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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덕중 Nov 08. 2020

결행의 밤






“그것들은 조금씩 들려왔어요. 일상적인 밤들... 어둠 속으로 들어간 침실, 거기 누웠을 때 들을 수 있는 것들이죠. 고요 속에서야 비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소리들, 고요한 밤이었기에 그런 것들을 들을 수 있던 것이었을까요? 고독이 주는 민감함 때문이었을까요? 누군가 고독은 피부 끝에 머무는 예민함 같은 것이라고 했던게 기억나요. 잠을 방해하는 그런 민감함, 털처럼 피부 끝에 서있는 것, 이해하죠? 그것들을 씻어내려고 가끔은 음악을 듣곤 했었요. 그래요, 가끔 그랬던 것처럼 나른한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에 맞춰 느리게 춤을 추며, 끝내 음악이 어둠을 통과하게 내버려두었다면... 난 결코 그 시간에 도착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나는 음악을 듣지 않았어요. 나는 스산하게 낙엽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어요. 나는 가로수들을 상상했어요. 그 상상 속의 가로수들은 조금씩 무뎌져 가고,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갔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죠. 아니면 내가 그걸 상상했던 걸까요? 마치 침묵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모든 건 먼지같았어요. 상상이 사그라지면 거기에는 한줌 먼지만 남아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점점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목이 말랐는지 잔을 입에 댔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인상만큼이나 희미했다.


“그러다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어요. 나는 그 주인을 생각했죠. 그것도 조금씩 들려왔죠. 처음엔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희미했고, 환청인지, 아니면 빗소리인지. 그게 처음 고막을 건들었다고 생각이 들 때 쯤에 빗소리인가 싶어 창문을 내다봤어요. 불을 켜진 않아요, 거리도 방만큼이나 어둡고, 메마르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쳐요. 나는 10월 가을밤을 알아요. 차갑고 메마른 밤, 느닷없는 낮의 더위가 갑자기 콘크르트 바닥 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푹하고, 그렇게 갑자기 차가워지는 어느 밤, 그런 밤에 내리는 비는 서늘하리만큼 차가워요. 솔직히 나는 그 감각이 두려워요, 마치, 영혼까지 얼어 붙을 것 같은 차가움. 나는 그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기대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어요. 


비는 내리지 않았어요. 나른한 기타 소리도, 아무것도, 기대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나는 비어있는 한 거리를 보았어요. 끝에서 끝으로, 멈춰있는 거리. 순간 내가 이 어둠과 폐허에 유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스운 상상이죠. 


그리고 쓸쓸함, 그리고 그 침묵, 메마른 어둠의 촉감, 이런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누군가 -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총을 쥔 채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런 환상이 현실을 조금씩 파열시키는데서 일종의 야릇함 같은 걸 느꼈죠.”


그는 잠시 귀 기울여 고요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곤 그런 시도가 무의미함을 알았다. 공기는 여전히 창틀을 진동하고 있었다 - 바람은 제법 시끄러웠다.


“그래요, 나는 침대에 누워 형장의 잔혹함을 떠올리려고 했어요. 확실한 죽음이 눈앞에 제시되고, 다가온다는 것, 그것을 목격해야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하고... 예전에 방 한 켠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을 하나 걸어둔 적이 있어요. 베트남 전쟁 때 즉결 처형 순간을 담은 사진이었요. 상을 받았다는 것보다도, 그 사진이 흑백이라는 것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그들의 담담한 표정이죠, 사무적인 표정의 군인, 죽음이나 포박보다는 더위가 더 성가시다는 표정의 죄수... 수많은 픽션들 속에서 나는 한때 간수이기도 했고, 죄수이기도, 때로는 무의미하게 죽어 간 전쟁터의 병사이기도 했고, 그 삶을 살리려는 의사이기도 했어요. 마치 당신이 하나의 물방울, 하나의 그림자였던 것처럼요.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은 줄리엣이 마신 독약이기도 해요, 어느 사막의 여행자가 갈망하며 마신 마지막 물방울이 지금은 북극의 얼음이 되어 있을 수 있어요. 오직 물 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윤회하죠... 생명은 끝이 있지만 물질은 그렇지 않아요. 우주의 탄생부터 시작했던 물질은 인간의 역사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어요. 그러니깐 말하자면, 우리는 기억이라는 허울로 묶여 있는 우리는, 그러니깐 우리의 영혼이나, 의식, 우리가 '인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은 영원한 물질들이 잠시 꾸는 꿈 같은 것일 수 있어요, 우리의 역사의 꿈의 역사이고, 거기에 등장하는 영웅, 반역자이니 배교자이니 하는 자들도, 결국은 물질이라는 종이 위에 씌여진 이름들에 불과한 걸.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모든 책들을 태워버린 다면 그들은 존재하기를 멈추겠죠. 우리의 죽음은 한 기억의 끝이라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죠? 죽음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건 본질적으로 망각과 같은 거예요, 우리는 매일 레테의 강을 지나요, 기억들은 조금씩 소실되고, 상상으로 대체되죠, 오직 이 돌 같은 물질만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거예요, 그래요, 당신도 나도 마치 잠에서 깨여 나면 잊힐 꿈같은 것이 되었죠. 우리의 본질은 망각으로 가득 차 있어요. 


때로는, 새벽의 어스름이 다가올 때, 저는 끝없는 픽션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는 했어요, 도서관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막연함,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눈이 멀어버린 것이 아닌지, 책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 나는 거기에 넣인 글귀들이 산산조각나 흩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걸 주어올려요, 나는 거기서 아무렇게나 주어올린 글귀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닐까, 설레임을 느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어요, 파우스트가, 햄릿이 되고 싶었어요... 내는 결코 미로 적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나는 도서관을 걸어다니며 영웅과 배교자를 꿈꾸죠. 나는 비극적 결말을 꿈꾸죠. 우리는 자신을 알 수 없어요, 거기엔 물이 흐르죠, 끊임없이 흩어지고 뭉치고, 온갖 불빛들을 반사하는 물, 불빛들은 호수 위에 떨어져 흐릿한 얼굴이 되요. 하지만 나에게 어떤 결말이 주어진다면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몰락을 통해서 멕베스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깨어남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꿈처럼. 하지만 우스운 상상이죠. 나는 매일 반복되는 침실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조차 경험 한적 없는데, 꿈의 질료로 만든 미로 속에서 죽음을 제멋대로 상상하는 거예요.


그러고 오후의 산책으로 나를 다시 초대해요, 다시 안락하고 안전한 삶으로 초대하는 거예요. 뉴스를 들으면서, 일상성, 새벽에 쌓여있는 쓰레기 냄새, 거기서 확인하는 거예요. 이후에도 이전에도, 나는 영원히 살아가고, 또 살아왔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듯이. 그 일상과 티비소리에서 다시 저의 실존을 확인하려는 것 처럼요.“


외로운 침묵. 그는 잠시 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산책길에서 보았던 어떤 가로수를 예로 들죠. 저는 단 하나의 가로수를 추억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가로수의 형상은 하나뿐이고, 저는 그것에 가까운 모든 것을 가로수라고 부릅니다. 그 가로수는 하나이면서 모든 가로수입니다. 그들에게 개별적인 이름은 없고, 또 영원히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그 하나의 가로수라면, 다른 모든 가로수들... 제게 타인이란 그렇습니다. 발자국 소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죠.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모두의 것이죠.”


거울은 조금 어둡게 방안을 복제하고 있었다. 거울은 마치 소리를 줄인 TV처럼 고요했다.


“그래요, 발소리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울려왔어요, 저는 더 이상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죠. 불안정한 네온사인의 잡음, 먼지들과 낙엽들, 거리는 몇 개의 발소리를 더 들려줬습니다.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끝났을 때,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라고, 나는 그렇게 느꼈고 나를 지나간 짧은 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어요, 그게 나를 지나갔어요, 그 기억이 나를 지나갔어요, 결국은 한 느낌이 나를 지나가는 거예요. 첫 번째 불빛이 울리고, 두 번째 불빛이 울려왔어요.”


그는 살며시 웃었다. 두 불빛이 그의 미소에서 멈췄다.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한때 기다림 속에 있었어요. 나는 두려움 속에서 그것들을 기다렸어요, 마치 악몽을 꾸고 그것이 재현될까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처럼요. 사랑이 그 모든 기다림을 지옥으로 만들어요. 모든 사랑의 갈망은 고통은 필연적으로 수반되요. 아름다운 얼굴, 망각 속에서 무뎌졌지만, 나의 건방진 요약일 수 있어요. 오, 흔들리는 가로등의 불빛을 기억해요, 서서히 제 등에 비춰 오는 이 네온사인과 비슷해요, 인공의 낙원, 도시는 늘 그렇게 빛으로 감싸 오죠. 어둠을 쫓아내려고, 네온사인으로 어둠을 상처입히죠. 아무 온기도 없는 그녀의 웃음처럼. 어쩌면 그런 낯섦을 사랑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둠을 본 적이 있어요? 그 검은 색 덩어리를 직시한 적이 있어요? 동공이 찢어질 듯한 그 느낌. 그때만 느껴지는 낯섦이 있어요. 그건 다른 거예요. 사랑은 그만큼 증오를 수반하는 것같아요. 그녀는 단절을 원했죠, 커튼을 닫거나 문을 닫거나, 혹은 적을 살해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어요. 꿈속에서 나는 누워 있었고 그녀는 제 가슴에 손을 대고 고동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선형 계단 넘어, 그 끝없는 어둠으로 레이스를 흘리듯 나를 버렸어요. 그리고 어둠이 나를 무감각하게 삼켜 버리게 기다리는 거죠. 꿈속에서 나는 한없이 가벼웠어요. 나는 무게도 고통도 느낄 수 없었어요, 나는 끝없는 계단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공기의 마찰속으오 사라질 것처럼. 나는 사물과 같은 둔감함에 둘러싸여 그 끝을 보려고 해요. 거기에 그 검은 색 덩어리가 있어요.


먼지 너머로 보이는 가로등에서 그런 꿈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의뭉스러웠어요, 어떻게 깨어났는지, 그 꿈이 어떻게 끝났는지, 어쩌면 여전히 그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나는 간혹 그녀가 정말 실제했던 것일까 의심하기도 했어요. 우습게도, 나는 그 꿈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의 잔은 거의 비었고, 방 안에는 들뜬 그의 목소리와 나른한 노랫소리가 섞여 갔다. 나는 시계를 보았지만 곧 그것이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도 때로는 단절을 원해요. 난 기본적으로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날도 그랬어요. 불빛들에 취한 나는 천천히 깨어났어요. 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죠. 변명을 하자면, 아무도 전체를 일순간에 파악할 수는 없는 거예요, 작은 거울로 온몸을 비추려는 듯이, 조금씩 전체를 만들어 가는 거죠. 그리고 그 파편들은 언어로 표현 될 수 없는 거예요. 사각형 무늬의 창문, 스치는 헤드라이트 불빛, 방에 그어진 기괴한 그림자들, 떠오르고 사라지는 과거의 기억, 멈춘 시계, 소리가 제거된 유리, 창문 너머 풍경, 그곳에 비치는 희미한 자신의 모습, 끝없는 불빛들의 춤, 천박한 장밋빛 커튼에 수놓인 - 수많은 장미들의 형상, 반쯤 마신 물잔, 침대가 주는 안락함, 물을 삼키는 느낌, 미지근한 온도, 한 여자에 의해 파생된 기억과 느낌들, 조금씩 찾아오는 느림. 발소리는 익숙하고 차갑게 커져 갔어요.


나는 마침내 내 모습을 그려냈고, 발소리가 단지 타인의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죠. 나는 적을 느꼈어요.”


초록색 유리 물잔으로, 그곳에 반쯤 남은 물로 장난치고 있었다. 나는 언제가 그처럼 장난을 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방음이 된 총이 한 자루가 들어 있겠죠, 그리고 그가 문을 박차고 내게 총을 들이밀면 나는 죽음의 노예가 되었다,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살해될게 뻔 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나도, 나의 꿈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의 방음된 총은 그가 할 모든 행동, 그 잔악한 행동들의 목격자를 사전에 방지해 줄 테고, 그의 조용한 발걸음은 발자국도 없이 사라질 테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만일 그렇게 된다면 무엇이 살해의 흔적으로 남을까요? 그 밤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혈흔, 핏방울 위로 쏟아지는 핑크색 네온사인, 이미 내 것이 아닌, 구멍 뚫린 한 남자의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시체, 그걸 내려다보는 흔들림 없는 초록색 네온사인, 영롱한 초록빛에 쌓여있는 형상,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 가구들의 긴 그림자.


나는 왜 그가 그 밤을 만들려 하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곧 이유 같은 건 중요치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가 나를 죽이기를 원하고, 나 또한 그걸 알고 있으니 말이니깐요.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거나, 시간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기를 헛되이 소망했어요. 하지만 시간의 모든 순간으로부터, 어둠의 모든 방향으로부터, 적은 이 방으로, 그리고 이 밤으로,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어요. 나는 결코 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어요.”


창문을 치는, 내리막길 같은 바람, 커튼이 노래하듯 흔들렸다.


“밤은 고요했어요, 달빛은 아름다웠어요. 바람은 느리게 불어왔어요, 조금은 한기를 띤 채. 세계는 완벽했어요. 이렇게 완벽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의뭉스러웠어요. 세계의 완벽함이 어째서 한 남자의 살해를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제목을 잊어버린 시구를 읊었죠... 둘의 세계로... 둘의 세계로... 모든 우연들이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죽음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어요.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주는 종결성을 느꼈죠. 그게 나에 대한 결론이 될까요? 그게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사건이 될까요? 나는 두려웠어요. 좁은 창을 보았어요. 혹시 이 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해서요,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하기 전부터 나는 그것이 네 줄의 창살에 의해 금지 되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나는 내가 완벽하게 이 방에 유배되었다고는 것을 실감했어요, 내게 주어진 세계가 이 방 뿐이란 것에 한없는 쓸쓸함을 느꼈어요.”


그의 눈동자가 주위를 훑어보았다.


“네온사인은 사랑을 속삭였어요. 초록 색이었다, 다시 빨갛게 물들었어요, 모든 유혹들이 그런 것처럼. 초록색 불빛 속에서 사라질 수 없을까요?


탁자 서랍에 권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3발의 총탄이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구조와 기능, 충분한 살상력을 알고있었어요. 이미 알고 예감하고 있었어요. 나는 나른한 음악을 틀었어요. 고요와 발걸음, 그리고 자유로부터 도망친 거예요. 총을 들고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불안, 어쩌면 내 일생을 쫓아온 이 불안으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적은 마치 모든 것의 그림자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거대하고 어둡고, 말없이 나를 노리고 있는 모든 적의 화신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적의 모든 적이었을 테죠. 우리의 우연과 운명은 이 방으로 우리를 인도했어요. 만일 그가 죽는다면 나는 살인자가 되겠죠, 혹은 그 반대겠죠. 흔한 결투의 운명이었어요.


나는 총구를 보았어요, 총신을, 그리고 방아쇠를 보았어요. 그게 두 개의 운명을 예정해 주었어요, 총구는 내게 해방을, 그리고 방아쇠는 내게 파멸을 선물할 거예요.


마침내 그가 문을 열었고, 내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어요, 첫발은 문틀에 맞고, 총은 무겁게 울렸어요. 총의 반동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총탄은 튕겨서 그의 허벅지를 스쳤죠. 두발은 싱겁도록 쉽게 그의 심장을 관통하고는, 시계에 맞았어요. 시계가 멈췄어요. 마침내. 피가 그의 입으로 뿜어져 나왔지만 그렇게 붉지는 않았어요. 네온사인에 비쳐 거의 핑크 빛이었죠. 나는 총성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장밋빛 계단을 내려왔어요. 난간을 잡고 미끄러지듯 계단을 밟았죠. 저는 마침내 자유를 얻은, 해방된 노예처럼, 날뛰듯 계단을 내려왔어요. 여유로운 저녁 산책을 위해 계단을 내려오기도 했어요. 나는 계단의 끝을 알지도 못한 채 도망 나왔어요. 그리고 창밖을 보고, 끝없이 펼쳐진 나선형 계단을 보고, 무엇도 비치지 않는 거울을 보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거리를 보았어요.”


그는 조용히 거울을 보았다. 나는 거울을 통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꿈에서 나는 음악을 듣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게 되요. 그때 당신은 들어와 내게 총을 들이밀게 되죠."


네온사인은 다시 초록빛으로 변했다. 빛이 그의 등에 닿았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그의 비명을 막기 위해 음악을 조금 크게 틀었다. 그는 듣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 속에 섞여 말했다.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노예가 되었고, 오늘 죽을 겁니다. 당신의 밤과 이 방은 기억의 한 형태로 남겠죠. 나는 그것을 단지 제거된 우연이나, 내일이면 잊혀질 꿈으로 기억할 겁니다.”


 


나는 장밋빛 계단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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