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편 - 2
생존기술 커리어편 1 - https://brunch.co.kr/@rachelbrunch/3.
3. 퇴근 후부터가 진짜 시작
아무도 모르는 자발적 야근 (a.k.a. 나머지 공부)
오버타임은커녕 무조건적인 정시퇴근을 장려하던 우리 팀이라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정시보다 30분이나 더 앉아있다가 가는데도 왜 벌써 가냐며 핀잔을 듣기가 일쑤였기에, 그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문제가 생겼다. 칼퇴를 하면 내 일을 다 끝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일 자체가 억지로 랩탑을 덮고 퇴근하지 않으면 일이 영영 끝나지 않는 특성이 있긴 했지만, 내 포지션은 더더욱 법정 데드라인에 민감했기에 마냥 덮어버릴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비원어민이다 보니 남들이 5분이면 끝낼 일도 두 배, 세 배가 걸리기도 했으니 어쩌면 자발적 야근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이 일을 빨리, 많이 해치워야 한다는 한국식 압박감에 오후 4시 30분이던 퇴근시간이 나에게만 오후 9시 혹은 10시가 된 적이 수없이 많았다. 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나 운동, 다른 볼 일 등등을 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고,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일만 하느라 한국이랑은 별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자란 내 영어실력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자괴감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밀려왔다.
꽤 오랜 기간 자발적 야근생활을 하던 중, 더 이상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스스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시작한 야근이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번아웃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차근차근 야근 시간과 빈도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8시, 7시, 6시 반… 일이 익숙해져서일까. 다행히도 야근시간을 줄였지만 더 이상 일이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았고, 그래서 이전처럼 살인적인 야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포지션을 거쳐간 동료로부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내 포지션 자체가 야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업무량을 가진 자리였다는 것이다. 내 능력과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확인 받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부족한 지식 채우기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을 영어로 하려니 여간 따라가기 힘든 게 아니었다. 그들의 법령/규칙 체계는 물론 학교 내부 규정과 관련 용어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매일매일이 챌린지의 연속이었다.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계획부터 세웠다. 먼저, 홈페이지에서 우리 오피스 전체의 subject areas 부터 각종 리소스, 가이드라인까지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주 정보공개 및 개인정보보호 법령도 살펴보았고,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 해당 법령 혹은 직무의 태동이 되었던 유럽의 GDPR까지도 훑어보았다. 관할 위원회(우리나라로 따지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온라인 무료 강의도 들어보는 등 내가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은 거의 대부분 해보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어떻게 이 법률이 작동하고 어떻게 우리(나와 우리 팀)가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무엇보다 이 분야에 대해서 더 알고, 공부하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공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니 일 외적으로도 꽤나 많은 경험들을 하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각종 운동부터, 모임, 테라피, 취미 등등.. 다음 편에서는 커리어 관련 외에 어떤 노력과 활동들을 했는지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