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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un 29. 2022

오늘의 나는 얼마나 사람한가요

여름과 청춘은 어디에 있나요. 푸름은 초록과 파랑을 함의하는데. 고장 난 필름 카메라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나요. 초점이 번져 흐릿하기만 한데. 푸미라와 파미르는 비슷하게 발음되지만 하나는 이름이고 하나는 이름이 아니다. 너에게서는 싱그러운 향기가 나. 풀잎의 노랫소리처럼. 채도 낮은 풍경은 예민한 신경의 채도를 낮춰주고. 차분하고, 차분한 세상. 작은 숲은 일렁이는 물결이 되고 일렁이는 물결은 추락하는 비가 되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이 여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보면 너의 이름은 사랑 같아. 춤추는 별들의 길을 따라 걸으면 지붕을 두드리는 빗물에 젖는다. 잃어버린 우산은 잃어버린 채로 둔다. 방에서 키우는 식물은 햇빛을 보지 못해.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지. 시드는 것들은 왜 그렇게나 아름다울까. 어쩌면 낱말들은 사람들의 뱃속에서 태어날 거야. 사랑. 사람. 삶. 수밖에. 수박에. 수박. 비슷한 낱말은 왜 비슷하게 태어났을까. 비슷한 이름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사람은 모든 것은 분리 분절해서 인식하죠. 아이의 웃음은 몇 개로 나누어지나요. 향수를 뿌리면 향기의 입자가 허공을 맴돌고.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언제부턴가 알고 있던 이름.


연관 없는 것들의 나열은 여름과 청춘 두 단어를 나란히 하는 것과 같아요. 푸른빛의 그림자 속에 어둠을 숨겨 달아나면. 내가 훔친 것은 어둠, 네가 훔친 것은 고양이. 어둠과 고양이는 얼마나 닮았나요. 물감을 발라 반으로 접은 종이처럼. 물에 젖어 조각나며 가라앉는 종이배. 오늘의 나는 얼마나 너와 닮았나요. 오늘의 나는 얼마나 사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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