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덕중, 2010
담벼락에 그어진 낙서를 보았어?
현수막들, 꽁초들, 타버린 연기 위에 새겨진 이름들
바람은 귀를 통해 들어와, 이빨은 빈집의 가구처럼 덜컹인다
혀는 말라버린 껌
술을 따라내며 욕을 퍼부었지
쉽게 사랑을 했었는데 말이야, 취해서 소릴 지르고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다,
배에는 개새끼를 키우고, 양복을 차려입고 법학도처럼 안경을 쓰고 다녔지, 미친 새끼
말끝마다 씨발 거리면서 죽도록 패 놓고도 죽도록 사랑한다 소리치고
다 떨어지면 소용없는 것들, 떨어지면
흘러 없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루면
하는 일 없이
유효기간 지난 누런 이력서
말 못 할 꿈을 꾸다 잠들고 아침이면 침대 끝에 앉은 너에게 행패를 부렸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꿈들을 대단한 비밀인냥 여겼다
점심엔 돌 같이 차가운 밥
저녁엔 길가를 쏘다니며 여자들을 훔쳐보았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차들, 하루 종일 집 앞을 지나가
행선지 모를 버스는 자꾸 내 앞에서 큰 입을 벌린다
너의 웃음소리가 하루 종일 하늘에서 떨어졌다
머리카락들이 엉켜서는 공처럼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나는 그걸 공처럼 말아 쥐고 싶었다
바닥난 향수병과 날짜 지난 반찬 냄새가 방안을 걸어 다닌다
고양이 오줌 같은 냄새
절벽 위에 세워진 요새 같이 계단 위에 서있는 벽들
떠나간 연인들은 하나 같이 이 계단을 세면서 내려갔겠지
나쁜 새끼, 미친놈, 개새끼
오후에는 양파를 썰다가도 죽여버릴까 칼을 쥐었겠지
그러다 물이 끓으면
그러다 주전자가 소리를 지르면
창을 타고 오르던 서리들 점점 어두워져
말이 없어진 거실에는 보일러 소리만 요란하다
담벼락엔 또 누가 낙서를 하고 갔는지
옷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하얀 흔적들
하얀 겨울
서리는 행인의 발치에 바스락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