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탑승자가 지면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2027년 10월 1일
17번째 생일을 맞이한 김민주는 아버지의 침실에서 가져온 키를 들고 있다. 그녀는 소리없이 차고로 들어간다.
주홍색 조명 아래 차량 한대가 검은 위장막이 덮여 있다. 아버지와 딸, 두 명밖에 살지 않는 불필요하게 넓은 집. 그러면 자동차 덮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딸은 헛웃음을 참는다.
위장막을 벗겨낸 차는 매끄러운 회색으로 빛난다. 키 인식센서는 1초에 5번씩 차량 반경을 스캔해서 키를 감지하고, 차량 하단에 푸른빛 조명이 켜진다. 전시 차량으로도 쓰였던 만큼 이 조명에는 일정한 연출이 설정되어 있다. 파란색 조명은 일정한 리듬으로, 심장박동과 비슷한 속도로 커졌다 작아 지기를 반복한다: 자동차의 파란심장.
이어 배경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몰래 차에 타려던 김민주는 황금히 음소거 버튼을 찾는다. 우역곡절 끝에 차에 오른다. 시트는 역시 최고급이다. 알칸타라 원단 시트는 실크 같은 촉감을 주고, 거실소파 같은 풍만함이 탑승자를 감싼다. 시트를 리클라이너처럼 완전히 뒤로 재낄 수 있다. 세상 가장 편안한 잠자리라고 홍보되고는 했다. 타이어에 연결된 지능형 서스펜스는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충격을 흡수한다. 인간은 그렇게 지면과 유리되는 것이다.
왜냐면: 이제 탑승자가 지면을 느껴야 할 이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Alpha”
운전석에 앉자 차창 전체가 스크린으로 작동한다. 파란 불빛으로 둘러쌓인 로고가 나타난다. 그녀는 로고가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미 너무 오래 전에 설계된 로고.
OS가 말을 건다: “어디로 갈까요?”
아직 허가 되지 않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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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7년전에 시작된 일이다.
2단계 자율주행은 이미 보편화되어 가고 있었고 업계는 ‘회사’가 이미 중요한 모멘텀을 놓친 것은 분명해보였다.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바닥을 친다. 돈은 있지만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인식이었고, 그룹의 후계자로 등극한 정우령 회장도 그 인식에 공감했다. 그는 두가지 선택이 있다고 보았다:
- 10년안에 자동차 사업을 접는다
- 5단계 자율주행에 대한 R&D를 시작한다.
회장은 알짜배기 사업부문을 매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빌딩을 올리고 R&D센터를 건립한다. 프로그래머들을 스카우트하고 양성하는데 돈을 쓴다. 돈이 부족하자 사재를 턴다. 공장을 팔아 연구소를 차린 것이다. 시장의 시선은 회의적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회장은 선언한다: "이제 차를 만드는게 아니라, 차의 정신을 만들 겁니다."
이사회에 앉아있던 이사들, 보도자료를 준비하던 과장들, 그들로부터 보도자료를 나눠받은 기자들은 묻는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CTO만은 회장의 말을 이해한다. 애초에 김학주의 비전이 없었다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의에 가득찬 남자들이 소주잔을 기울인다:
김학주는 말한다: “정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머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형님, 프로그래밍은 ‘정신’을 현실화하는 것에 불과해요, ‘정신’ 자체는 아닙니다. ‘정신’을 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 정신이라는 것은 틀이 필요해요. 우리는 정신이 작동하는 원리를... 그러니깐 물이 흘러다니 잖아요, 물이, 물이 흐를 수 있는 길, 아니다 길이 아니라, 그러니깐… 중력법칙 같은거? 생각이 따라가는 작동원리? 이 정신이… 그래, 그러니깐 '계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우령 회장이 묻는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CFO 홍순기의 질문이기도 하다. 정우령과 김학주가 회의 때마다 “정신”이라는 아득하고 추상적인 단어를 쓰는게 불편했던 홍순기 상무가 참다참다 깊은 신음과 짜증을 뱉어내며 소주잔을 내려놓는다:
“제발… 두분 ‘정신’ 타령하지마 말고요...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 못합니다. 좀 그냥, 제발, 좀, 좀 평범하게 OS를 만든다고 하면 안될까요? 자동차 OS니깐, 뭐 쏘나타에 쓸거면 쏘나타OS, 알파차에 쓸거면 알파OS!”
술자리에서 정해진 가장 중요한 사항: <제3단계 자율주행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라는 거추장스럽고 긴 프로젝트 이름을 “알파 프로젝트”라고 바꾼다.
덧붙이자면 알파프로젝트를 별도의 계열사로 분리하면서 ‘알파소프트웨어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알파 주식회사’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리고 김학주가 ‘계율’이란 틀을 만들었고, 그 틀 안에서 알파OS는 자라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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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는 알파OS에게 대답한다: “정동진!”
강동구 일대에 ‘정동진’이라는 상호의 횟집, 호프집, 낚시용품점들로 이뤄진 기나긴 리스트가 나타난다. 김민주는 알파OS에게 한참을 설명하고 나서야(그러니깐, 진짜, 바다 정동진, 강원도에 있는거) 차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핸들이 접혀들어가고, 엑셀과 브레이크 패드도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수납된다.
차는 골목을 따라 미끄러져 나간다. 거리는 한산하다. 여름밤에 취한 취객들이 소리를 지르지만 들리진 않는다. 알파OS는 야간 운행시에는 기본적으로 잠을 청하기에 좋게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켜고 조명을 어둡게 조정한다: 차창 전체가 어두워진다. 일종의 탈주를 꿈꾼 김민주로서는 달갑진 않다. 이런걸 기대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좀 지루한데...”
김민주의 혼잣말을 들은 알파OS는 디스크볼 조명과 신명나는 테크노 음악을 튼다.
김민주는 다시 명령한다: “조용히, 조용히 갑시다.”
차는 조용해지고, 세상도 조용해진다. 차는 고속도로 위로 오르고, 빠르게 미끄러져간다. 길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차는 말하지 않는다. 차는 잠들지 않는다.
차는 고요한 어둠 속을 달힌다. 17세 김민주는 눈앞에서 갈라지는 차선들을 바라본다. 생각한 것만큼 대단한 탈주는 아니다. 차창 밖은 어둠고 어둠 속에 무엇이 잠겨있는지 알 길은 없다. 거대한 어둠의 덩어리 사이로 길이 나있고, 잠들줄 모르는 차가 그 사이로 빛을 쏘지만 빛은 멀리가지 않는다. 좁은 곳을 벗어나 더 좁은 곳으로 들어간다. 답답한 마음에 탈출 한 그곳에는 분명 더 큰 공간이 있지만, 시야는 점점 좁아진다.
그녀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날이 밝아지면 괜찮을 것이다. 날이 밝을 무렵에는 정동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점점 밟아지는 바다를 볼 것이다. 거기서 조금씩 떠오르는 태양을 볼 것이다. 물이 차겠지만 어쩌면 발을 담글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바다를 보면 그안으로 뛰어들어 헤엄 칠 것이다. 바다의 일부가 되어 헤엄칠 것이다. 그녀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그녀가 되겠지. 그러면 그녀 역시 세계와 공존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그녀에게 알려주지 못했던 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조금 더 어렸을 적,몽골평야에서 말을 타고 달렸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는 어머니가 계셨다.
그게 마지막 여행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말을 잘탔다. 배웠다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말을 잘 다뤘다.엉거주춤하게 덜렁거리는 아버지와는 달리.
말의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으면 말은 속도를 줄였고, 배를 찰 필요도 없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면 말은 달려 나간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어머니는 쉽게 리듬을 탄다. 자연스럽게, 그게 처음부터 자신의 일부인 처럼. 말은 꼬리를 유연하게 흔들며 달려 나간다.
어머니는 쉽게 소통했다. 쉽게 공존했다. 남편, 자식, 이웃들, 심지어 모든 동물, 심지어 모든 것과. 어머니가 손을 펼치며 그 평원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 것만 같다. 바람이 어머니의 목소리를 담고 흩어질 것만 같다. 어머니의 낭낭하게 울려오는 목소리, 말을 할 때의 자연스러운 몸짓.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옷 소매가 어찌나 멋졌는지. 그녀는 어머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생생학 기억은 마지막 몇달이었다.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지고 머리 한뭉치씨 머리카락이 떨어지던 때, 약으로 몽롱하게 취해있거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이불을 끌어안고 울던 모습. 그녀를 끌어 안고 울었다. 등을 감싸던 그 손길은 친절하던 평소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억울함과 공포에 떠는 낯선 짐승.튜브를 타고 들어오는 영양소가 말라 비틀어진 몸을 지탱한다.숨결은 날이 갈 수록 힘겨웠다. 마지막 순간 딸을 위로하기 위해 미소를 지었지만 억지스러러운 느낌이 있었다.
영정에 하얀 꽃을 올려 놓지만 죽음은 결코 미화될 수 없었다. 부서진 것은 다시 접합될 수 없다: 그 마지막 모습들이 어머니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망가트리는 것 같았다. 불가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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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속도를 높인다.
차는 0.01초 간격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주행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수정하고, 검증한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데 성공했을 때 차는 그 판단과 실제상황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주기적으로 기록을 회사의 서버에 전송한다.
당직자는 김학주가 담당하고 있는 테스트 차량의 주행정보가 새벽에 들어온다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당직자는CTO에게 전화를 시도하지만 김학주는 잠들어 있다. 차량 도난인가? 당직자는 응급대응팀에 긴급출동 메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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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는 차량의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의자를 편안하게 뒤로 넘기고 선루프를 통해 밤하늘의 별들을 본다. 별은 항상 그녀를 따라다닌다.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는 고슴도치 같았다.
상실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그게 지금까지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가려진 아버지의 본질이었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기밀보호 의무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했다). 이른 아침에 나가 늦은 밤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더더욱 일에 매달렸지만 그녀는 '일'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어렴풋이 차량OS를 개발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언제 출시될지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차. 어머니를 잃은 딸에게는 용돈이 입금되고, 아버지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 먼지가 쌓인다.남겨진 자들이 우연히 집에서 마주칠 때면 어색함과 슬픔에 눈밑이 까끌하다: 서로는 서로에게 공유한 슬픔을 상기시킨다.
가정부는 햇빛이 잘든다는 구실로 거실에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김민주는 그걸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텅빈 거실에 대한 조롱. 하지만 어떻게 항의해야할지 몰라서 함구한다. 그녀는 자신의 불쾌감이 정당한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말 하지 않았다.
차라리 거실을 복도로 만들어버리는게 나았을 것이다.
이제 그 집에 아무도 거실에 가지 않으니깐. 아무도 거기게 머물지 않으니깐. 아무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앉아, 티비를 보면서 빨래를 게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깐 차라리 거실을 없애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거기가 불타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 널린 주름진 빨래감들이 그렇게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상처를 줄 뿐인 기대는 없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친 표정으로 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의 모든 걸 집어먹고 있는 차. 마지막 남은 위안을 앗아간 차. 그 차를 탈고 탈주를 하는 것이다.
“바람을 느끼고 싶어.”
차창을 살짝 열린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옷이 펄럭인다. 반복되는 바람 소리가 귀에 익숙해진다. 반복되는 옷의 펄럭임이 익숙해진다. 그녀의 소매도 어머니의 그것처럼 멋지게 펄럭일 수 있을까? 그 기억만 남겨두고 싶었다.
달이 없는 밤. 그만큼 별들은 영원한 듯 빛난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별들은 그 자리에 멈춰있다. 그들은 무심하다. 그들은 인간의 세상에 무심하다.
그들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머니 기억, 그걸 포함한 모든 기억, 모든 감각들은 저 별들의 괴리 사이로, 저 거대한 어둠 속으로 소실될 것이다.
그들은 그 괴리 사이로, 느린 유영을 계속한다. 영원히.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생각은 천천히 꿈으로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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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시 어머니를 잃는다. 미라같이 말라버린 여자, 그 앙상한 팔을 잡으려하나 미끌어 진다.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재가 될 때까지 타오른다. 사거리, 그 사거리, 그녀는 사거리에 서서 유해를 뿌린다. 폭풍이 몰아친다. 사거리에 타오르는 불꽃들, 그걸 잠재우려는 듯 휘몰아치는 비, 그리고 빗방울은 불에 타버려 연기가 된다. 어머니의 먼지가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진다. 소요, 화가난 사람들, 민중들, 김민주는 그들이 화난 이유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소리 치며 말을 걸지만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들은 발을 땅에 굴린다. 땅이 울린다. 그들은 행진한다. 구호를 외치고, 몽둥이와 횃불을 휘두르고, 그들은 분노에 찬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차가운 비가 땅에 떨어진다. 사거리는 돌연 비어 있다.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사거리에 서서, 종이에 불을 붙이고 그걸 높이 들어올린다. 그녀는 소리친다.
그녀는 다시 별들을 보고 있다.
꿈들 너머로 눈꺼풀 사이로 은근한 햇빛이 들어온다. 바다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 황홀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차가 가속하기 시작한다: 차는 낭떨어지를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