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깜빡 속았수다!
"영범이가 어쩌면 그래, 금명이를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하고 그 엄마는 어떻게 또 그러나 몰라."
한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식지 않았을 때다. 나는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워낙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릴스, 쇼츠로도 자주 봐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극 중 등장하는 금명과 영범은 서로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이지만 콧대 높은 영범의 집 어머니 때문에 수없는 좌절을 느끼게 된다. 영범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만 잘난 것처럼 금명을 무시하고, 금명의 집안과 부모님까지 무시하며 더 이상 사랑으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자존심을 짓밟았다. 결국 둘 사이는 금명의 부모님까지 무시하는 어머니 때문에 이별에 이르게 된다는 안타까우면서, 가슴 아프고, 분통 터지는 스토리다.
드라마의 열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자주 이야기가 언급됐는데 그날도 그랬다. 일 때문에 우연히 갔던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60대쯤 돼 보이는 세 명의 어머니 그중에서도 한 분이 목소리를 한껏 높여가며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히 금명과 영범에 대해 자기 일처럼 분통을 터트리며 영범의 어머니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쁠 수 있는지를 거듭 이야기했다.
"금명이가 정말 불쌍해 죽겠어. 그 엄마는 대체 아들 인생에 왜 그렇게 끼어드는지 모르겠다니까~"
금명의 입장에 몰입하며 두둔하는 것을 보며 그분도 시댁에서 꽤 차별받았던 아픔이라도 있는 걸까 어렴풋한 짐작도 해보았다. (그런 상상이 들 정도로 깊이 몰입해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옆 테이블 어머니의 힘들었을 시집살이를 상상하며 안타깝게 여긴 것도 잠시, 한 통의 전화로 나는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 금명의 편을 들며 못된 영범이 어머니를 비난하고, 자신감 없는 영범이를 못났다고 말하던 그분...
"여보세요? 아들 집에 있거나 공부하러 갔겠지~ 뭐? 무슨 여자 친구, 그 여자애가 자취방을 왜 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 걔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남편 또는 삼촌인 듯한 전화 속 남자가 아주머니 아들의 자취방에 갔나 보다. 그리고 아마도 여자 친구를 마주친 것 같은데... 나는 순간 영범이 어머니가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다. 여자친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차갑게 변하는 목소리와 매섭게 치켜뜨는 눈...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하면서 아들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은근한 불쾌감을 드러내다가 전화는 끊어졌다. 함께 있던 아주머니들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나까지 괜히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아들 집에 가봐야겠다."
마침 갈 때가 되었다며 아주머니들은 서둘러 일어났고,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를 목청껏 하던 아주머니는 아들 집에 가보겠다며 영범이 어머니가 빙의한 듯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영범이 어머니처럼 여자친구를 불러 자기 아들보다 얼마나 못났는지를 되짚어 주었을까? 아들에게 되지도 않는 여자를 만난다며 혼을 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 아주머니는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영범의 어머니에 한 번도 자신을 비춰보지 않았을까? 인간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제 눈에 대들보를 두고도 남의 눈의 티끌만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