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소 이 유 서
본 적 : 이탈리아 베니스시 OO구역
주 소 : 상동
성 명 : 샤일록 (속칭, 1파운드 재판의 피고)
생년월일 : 1721년 O월 O일
죄 명 : 협박 및 공갈에 관한 법률 위반
요지 :
본 피고인은 1721년 시립 재판소에서 협박 및 공갈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은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내용 :
공개되었다시피 저는 상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할 경우, 1파운드의 살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에서 패했고, 선고 이후 본 피고인은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갖은 질타를 당해야했습니다.
성벽에서 나체로 자신의 죄를 고해야했고 신문에서는 이름부터 직업, 소속에 걸쳐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본 피고인에게 부덕한 면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이유서를 통해 본인이 왜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소명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본 피고의 과오를 개인의 탐욕과 질투, 그리고 시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본질적 구조의 오류 속에서 파악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한 순간이었습니다. 경제위기랬고 나가랬습니다. 짐을 쌌습니다. 20여년을 근무한 끝에 받은 퇴직금으로 작은 전당포를 마련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돈도 꽤 벌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자 좀 더 큰 부지가 필요했고, 수요가 많아지자 길드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고스란히 지대와 길드 로열티로 빠져나갔습니다.
적자를 막기 위해선 고객의 방만을 막기 위해 강력한 장치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본 피고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결국 안토니오에게 약조한 돈을 받지 못한 저는 현재 길드와 땅 주인으로부터 고발당한 상태입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인건비를 줄이라. 이렇게 인건비가 오르면 우리같은 자영업자는 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저 우리가 받는 착취를 종업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월급이 밀려도 사장을 고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나를 위해 일해 준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려고 애쓰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갑'이라 욕하며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습니다. 인정이 없다고, 잔인하다고 미워합니다. 그러나 지대를 챙겨간 영주에겐 침묵했습니다. 생산량의 70%를 가져간 길드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모두 그 길드가 만든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재판에 언론과 국민이 집중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덕적·법적·사회적인 비난에서 빗겨선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착취해나가고 있습니다. 갈등의 주체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호송줄에 묶여 이감되며 정의의 여신을 보았습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가렸습니다. 정의를 위해서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가려진 눈으론 진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A가 B를 괴롭혔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구조적 병폐가 개인이란 이름으로 가려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계속될지 본 피고인은 두렵습니다.
구름 뒤에 숨어 세상을 조정하는 사람들을 불러낼 수 있는 건, 깨어있는 시민들의 분노입니다.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것 역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눈 위에 덮인 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우리 모두가 진짜 정의를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베네치아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