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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r 24. 2024

불씨와 물방울 그리고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감독 피터 손 인터뷰

디즈니·픽사 최초의 한국계 감독 피터 손. 그의 삶, 사유의 결이 담긴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개봉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와 자녀, 이민자와 차별, 그리고 포용성과 희망에 대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알아가는 것, 관계를 맺고 친밀해져가는 과정은 신비의 연속이며, 격정과 고난, 그리고 환희가 계속되는 모험이다. 모험은 힘들지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대륙을 개척하며 살아온 인류에게 모험은 DNA에 새겨진 코드일지도 모른다. 모험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만큼 흥미로운 모험도 없을 것이다. 나와 정반대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의 세계를 내밀하게 관찰하며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 맺으면서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용이 필요한 시대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 풍문만 듣고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짧은 텍스트로는 그 사람의 인생이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기사만 읽고, 트윗과 클립들만 보다 보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편린일 뿐이다. 평균값을 안다고 그 사회를 안다고 할 순 없다. 경험해야 안다. 나와 다른, 정반대에 있는,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 세계로 들어갈 순 없다. 그가 손을 내밀고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 한다. 문이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기다림, 그것은 모험의 시작이다.  


픽사의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주인공은 물과 불이다. 물 같은 남자, 불 같은 성격의 여자가 아니다. 물 원소와 불 원소다. 섞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정반대의 존재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 사랑을 픽사만의 방식으로 다룬다. <엘리멘탈>을 기획하고 연출한, 원소들의 아버지 피터 손 감독을 만났다.



다양성이 조화를 이룬 도시

<엘리멘탈>의 배경은 엘리멘트 시티다. 이 도시에는 불, 물, 공기, 흙 4개 원소가 살아간다. 4개 원소는 완전히 다른 성질이지만 어쨌든 한 도시에 산다. 지하철에서 잠든 흙 원소의 머리 위로 물 원소 사람이 닿으면 잔디가 솟아나고, 꽃이 피기도 한다. 타인과의 충돌이 어떤 형태로든 흔적으로 남는다. 4가지 원소는 4개의 인종처럼 보인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멜팅폿 같은 메트로폴리탄 뉴욕시가 연상되기도 한다. 뉴욕에선 다양한 인종이 저마다의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고,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그 문화권 사람을 조금씩 알아간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면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래서 뉴욕에선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트렌드가 창출된다. 그것이 다양한 문화를 품은 다인종 사회의 매력일 것이다.


피터 손 감독은 뉴욕 출신이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욕 토박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다인종 사회인 뉴욕의 모습을 반영한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다.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어릴 때 주기율표를 보면서 아파트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주기율표의 원소들이 각각의 집이라고 상상하며, 그 아파트가 가진 다양성을 좋아했다고 한다. 주기율표의 다양성을 가진 아파트를 뉴욕의 다인종 사회와 결합해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다. 그것이 <엘리멘탈>의 시작이다.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를 다룰 수는 없으니, 고전적인 4가지 원소를 선택했어요. 작품에 나오는 풍경,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제가 어린 시절 사랑한 도시의 모습이에요. 도시를 이룬 다양한 가족의 모습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고요.” 피터 손 감독이 말했다.


피터 손 감독은 고전적인 4가지 원소를 선택했지만, 4가지 원소 모두 깊이 있게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멘탈>의 주요 이야기는 물 속성의 웨이드와 불 속성의 앰버의 만남과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여느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상반된 두 성질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스토리는 다방면으로 가지가 쳐졌고, 버전도 다양했다고 한다.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물을 기획하기도 했고, 종말을 맞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재난물도 있었다. 이 기획의 핵심은 그의 부모님이었다. 이민 1세대 부모님이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미국에 와서 정착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경유했는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알 수는 있어도 그 마음까지 헤아리기는 어렵다. 피터 손 감독은 부모님이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그들의 헌신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한국인으로서 부모님의 정체성과 문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핵심이었어요. 이민자의 이야기와 러브스토리는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피터 손 감독은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의 상황에 공감하게 되는 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왜 앰버의 아버지는 물 원소를 싫어하는지, 물 원소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가며 공감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한층 더 깊어진다. 웨이드와 앰버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서로 다른 원소들이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여러 테마를 다루는 것 같지만, 핵심은 연결과 연결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는 겁니다.” <엘리멘탈>의 핵심 메시지는 다인종 사회의 이상적인 목표처럼 들렸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이념,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비단 뉴욕에만 필요한 가치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와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혐오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다른 문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은 두려움에 기인한다. 그 두려움은 무지에서 시작된다. 조금 아는 것, 편린만 가지고 바라보는 것 역시 무지일 것이다. <엘리멘탈>의 가치는 지금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매우 예민한 주제이기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관객은 영화의 교조적인 태도에는 빠르게 반발심을 품기 때문이다.


피터 손 감독은 아이디어 개발 단계부터 다인종 사회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결론은 캐릭터를 통해 전하는 것이었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를 캐릭터에 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엘리멘탈>의 주제가 공감에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통해 공감대를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분리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마치, 서로를 연결해준 다리란 다리는 모두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초기 기획 중 슈퍼파워를 가진 원소들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버전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가 여러 개 만들어지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를 소통하는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할지가 문제였고, 공감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처음에는 앰버도, 앰버의 아버지도 벽을 쌓고 있다. 그러나 웨이드는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난 친구다. 웨이드를 통해 앰버는 자신에게도 공감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한다. 그 순간 서로를 향해 쌓아 올린 담벼락은 무너지고, 포용의 문이 열린다.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감대가 사라진 느낌이 들어요. 작가들과 얘기했을 때도 공감은 외부에서 찾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다고 했어요. 공감 능력은 내 안에서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요.” 그는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무척 슬프다고 했다.   



아버지의 유산과 희망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다.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다. <엘리멘탈>의 흙과 공기도 그렇지만 특히 어려운 것은 물과 불의 성질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일 테다. 이건 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불 역시 타오르고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게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터 입장에선 생경함과 동시에 친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터 손 감독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몇 년이 걸린 작업이었어요. 이미지 역시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희망찬 도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꿈을 꾼 듯한 느낌이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갖게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희망을 분출해내는 영화여야 한다는 게 시작이었죠.” 말만 들어도 어렵다. 그동안 픽사가 보여준 이미지들은 정확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 생생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엘리멘탈>은 이를 뛰어넘는 황홀함까지 선사한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4가지 원소의 성질을 표현한 세밀하고 우아한 연출이 더해졌다. 하지만 초기 콘셉트는 지금과는 달랐다. 어둡고 공격적이었다. “작업 초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제가 그리는 세계는 점점 더 어두워졌어요. 동시에 공격성이 많아졌죠. 불은 위험한 것, 불은 공격적인 것. 이렇게 변하면서 알레고리가 어두워졌어요.”


피터 손 감독의 작업을 본 그의 상사는 우려를 표했다. 너무 ‘다크’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피터 손 감독의 세상은 어두웠다. 세상은 더는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희망이 사라졌다고 한다. 희망이 없는 그가 그려낸 세계는 분노로 가득하고,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이었다. 그의 말대로 ‘다크’한 도시였다. “어쨌든 저는 제 슬픔을 해소했어요. 아버지를 잘 보내드렸죠. 정신과 의사가 저에게 물었어요. 제가 그린 세상이 항상 어두운 세상이었냐고요. 저는 아니라고 답했죠.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야말로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셨거든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항상 기운 넘치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셨어요.”


아버지를 안녕히 보내드린 후에야 엘리멘트 시티에는 희망이 찾아온다. 작품의 색채와 분위기가 희망찬 컬러로 바뀌었다. 다양성을 하나로 합치는 화합을 보여주었다. 피터 손 감독의 초기 아이디어이자 의도로 돌아온 것이다. 상실감에만 빠져 있던 그에게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아버지는 이민의 어려움을 극복할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민은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전혀 새로운 곳에서 삶을 개척해가는 거잖아요.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점이 너무 그리웠어요. 아버지의 희망찬 모습, 긍정적인 면이 아직도 많이 그립습니다.” 피터 손 감독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갈 것이다.


공감과 희망이라는 아버지의 유산을 담아낸 <엘리멘탈>은 피터 손 감독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 것이다. 또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전환점이 될 테고, 시간이 흘러 그의 자녀들과 함께 보았을 때도 의미가 깊을 것이다. 이건 지금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화합시키는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을 자녀들에게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 살, 열세 살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우리 아이들이 이 세상을 안전하게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영화로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예요. 그런데 영화란 무엇인가요?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얻어 가는 게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영화라는 콘텐츠가 가진 힘과 영향력을 이야기하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 많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어려운 작업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이야기를 관찰하게 되기도 한다. 성격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만들고, 캐릭터들에게 사건을 부여하고 서사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캐릭터들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를 짜게 된다. 달리 말하면, 캐릭터들이 생명을 갖고 스스로 이야기를 개척해가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감독의 역할은 펜을 가지고 이야기가 너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세밀하게 조율하며 적절하게 가지치기를 해주는 것일 테다. <엘리멘탈>의 웨이드와 앰버는 성격이 뚜렷하다. 개성 강하고, 어디로 튈지 예측이 안 된다. 그런 캐릭터들이 서로를 공감하기까지에는 많은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이 생명을 갖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진 않았을까? “네 맞아요. 캐릭터가 설정되면 어느 순간에는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해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작가에게 말하는 순간이 와요. 그건 정말 ‘어메이징’한 경험이에요. 그때부터는 제 의지를 캐릭터에게 강요할 수 없어요. 캐릭터가 양보를 안 하거든요.” 피터 손 감독은 캐릭터들은 아이 같은 측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이고, 아프다고 하면 고쳐주고, 영양을 듬뿍 주는 정도다.


그는 과거 다른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의도를 캐릭터들에게 관철시킨 적이 있다. 그때는 비전이 명확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캐릭터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압박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건 마치 아이들을 다루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이 있고, 어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한 계획이 있다. 어른들은 무엇이 옳고 나은 것인지 알기에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아이의 계획은 미흡하고, 꿈은 허황되기 때문이다. 신뢰가 부족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것도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헌신과 희생, 인내일 것이다.


피터 손 감독이 처음 의도했던 애니메이션은 거대한 규모의 액션 장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릭터들이 점점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건 물과 불이 만난 이야기라고 캐릭터가 저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액션 장르로 기획한 초기 <엘리멘탈>은 내부 스크리닝까지 할 정도로 진행이 됐다. 네 번째 내부 시사를 가졌을 때까지만 해도 피터 손 감독은 이야기를 계속 진전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억지였고, 끝내는 두 손을 들었다. 이 영화가 원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것이니, 그 길로 한번 가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방향으로 다시 시작했고, 작업하면서 캐릭터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지지했다. 물론, 이건 이야기의 큰 축과 방향에 대한 것이다. 세부 내용과 사건 등 디테일은 제작진이 만들어갔다.


생생한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캐릭터는 누구였을까? 좋아하지만 다루기 어렵고, 잘 표현하고 싶지만 연출하기 힘든 캐릭터. “웨이드는 애증의 관계였어요.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그림 그리고, 작가로서 이야기를 쓰는 부분은 행복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물은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요소 중 하나다. 물은 언제나 CG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되게 표현한 애니메이션이라면, 특히 어려울 것이다. 웨이드는 물이라서 반투명해 보인다. 웨이드는 움직일 때마다 배경이 살짝 보여야 한다. 불이나 다른 소재와 달리 물이라서 피붓결 아니 신체 내부가 물결 그림자처럼 보여야 한다. 반짝이는 반투명한 연체 캐릭터다. 그런데 타고난 ‘EEEE’ 성향이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관객은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느끼겠지만, 작업자 입장에서는 어렵고 또 어렵다. 피터 손 감독은 물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엘리멘탈>은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내용도 시각적인 효과도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면 큰 감동을 느낄 만한 작품이다. “역시 픽사답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픽사란 꿈의 무대다. 피터 손은 오랜 시간 픽사에서 일했다. 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각본가로서 굵직한 작업에 참여했다. <니모를 찾아서>와 <인크레더블>에선 스토리보드 작업을 했고, 장편 애니메이션 연출은 <굿 다이노>가 처음이었다. 그전에 연출한 작품은 <구름 조금>이라는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중저음의 발성도 매력적이라 성우로서도 픽사와 함께하고 있다. <라따뚜이>의 영리한 에밀, <몬스터 대학교>의 5눈박이 스퀴시, <버즈 라이트이어> AI 고양이 삭스 등을 연기했다. 또한 <업>의 천진난만한 러셀은 피터 손 감독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픽사에서 어지간한 업무는 거의 다 한 셈이다. 전방위 플레이어랄까. 그에게 픽사란,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란 어떤 의미일까? 질문에 피터 손 감독은 워너 브라더스에서 처음 작업한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를 언급했다. 1999년 작이니 작업 당시 피터 손 감독은 20대 초반의 젊은 애니메이터였다. 그때의 뉴욕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사람들이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피부색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발언했어요.” 인종차별을 너무 많이 겪어서 스스로 담을 쌓아가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언 자이언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브래드 버드 감독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그 팀은 아무도 피부색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어요. 제 배경이 어딘지는 상관없었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는 마음뿐이었어요. 예산은 별로 없었지만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죠.” 피터 손 감독은 그들과 함께 섞여 일하면서 이것이 식구란 것을 느꼈다고 한다. 마음은 따뜻하고, 열정은 뜨거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개봉 첫 주 관람객은 300만 명에 불과했다. 낮은 흥행 성적은 슬펐지만, 그럼에도 자부심은 있었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잘했다고, 작품에 진정성을 가졌다고 한다. “그때 그 느낌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그런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엘리멘탈>은 피터 손 감독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일 것이다. 가족의 유산이며, 수많은 이민자들의 경험, 시대적 요구가 깃들어 있으니까. 우리 사회는 지속해서 다양해질 테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니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공감이 필요하다. <엘리멘탈>이 우리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작은 불씨가 되길 기대한다.   



- <더네이버> 2023년 6월호에 기고한 글

http://www.theneighbor.co.kr/neighbor/view.asp?no=9945&pTy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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