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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색 Oct 27. 2024

기침이 옮다.

2편

 방 안에 홀로 누워 있던 최 씨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만큼은 그 누구도, 심지어 한 씨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다. 건강검진이라니. 죽어가는 이 몸뚱이를 더 이상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 씨는 알고 있었다. 한 씨가 물러서지 않으리란 걸. 그 온화한 눈빛 속에는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한 씨는 고집스러운 편이었다. 이내 체념의 한숨과 함께, 그는 무거운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한 씨와의 만남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느릿느릿 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잡이에 손을 얹는 순간, 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끼익, 덜커덕, 철컥." 문 너머에는 익숙한 얼굴, 한 씨가 서 있었다.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환한 얼굴에서 묻어나는 걱정과 안타까움은 덤이었다. 그 표정을 마주할 때면, 오히려 마음만 불편해졌다. 한 씨의 해맑음이 자신의 침울함을 부각시키는 것만 같았다.     


 "어르신, 오늘 무료 건강검진 가시는 날 아니었나요? 같이 가시죠." 한 씨의 목소리에는 최 씨를 향한 배려가 묻어 있었다. 걱정 어린 눈빛 너머로, 최 씨를 돕게 되어 기쁜 마음이 엿보였다. 한 씨에게 있어 이 작은 봉사는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일이었다.     


 "어르신, 제가 이번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무료 건강검진 자리를 마련했어요. 제안서도 만들어서 돌리고, 관계자분들도 만나고 음, 비록 지금은 퇴직했지만 현역 시절 쌓아둔 인맥이 있어 보람 있더라고요." 한 씨의 말투에는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오랜만에 빛을 발하는 사회성에 대한 기쁨, 그리고 그것이 최 씨를 위해 발휘되었다는 뿌듯함까지. 봉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선 떨긴. 누군들 젊었을 적엔 그렇게 살았겠어? 다들 한때는 잘나갔던 사람들이었을 테지." 최 씨는 퉁명스럽게 말을 뱉으며 한 씨의 부축하는 손을 뿌리쳤다. "쿨럭, 퉤!" 기침과 함께 탁, 침을 뱉어냈다. 그 말투에는 오랜 세월을 관통하는 무게가 묻어 있었다. 지나간 영광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초라해진 현재에 대한 자조까지. 한 씨의 다부진 손이 스친 자리가 무안스럽다. 
 

 한 씨는 최 씨의 팔을 다시 잡았다. 지친 어르신의 몸을 일으키는 그 손길은 따뜻했다. "어르신, 그 기침 계속 신경 쓰여요. 약 드셔도 잘 낫지 않는다면서요? 그러니 오늘 검진 한번 받아보세요. 아, 공짜라니까요?" 
 
  어쩌면 최 씨의 그 고집스런 모습에 끌리는 걸지도 모른다. 외동아들로 자란 한 씨에게, 최 씨의 모습은 투덜거리지만 왠지 정이 가는 맏형 같았다. 그 퉁명스러움조차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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