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렙으로 돌아간 리그 원탑 프로게이머의 겜생 2회차
텐센트를 뒤에 업은 빵빵한 자본, 참신한 원작 소설의 IP가 훌륭한 작/감/배를 만났다.
대륙의 자본을 업은 웰메이드 e스포츠 드라마- 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전체적인 <전직고수>의 스토리라인은,
리그를 제패한 탑급 선수인 남주가 구단과의 불화로 쫓겨난 뒤 PC방 알바생이자 레벨1부터 다시 시작하고, 오로지 실력 하나로 게임을 평정하며 자기만의 구단을 꾸려 다시 프로리그로 복귀하는 이야기다. 특히 남주는 비인기캐릭터+자기만의 무기 제작을 통해 리그를 뒤흔드는 대역전드라마다. 작중 가상 게임인 '글로리'의 특성 상, 아이템빨과 실력빨이 동시에 필요한 게임인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남주가 그걸 해냅니다!!! (원작 작가 피셜 <던전앤파이터>가 모델이었다고.)
<전직고수>를 롤(LoL)로 치환하자면 페이커가 팀에서 방출된 뒤, 갑자기 티모를 주챔으로 들고 + 정글러로 포지션을 바꾼 뒤 + 바닥부터 팀을 꾸리는 이야기며, 리니지로 치면 일명 집판검, 진명황의 집행검을 가지고있던 프로리그 선수가 모두 버린채 1렙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심지어 새로 꾸리는 팀 역시 피아니스트 출신 왕초보+재야의 고수+다른 팀 연습생+은퇴 선수+해체팀 주장 등 신인과 후보선수들 같은 언더독들 위주다. 공통점이라곤 '글로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뿐.
중드 + E스포츠 계의 <스토브리그>
작년 겨울 야구판과 드라마판을 뒤흔들며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 <스토브리그>.
비밀번호 등수를 전전하는 하위권 야구팀에 신임 단장이 부임하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하고 결국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는 통쾌한 역전극을 그려내면서 야구팬과 드라마팬 모두를 잡았다. MBC 극본공모 수상작이지만 '스포츠 소재는 돈이 안 된다'는 평가에 쫓겨나 SBS에서 결국 무려 19%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해내며 드라마 자체도 역전 스토리를 써냈다. 심지어 SBS가 2019년도 플레이오프 중계하는 내내 앞뒤로 드라마 예고편을 틀어댄 덕에 드라마에 관심 없는 야구팬들까지 잡을 수 있었다.
<스토브리그>의 장점은 명확하다. 보편적이지만 뻔하지 않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보고 싶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드는 야구 이야기지만 그 중에서도 선수가 아닌 프런트의 이야기라는 참신한 소재다. 동시에 야구를 모르더라도 공감이 가능한 일종의 오피스 드라마다. 꼴찌팀의 역전드라마라는 보편적인 내러티브지만, 거기에 덧붙인 각종 사건들이 전부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를 탈탈 털어낸 만큼 신선하고 다양하다. 그렇기에 아마 향후 10년간은 여기서 각종 소재를 다 써먹어버렸기에 한국에서 야구드라마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동시에 많은 사건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빠르게 몰아치고 봉합되는 호흡도 좋다.
<전직고수>는 대륙의 <스토브리그>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게, 정말 모든 장점을 다 갖추고 있다.
스포츠 드라마 특유의 역전+성장스토리도 쫄깃하고 시원시원하게 잘 살았고, 게임과 E스포츠라는 소재를 정말 훌륭하게 다뤄냈다. 로맨스가 빠진 자리에 많은 인물들, 그리고 팀별 성장스토리가 들어갔다. 인물들 각각의 서사도 흥미롭게 잘 풀어냈고, 고구마 구간도 길지 않다.
물론 남주가 마스크 하나 꼈다고 극성팬들조차 최고 인기 선수를 못 알아본다는게... (그것도 양양 얼굴을) 매우 억지스러운 설정이긴 하지만 드라마적 허용으로 생각하자. 한드에는 점 하나 찍었다고 아무도 못 알아보는 여자, 화장했다고 몰라보게 예뻐지는 다수의 여성도 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의의는 하나의 오락에 불과한 스포츠를 인생의 일부로 치환하는, 스포츠 드라마의 임무이자 숙명을 훌륭하게 달성했다는 데에 있다. 게임이나 e스포츠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자칫하면 '고작 게임'이라는 말을 듣기 쉬운 내러티브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 속의 가상 게임인 '글로리'는 작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 그 자체로 그려지며, 설득력도 충분하다. 프로게이머라는 독특한 직업에 뒤따르는 그들만의 삶을 핍진성 있게 잘 살린 점 역시 인상적이다. 등장인물 각각이 프로게이머와 게임산업 종사자들 인생의 일부를 대변한다.
중드인듯 중드 아닌, 중드같지 않은
개인적으로 <전직고수>는 내 첫 중드 입문작이다.
그런데도 '중드스럽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다. 중드를 꽤나 본 뒤에 다시 보는 느낌은 또 다르긴 하겠지만, 전혀 중국 현대극, 특히 우상극 류의 드라마들이 가지는 고질적인 문제점들(평면적인 캐릭터, 기시감 넘치는 00년대 한드형 조연이나 억지 전개) 등이 적은 편.
물론 대신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비주얼은 물론이거니와 실력 하나만으로 리그를 두 번이나 평정하는 먼치킨 캐릭터로써의 존재감이 확연히 있다. 엽추 캐릭터만의 특별한 캐릭터성을 부여했더라면 더욱 매력적이었겠지만. (시즌2에서 풀어주리라 믿습니다) 또 주변 인물들이나 팀 동료들 역시 민폐 캐릭터가 많지 않고 매력있는 캐릭터들이 많다.
또 중국 3대 IT기업이자 플랫폼인 텐센트 작품답게 빵빵한 자본을 등에 업은 티가 줄줄 흐른다.
직접 배우들의 얼굴을 본따 만든 캐릭터들로 가상 게임 '글로리' 내의 플레이 화면을 직접 구현한 것부터가 한드에서는 정말 꿈도 못 꿀 일이다. 앞서 리뷰했던 <미미일소흔경성>도 게임 내 화면을 구현하긴 했으나 생활 장면이 대부분인 데 비해, <전직고수>는 프로 리그에 전투장면을 주로 다루는 만큼 CG의 난이도나 전체적인 퀄리티 자체가 훨씬 높다. 특히나 팀대팀 단체 전투씬은 정말 실제 프로게임리그의 전투씬을 옮겨놓은 것 같다.
또 중국 내 프로게임리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만큼, 중뽕이 심하지 않은 점 역시 매력적.
비슷한 예로, 똑같이 프로게이머들의 이야기를 그린 <배니도세계지전>은 첫 회차부터 글로벌 리그에 진출한 중국 팀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작품 내내 중뽕이 줄줄 흘러넘쳐서 보기 불편할 수 있다. 인물들이 프로게이머가 된 이유 역시 중국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서- 라는 지극히 애국심에 의한 선택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전직고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를 애국심이 아닌, 게임 '글로리'에 대한 사랑으로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중뽕 탈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리에 대한 인물들의 무한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덕에 <전직고수>는 더욱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온라인 게임이라는 '오락'을 스포츠의 일환, 더 나아가 인생의 일부가 되는 경지로 올려놓으며 '게임'이라는 소재를 화려하게 부각할 뿐 아니라 설득력까지 높이면서 시청자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스포츠 드라마가 분명히 극적인 스토리라인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힘든 것은 바로 해당 종목의 팬이 아니라면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직고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물들의 '글로리 사랑'을 설명하고, 프로게이머들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면서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우승을 향한 인물들의 욕망에 공감하게 만든다.
요즘 중드 커뮤니티나 SNS에서 <전직고수>를 보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속속 보인다.
입소문 많이 타서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전고단에 가입하기를..
무엇보다 상남자가 되어 돌아온 양양의 비주얼이 정말 빛을 발한다.
<미미일소흔경성>에서는 뽀둥하고 상큼한 비주얼이었다면 여기서는 정말 조각같이 잘생긴 느낌이다. 게임 내 캐릭터도 묘하게 다르게 생긴 게 킬링포인트. 내년 방영 목표로 또 게임 소재 드라마인 <니시아적영요>를 디리러바와 함께 찍던데 매우 기대중이다.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에 있으니 많관부
>> 전직고수 시즌 2 존버합니다 텅쉰 열일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