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리더의 이기적인 환대
보통 나는 워크숍 시작 2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한다. 벽면 세팅과 음향 체크, 그룹별 준비물 확인까지 마치는 데는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남은 시간은 오롯이 비워둔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참석자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다. 오늘 워크숍에 대한 기대나 걱정을 나누는 그 찰나의 대화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워크숍은 사실 참석자를 환대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것이니까.
초행길일 때는 30분을 더 일찍 서두른다.
지도 앱과 내비게이션을 켜도 길 위에서 자주 헤매는 심한 ‘길치’이기 때문이다. 낯선 건물의 주차장 입구부터 강의장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나에게 늘 거대한 미로와 같다.
그날은 특히 단단히 각오를 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삼성전자는 9년을 몸담았던 친정 같은 곳이었지만, 내가 근무했던 한국총괄과는 공기부터 다른 곳이었다. 특히 사내 공과대학이 있는 건물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익숙한 이름 뒤에 낯선 풍경이었다. 퇴사 후 6년 만에 방문하는 친정집이 반가우면서도 긴장되었다.
서울에서 기흥까지의 아침 정체를 고려해 6시 반 도착을 목표로 잡았지만, 새벽 고속도로는 예상보다 공허하리만큼 텅 비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겨우 6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본 순간, 아찔함이 몰려왔다. 네모난 회색 건물들이 정갈하게 다듬어진 화단 사이로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건물들 사이에서 입구가 어디인지, 내가 제대로 주차를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초여름이었지만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광활한 캠퍼스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 가방을 꽉 쥐고 건물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탁탁 탁탁. 적막을 깨는 내 발소리만이 메아리쳤다. 건물을 한 바퀴, 다시 한 바퀴. 어느 순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절망감이 들 때쯤이었다.
“어디에 오셨어요 오오오오오오오오?”
마치 산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전령의 목소리처럼, 중년 남성의 음성이 새벽 공기를 가로질렀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건물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남성 대여섯 명이 종이컵을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0분 넘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이방인을 지켜보던 그들이 먼저 창을 연 것이었다.
“CDI 연수센터를 찾고 있는데, 입구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간절함을 담아 소리쳤다. 위에서 짧고 명쾌한 대답이 내려왔다.
“거기 계세요. 저희가 내려갈게요.”
잠시 후, 굳게 닫혀 있던 작은 문 하나가 열렸다. 한 남성이 나와 나를 출입 게이트로 안내했다.
소지품과 신분증 확인을 마친 후 그는 나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강의장까지 거리가 좀 됩니다”라며 직접 앞장서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고, 긴 통로를 지나는 내내 그는 정중했다. 사실 그 시간에 교육 담당자가 출근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유난히 일찍 도착했다. 그는 강의장 위치를 확인시켜 준 뒤, 나를 붙잡았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데 밖에서 많이 고생하셨네요.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어요.
지금 강의장 가면 서늘합니다.
잠깐 차 한 잔 하고 몸 녹인 뒤 이동하시죠.”
그가 이끄는 대로 들어선 곳은 넓고 단정한 집무실이었다.
비로소 건네받은 명함 한 장.
내 가슴은 쿵 내려앉았다.
000 부사장
9년의 직장 생활 동안 보고는커녕 멀리서 실물을 뵙기도 힘들었던 직급의 '어른'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직접 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그 연수센터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강사가 드나든다. 부사장이라는 위치에서 길 잃은 강사 한 명을 위해 직접 내려올 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구름다리에 함께 있던 분들 중 한 명을 보내도 됐고, 못 본 척 창문을 닫았어도,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누구도 무례하다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세요? 퍼실리테이터라는 직업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나요?”
그의 질문은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기업들이 왜 퍼실리테이션을 의뢰하는지, 경력 입사자들이 조직에 적응할 때 어떤 결핍을 느끼는지 그는 진지하게 물었다. 눈을 맞추는 각도와 질문의 결에서 ‘진짜 궁금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졌다.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외부 강사가 아닌 파트너로서 존중받고 있었다.
이제 강의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황송한 마음에 아침부터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에게 그가 웃으며 던진 마지막 말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리더십의 이정표가 되었다.
강사님 컨디션이 좋으셔야, 우리 직원들이 좋은 워크숍을 선물 받지 않겠습니까. 다 저 좋자고 한 겁니다. 새벽부터 멀리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직원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거창한 희생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베푼 환대가 결국 내가 사랑하는 조직의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이고도 따뜻한 논리였다.
그날 워크숍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분이 건네준 온기를 어떻게든 참석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1분 1초의 디테일에 혼신을 다했다.
그날 이후 나의 작은 행동 하나가 바뀌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보이면 멈춰 서서 방향을 가리키고,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며 한 걸음 더 안내하게 되었다.
그분은 모르실 것이다. 5년 전 어느 새벽, 구름다리에서 창문을 열고 소리쳤던 그 작은 행동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물결을 일으켰는지.
조직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리더들은 대개 시스템과 구조를 먼저 말한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변화는 리더가 연 작은 ‘창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부사장님은 그날 자신의 리더십 철학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창문을 열었고, 직접 내려왔으며, 차를 건네고 나의 컨디션을 살피셨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끔 기흥캠퍼스 근처를 지날 때면 그분이 건네신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 그럴 때면 그분의 기사를 종종 검색하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에 조용히 응원을 보내고 있다.
늘 생각한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진정성임을. 당신의 조직에서 창문을 열고 먼저 손을 흔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신이 베푼 그 ‘이기적인 환대’는 지금 어디쯤 흐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