 살지 말지 금세 판단하지만, 가격이 싼 지 비싼지 모호하고 알기 어려운 상품은 힘들여 이유를 이해하거나 비교대상을 찾지 않고 그냥 외면해버립니다. 그렇기에 가격 비싸면 적게라도 팔리지만 가격이 비싼지 싼지 모르겠는 경우에는 아예 구매 고려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지요. 상대적으로 생소한 상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경우, 혹은 가격에 대한 접근 방식이 색다른 경우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이럴 때는 가격에 대한 기준점을 직접 제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요. 이제는 수없이 많은 경쟁사들이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는 OTT 시장이지만, 수년 전 넷플릭스가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만 하더라도  OTT 서비스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채널이 있는 케이블 TV만큼 다양한 것은 아니지요. 라이브 채널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DVD 대여점이나 다른 플랫폼에서 필요할 때만 대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즉, 넷플릭스라는 서비스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소비자들로서는 판단하기가 애매했던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현명하게도 소비자에게 세 가지 가격 옵션을 제시하였지요. 상, 중, 하가 주어지면 좋은 기준점이 생기게 됩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대여점에서 몇 번은 빌릴 돈인데 비싼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중간 가격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무료 기간도 있으니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한번 테스트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저항감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기준점을 바꾸어 소비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전략을 쓴 것이지요. 


고급 생수로 유명한 에비앙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비앙은 시장의 다른 생수 상품과 비교하면 매우 비싼 물이지요. 선뜻 손을 내밀기에는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도 않고 기준이 되는 다른 좋은 국산 생수 상품들과 비교해도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비슷한 상품이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볼빅 생수도 에비앙과 같이 유럽 알프스에서 온 고급 생수입니다. 게다가 에비앙과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지요.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에게는 새로운 기준점이 생깁니다. 알프스에서 온 생수들은 보통 저 정도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거리도 멀고 알프스 물도 깨끗할 테니 다들 그렇게 비쌀 만하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비싼 물이라니 한번 정도 마셔볼까 하며 지갑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에비앙과 볼빅은 모두 다농이라는 회사에서 만드는 형제 상품이니, 어느 쪽을 구매하더라도 회사로서는 문제 될 것이 없겠지요. 


사실 물은 제주도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알프스에서도 얼마든지 공짜로 떠 마실 수 있습니다. (사진: 인터라켄, 스위스 관광청)


혼자 있을 때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비교할 다른 숫자가 함께 있을 때만 큰 숫자인지 작은 숫자인지, 얼마나 많고 적은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써 기능하기 시작하지요. 가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격을 설정하고 시장에 나가는 순간 소비자는 그 가격을 기준으로 우리 상품의 가치를 어림잡아 측정하고 다른 상품과 비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교에 대응할 작전을 미리 세워 두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경쟁상품과 비슷한 가격을 설정하여 무난한 상품이 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슬쩍 높은 가격을 제시하여 경쟁 상품보다 좋은 상품이라는 것을 넌지시 이야기할 수도 있지요. 낮은 가격을 제시하여 경쟁사를 따돌릴 공격적인 판매전략을 전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 어떤 전략을 세웠든, 소비자는 여러분의 가격을 시장의 다른 상품과 비교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격은 어떤 상품과 비교될까요? 그 경쟁상품을 누르고 소비자를 설득시킬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혹은 아무 데도 비교할 곳이 없어 오히려 외면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비교되기 위해 태어나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시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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