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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에 대해서

by 꽃비내린 Mar 24. 2025

대학 친구들과 단톡방은 특별한 개인사가 없는 한 조용한 편이었다. 카톡방에는 친구의 입사, 결혼, 이사, 퇴사 등 으래 한 번씩은 겪는 축하 소식들이 전해졌다. 지금까지는. 지난주 팀원과 원온원을 하는 중에 휴대폰 진동이 여러 번 울렸다. 처음엔 광고 전화인 줄 알았으나 불규칙하게 울리는 진동에 카톡 메시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바쁜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 카톡을 확인했다. "P가 호스피스에 있대.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까 주말에 같이 내려갈 수 있어?"

나는 속에 무거운 무언가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앞선 친구들이 남긴 메시지의 흔적들을 따라갔다. P는 대학교 같은 과 동기였다. 강의실에선 고정석처럼 앞자리에 앉는 멤버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P,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하는 대학 친구들이 그들이었다. 강의는 점심쯔음 끝나는 일이 많아 자연스레 점심도 같이 먹게 되었다. 나중엔 서로의 자리를 맡아주려 연락하기 위해 단톡방이 생겼다. 나는 같이 밥 먹는 패밀리를 줄여 우리를 밥팸이라 불렀다.

P는 유일한 남사친이었다. 그는 밥팸의 청일점으로 꽤나 여자들 사이에서 잘 어울렸기 때문에 편한 이성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를 끝난 다음 주에 서울로 서둘러 올라갔고, 그 이후 한 사람씩 대학원과 취업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약속을 한 것처럼 1년에 두 번을 부산에서 혹은 서울에서 모였다.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약속장소에 가는 길에 P를 우연히 만나 가던 길이었던가. 옆에 다른 친구도 있었던 것 같다. P가 나에게 건넨 말엔 이성적인 호감을 암시하는 듯한 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친구가 알아차릴까 당혹스러웠고 제대로 된 답을 못했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밥팸을 나갔다. 취업 준비에 집중하고 싶고 여자가 많은 단톡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날의 내 소심한 거절이 방을 나가게 된 이유였지 않을까 양심이 찔렸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그 이후로 꽤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건너 건너 P가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었다.

톡방에서 친구의 결혼소식과 함께 청첩장을 받으러 와라는 점심 초대를 받았다. P도 함께하는 자리였다.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과 무색하게 그는 여전한 얼굴로 먼저 인사를 했다. P는 사실 자기도 곧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건넸다. 결혼식은 멀리서 열려 꼭 오진 않아도 되고 얼굴 보면서 겸사겸사 결혼 소식을 알리려고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이제 P와 나는 친한 친구도 친한 지인도 아닌 과거의 친했던 동기 그 정도의 사이라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고 P의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에 사랑스러운 아내까지 앞으로 행복할 날만 남았을 그에게 안타까운 일이 찾아왔다. 뇌의 종양이 생겼다고 한다. 같은 나이의 사람이 죽음을 가까이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겐 죽음이란 개념은 공포에 가까워서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막혔다. 잠시 호전될 줄 알았던 증상은 다시 악화되었고 치료도 중단한 채로 기다리기만 한다고 전해 들었다. 주말 언제 시간이 될지 서로 답장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나는 대신 위로를 전해달라고만 하고 가지 않기로 했다.

주말에 일정이 있다는 핑계를 댔지만 마지막을 기다리는 P의 모습을 보기가 두려워서, 여태껏 연락조차 안 한 상대에게 마지막이랍시고 찾아가기 그래서가 진짜 이유였다. 이것이 잘한 선택일지 모르겠다. 부고 소식을 들었을 즘 후회할까. 그의 마지막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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