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넬(NELL)은 제 종교예요”

동경하고 존경하는, 밴드 넬(NELL)

by 사랑의 천문학

“승완이는 제 종교예요.”


몇 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 지웅이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승완을 향해 한 말이었다. 승완은 전교 1등 학생이었고, 그럼에도 불의에 굴종할 줄 몰라 ‘옳음’과 ‘바름’을 추구하던 친구였다. 개성있던 지웅이를 향한 당시 교사의 부당한 체벌을 승완은 방관할 수 없었다. 두 가치를 지향함에 있어 승완의 선택지가 그동안의 삶의 성취를 포기하는 것밖에 남지 않게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학교를 자퇴하며 당당하게 그 길을 택했다. 지웅이가 승완이에게 ‘종교’라는 말을 건넨 것은 비단 그녀의 학업 성적이 ‘신’처럼 우수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정말 멋진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배움의 마음이 절로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지웅이에게는 연인 유림이만큼이나 승완이가 더없이 소중한 행운이었을 테다. '종교'라는 정의의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 핵심은 '온전한 믿음'에 있다. 한 때 다른 드라마를 통해서 화두가 됐던 '추앙'보다 더 큰 믿음을 종교에는 가지게 된다. 승완의 당차고 당당한 삶과 걸음에 지웅은 친구와 동년배 인간으로 존경을 보냈다. 비단 집회를 통한 신자들의 열렬한 탄성과 간증만이 종교의 필요조건일 수 없다. 이 사람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그를 응원하는 것 역시 하나의 소중하지만 거창하지는 않은 종교다. 지금 세상에 거대한 수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들 또한 시작은 언제나 소박했다. 그러니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종교가 된다는 건 세를 불려 언젠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위인을 미리 알아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지지가 굳건하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에서 밴드 '넬(NELL)'은 나의 종교다. 종교라면 넬이 교주여야 하는데, 넬은 단 한 번도 그 지위를 참칭한 적은 없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의 승완이가 지웅이에게 '자, 내게서 배워라'라고 한 적 없 듯, 넬의 역사에도 '나를 믿어라'라는 강제적 설파는 당연히 부재했다. 그러니 내 마음 안의 믿음은 온전히 자발적이기만 한 믿음이다. 그만큼이나 나를 넬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좋아함'이라는 소소한 표현으로는 '넬'에 대한 지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추앙'도 모자르다. 그러니 넬 역시 나의 종교고, 한 순간도 강요된 적 없기에 소중한 지지와 응원이다. 넬 덕에 내가 많이 웃고 위로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딱히 기적을 행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넬은 자신의 음악을 할 뿐이다. 그 음악을 세상에 내놓고 공연에서 곡들을 부르고 연주하며, 나는 그들의 음원과 공연을 경제적으로 소비한다. 건조하게 얘기해서 넬은 생산자고 나는 소비자다. 생산자가 책정한 가격이 있고 나는 그에 맞게 지불한다. 개인적인 교류가 없으니 넬과 나의 관계는 여기까지다. 지옥같은 출근을 하고 역시나 만만찮은 시간을 견디며 돈을 버는 건 지금이든 미래든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다. 무수히 많은 소비들로 이루어진 내 일상에서 생산자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낄 일은 '거의'라는 표현조차 민망할 만큼 전무하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넬에게는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도 한없는 고마움이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나의 돈벌이에 고마움을 느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 정도까지는 삭막해도 별일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서운함도 전혀 없다. 나조차도 누군가에게도 가지지 않는 고마움을 누군가만큼은 내게 꼭 가지길 바라는 것도 비양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유독 넬에 대해서는 그들의 활동이 언제나 고맙고 뭉클하다.

그건 아마도, 넬을 통해 내가 많이 '치유'됐기 때문이다. 물론 치유는 진행 중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 시기는 다가오고 있지만, 이미 착공이 오래됐기 때문에 일부 구역에서는 보수 공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한 순간도 완벽할 수 없지만 언제나 완벽함에 근사하기 위해 애쓰는 성당이기도 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뭉클한 건 그 장엄함과 역사의 물리적 기간 때문만이 아니다. 성당을 짓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 삶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을 성당에 빗대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자라며 우리는 마음 여기저기에 상처를 받는다. 사람은 계속 자라고 성장하다 늙을 것이지만, 마음 안 어디에도 상처가 없는 시기는 서글프지만 높은 확률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리한 보수공사는 어린 나이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되며 아마도 이 작업의 마무리에는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때때로 어떤 상처는 단순한 연고칠과 밴드로는 매조지어지지 않을 만큼 움푹 패일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낫게 할지에 대해 그저 암담한 막막함만이 가득한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통증도 이어진다. 움켜쥘 수록 아픈 상처다. 이게 나아지는 날이 올까라는 의구심은 굳이 이를 안고 살아야 하나라는 회의로도 이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 당연했던 호흡의 관성에 의심이 드는 순간,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큰 괴로움에 출렁인다. 너무나 당연했던 건 언제까지나 너무나 당연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한 삶의 이름은 때론 절망이고 때론 좌절이다. 휘청이던 순간에 기댈 벽이 없었고, 그러니 무너진 몸을 지지할 곳이 없었다. 세상은 북반구의 겨울 밤처럼 춥고 깜깜하기만 했다. 버틸 수 있을까, 굳이 버텨야 하는 걸까, 반드시 벼텨야 할 이유가 어딘가에는 있을까. 날카로운 질문은 날마다 기세가 등등해져 더욱 뾰족하게 나를 찔렀다.


우리는 죽을 것 같던 일들에도 죽지 않고 견뎌냈던 경험 덕분에 삶의 면역을 얻는다. 자주 쓰는 표현이고, 내가 한 말이니 가급적 믿으려고 애쓰는 문장이다. 그때 내가 죽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에는 넬과 넬의 음악이 있었다. 너무 막막했던 삶에 그래도 나처럼 비틀대고 아파하며 걸어갔던 누군가의 발자국이 내게는 넬의 음악이었다. 그냥 무작정 그 발걸음만 따라 걸었다. 때론 음악을 가만히 계속 들었고, 공연 때마다 찾아가서 그들에게 환호했다. 힘내라는 말이 없어서 힘이 났고, 따뜻하기만 하진 않아서 따뜻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이 어려운 건 너무나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마냥 남의 탓인 것도 없고, 마냥 내 탓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비율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 같은 역학 관계가 인력과 척력으로 인연과 꿈 등을 제어한다. 이토록 지랄 맞은 세상에서 그러니 내가 알 수 있는 건 오직 내 감정 뿐이다. 내가 아프고 괴롭다는 건 삶의 물리나 수학을 굳이 따지지 않아도 너무 명백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너무 아픈 날들을 노래하던 넬의 음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날들을 그리워하게 됐고, 언젠가는 내가 겪는 감정들도 그리움의 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선험자의 고백은 큰 위로였다. 그러나 그보다 큰 위로는, 왜인지 모르게 넬을 들으며 내 감정의 이름들을 알게 됐고 그것에 정직해도 된다는 느낌이었다. 나이마다 또 사람의 기질마다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과 괴로움들을 부당하게 억누르거나 억압할 필요 없이, 오늘은 또 이런 통증이 찾아왔다며 솔직하게 다만 필요한 만큼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무딤을 동경해왔으나 무뎌지기 전 반드시 겪어야 할 어느 정도의 고통들에 대해선 마냥 회피하려 했었다. 삶의 무대에서 숨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성공되지 못한 도피는 더 큰 괴로움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겪을 만큼 겪어야 면역이 생긴다. 다만 그게 너무 감당할 수 없을 때 내쉬는 숨조차 미워했다. 넬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차분히 아파할 수 있었다. 어차피 찾아올 아픔을 차분히 인내할 수 있던 건 분명 큰 축복이었다.

부정과 비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내게 불행은 확신이다. 애써 불행을 에두르는 것의 소용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기도 하다. 불행을 불행이라 말하고 못되디 못된 불행을 현명히 견디는 게 내게는 더 효율적으로 느껴진다. 다만 견뎌내는 시간 동안 기댈 무언가는 꼭 필요하다. 내게는, '나 역시도 그랬고, 그렇게 느끼는 네가 틀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넬의 음악이 불행의 시간 동안 내가 숨 돌릴 안식처다. 넬은 본인들이 좋아서 하는 음악이 세상 누군가 한 사람을 살린 걸 아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염두하고 애써 불어넣은 호흡이었다면 어쩌면 내가 지금같은 뭉클함과 위로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넬의 직업적 행위에 내가 이토록이나 고마움을 느끼니, 넬을 나의 종교라 하는 것에 큰 결격 사유는 없지 않을까. 물론 내가 넬의 찬가를 여기저기 부르며 시간과 장소에 어긋나는 소란스러운 전도를 해대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나는 넬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공연에 참석하며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 이토록 고마운 마음으로 본인들을 응원하는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게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됐고 그게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그들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작년 여름 콘서트 제목은 <Our Eutopia>였다.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유토피안이기보다는 디스토피안에 가깝다. 단 한 번도 세상은 유토피아였던 적이 없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좋은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면, 좋음이 독점되는 유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재화와 자원은 한정적이라 모두에게 좋을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는 것도 나의 섣부른 추론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소한 넬의 공연에서만큼은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이건 넬의 공연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즐거움이 무척이나 귀한 세상이다. 위로와 즐거움 그리고 때로의 행복까지 선물하는 이 밴드에게 나는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아래의 당당한 외침과 더불어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으로 응원을 보낸다.


"밴드 넬(NELL)은, 제 분명한 종교예요."


혹시 이 글을 보고 넬의 음악을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넬의 세 곡은 아래와 같습니다.

- Afterglow

- Dream Catcher

- Standing in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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