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낡은 것을 찾는 사람들

by 이롤

힙지로


낡은 골목이 왜 ‘힙한 공간’이 되었는가


을지로의 골목에는 아직도 인쇄소와 철물점이 남아 있다. 건물 1층에는 공구상과 인쇄업체가 있고, 같은 건물 2층이나 지하에는 바와 카페가 들어서 있다. 낮에는 인쇄기가 돌아가고 철문이 열렸다 닫히며 물건이 오간다. 밤이 되면 같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신다.


이 동네가 ‘힙지로’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런 풍경 때문 아닐까. 서울에서 힙하다는 표현은 보통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 붙는다. 새 건물, 세련된 인테리어, 정돈된 상권이 있는 동네가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을지로는 그 반대다. 새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산업 골목이다.


을지로의 공간에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인쇄소와 철물점, 공구상은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 왔다. 간판과 건물 구조, 골목의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이 골목에는 산업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의 많은 공간은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간다. 브랜드 카페와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면서 거리의 풍경은 점점 비슷해진다. 이런 도시에서 오래된 골목은 오히려 드문 풍경이 된다.


을지로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생긴다. 이곳은 처음부터 카페 거리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다. 인쇄소와 철물점이 먼저 자리 잡았고, 그 위에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 골목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공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앞서 살펴본 성수동은 공장을 카페로 바꾸면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반면 을지로는 산업 공간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왔다. 공장과 술집이 같은 골목에서 공존하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을지로는 도시에서 시간이 겹쳐지는 것을 보여준다. 산업 시대의 공간 위에 새로운 소비 문화가 올라가면서 하나의 골목 안에 서로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을지로를 찾는 이유도 이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곳에서는 산업 골목과 새로운 상권이 함께 존재하는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같은 공간 안에 겹쳐 있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이다.





공장에서 카페로


산업공간이 취향이 되는 도시 미학


을지로의 가게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많은 공간이 건물을 새로 꾸미지 않았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벽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철 계단과 배관도 숨기지 않는다. 천장이 높고 기둥 간격이 넓은 구조도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공장과 작업장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업 공간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대부분 가려진다. 벽은 깔끔하게 마감되고 배관은 천장 안으로 숨겨진다. 공간은 정돈되고 밝게 설계된다. 소비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상업 공간 디자인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을지로의 많은 가게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벽을 새로 마감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낸다. 낡은 철문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오래된 기둥과 계단을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남겨 둔다.


예전에는 이런 공간이 “정비되지 않은 공간”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구조가 매력적인 요소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정돈된 공간보다 원래 구조가 드러난 공간에서 더 강한 인상을 받는다.

도시의 미학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상업 공간은 오랫동안 ‘완성된 공간’을 지향해 왔다. 모든 요소가 계획되어 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이 좋은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공간이 늘어나면서 거리의 풍경은 점점 비슷해졌다. 어느 동네를 가도 비슷한 카페와 비슷한 매장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디자인된 공간이 아니라 원래 구조가 드러난 장소다. 공장과 작업장이었던 공간에는 생활과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벽의 질감이나 기둥의 구조, 공간의 비율이 일반 상가와 다르다. 이런 요소들이 그 공간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장소로 만든다.


그래서 산업 공간은 새로운 미적 자원이 된다. 인쇄소나 작업장이 있던 건물이 카페와 바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간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면 그 장소가 지나온 시간이 함께 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공간에서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서울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지만 모든 공간이 같은 속도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산업 건물은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그래서 을지로의 공간은 단순한 상업 공간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 장소의 구조와 흔적 자체가 경험의 일부가 된다.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단순히 카페에 앉아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만든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이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공간의 가치는 얼마나 새롭고 정돈되어 있는지에만 있지 않다. 그 공간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밝고 정돈된 공간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낡은 벽과 높은 천장이 있는 장소에 더 끌린다. 같은 카페를 방문하는 경험이라도 공간의 구조에 따라 전혀 다른 취향이 드러난다.


도시의 공간은 결국 사람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어떤 공간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자신이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을지로의 골목은 그런 선택이 드러나는 장소다. 공장이었던 건물에 들어간 가게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새 건물의 정돈된 공간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같은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공간의 분위기는 다르다.


그래서 도시의 공간을 관찰하는 일은 결국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도 연결된다. 어떤 장소를 매력적으로 느끼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낡은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


을지로에 끌리는 사람들의 취향과 심리


서울에는 새로 만들어진 상권이 계속 등장한다. 정돈된 거리와 밝은 매장, 통일된 간판이 있는 공간이다. 동선은 편리하고 공간은 깔끔하다. 이런 장소는 처음 방문해도 낯설지 않다.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무엇을 주문하면 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의 골목은 이런 상권과 분위기가 다르다. 간판은 제각각이고 건물 구조도 일정하지 않다. 골목은 좁고 건물 입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경우도 많다. 가게를 찾기 위해 골목을 조금 더 걸어야 하거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공간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동선이 명확하지 않고 처음 가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계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을지로보다 정돈된 상권을 더 편하게 느낀다. 깔끔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을 선호하는 취향이다.


반대로 을지로 같은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정돈된 거리보다 구조가 복잡한 공간에서 더 흥미를 느낀다. 건물의 구조나 골목의 형태, 오래된 간판 같은 요소들을 관찰하는 것을 재미있게 느끼기도 한다. 공간을 단순히 소비하기보다 탐색하는 경험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그래서 을지로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공간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구조와 분위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완벽하게 설계된 장소보다 사용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을 더 흥미로운 장소로 인식한다.


이런 취향은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을 더 선호한다. 정돈되어 있고 편안한 장소를 좋아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남아 있는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에서 도시의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경험을 즐긴다.


그래서 같은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공간을 선택한다. 어떤 사람은 쇼핑몰과 새로 만들어진 거리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골목과 낡은 건물을 더 좋아한다. 같은 카페를 방문하는 경험이라도 어떤 건물 안에 있는지에 따라 그 장소에 끌리는 사람이 달라진다.


을지로는 이런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이 골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간을 단순히 소비의 장소로만 보지 않는다. 그 공간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함께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을지로의 골목을 걷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나는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정돈된 거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인지, 아니면 시간이 남아 있는 골목에서 더 흥미를 느끼는 사람인지.


도시는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공간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자신이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을지로의 골목은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장소다.

서울에는 수많은 상권이 있지만 모든 공간이 같은 경험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어떤 곳은 편안한 소비의 공간이고, 어떤 곳은 도시의 시간을 느끼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선택하며 도시를 살아간다.


그래서 을지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 정도 공통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보다 시간이 남아 있는 장소를 더 흥미롭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런 취향은 단순히 공간의 선호를 넘어서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도시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서울의 골목과 상권은 단순히 소비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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