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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Oct 05. 2023

영화를 찍는 재능에 대하여

영화 '거미집'을 보고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한국 영화에 신선한 충격과 새로운 재미를 줬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쓸었고 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미키 17'로 돌아온다. 박찬욱 감독 역시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그는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새 시리즈 '동조자'를 촬영할 예정이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그의 차기작은 '망내인'이다. '거미집'은 개봉 일주일이 지났지만 26만 관객을 동원했을 뿐이다. 


'거미집'은 1970년대 성공적인 데뷔작을 남긴 김열(송강호 분) 감독이 혹평과 조롱에 시달리다가 새로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꾸기 위해 이틀간 추가 촬영을 강행하며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외형은 꽤나 독특하다. 김열 감독이 결말을 고치기 위해 촬영한 영화 70's '거미집'과 촬영장의 모습이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진다. 둘의 간극이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거미집'의 가장 탁월한 점은 여자 배우들의 연기다. 정수정과 임수정의 연기가 아름답다. 임수정은 70년대 '거미집'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이민자로 변신해 70's '거미집'을 이끈다. 정수정은 당대의 라이징스타 한유림 역으로 촬영장을 자유롭게 누비며 70's '거미집'에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남긴다. 외모까지 연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박정수 역시 70's '거미집'과 촬영장을 오가며,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미도역을 맡은 전여빈 역시도 과장됐지만 새로운 면모를 마음껏 보여준다. 미도의 분량이 나올 때마다 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김지운 감독과 배우들의 호흡은 완벽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화려한 미장센 이외에 이 영화는 칭찬할 구석이 많지 않다. '거미집'은 어려운 영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고 포장 됐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를 영화다. '거미집'은 그의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블랙코미디라는 점과 파멸에 이르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점이 닮아있다. 그렇지만 '거미집'은 '조용한 가족'보다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외연적으로나 내연적으로나 훨씬 비싸보이는 차지만 승차감이 좋지 않고 자주 덜컹거린다. 결론적으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재미와 감동이라는 목적지로 관객을 데려가지 못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좋은 소재와 뛰어난 배우를 가지고 공회전만 한다는 것이다. 70년대라는 매력적인 시대적인 배경과 김열 감독의 캐릭터가 잘 섞이지 못한다. 결국 '거미집'에서 독창성이나 폭발하는 광기나 에너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거미집'은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에 빚지고 있다. 사장과 여공의 불륜과 임신이라는 소재나 계단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이나 남편의 불륜을 바라보는 안주인 등 여러모로 '하녀'를 떠올리게 만든다. 김기영 감독뿐만 아니라 1970년대를 호령했던 다른 유명한 감독들의 모습도 조금씩 다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열 감독의 캐릭터가 더욱 빛나야 하지만 엄청나게 유명한 스승을 둔 제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유명한 스승의 죽음의 관련된 비밀 역시 허무하게 회상으로 공개해버리고 만다. 결국 영화의 제목인 '거미집'처럼 외형만 남은 채 숭숭 뚫려버리는 결말만 관객에게 남는다.

여기에 더해 공교롭게도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의 시나리오 클라이맥스에 불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의 전작인 '압꾸정'에서도 화재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 등장했으며, '거미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갈등을 찬찬히 풀 수 없어서 불을 내고 대충 끝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김지운 감독 역시 이 시나리오의 각색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김지운 감독이 영화에 재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재능은 분명한 색깔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지운 감독은 어떤 장르에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내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데뷔작이었던 '조용한 감독'이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 한국적인 정서를 잘 녹여냈고, '장화, 홍련'은 공포, '달콤한 인생'은 조폭누아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스파게티웨스턴 등 뚜렷한 장르에 김지운 감독이라는 인장을 남겨왔다. 하지만 '밀정'이나 '인랑'이나 '거미집' 등은 여러 가지 장르가 복합된 영화들이며 그 영화에서 김지운 감독의 연출이나 예술성이 빛이 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영화적인 외형을 잘 구현해 내지만 속은 비어있다. 그의 차기작인 '망내인'에서는 탁월한 원작에 힘을 받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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