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제 기도가 접수 되었나요?

몇년간, 나도 모르게 하느님과 함께한 기록

by 베로니카

*본당에서 실시한 가정의달 신앙수기, 저도 짧게 써 보았습니다.

다음주에 보좌신부님께서 아이 이름을 부르시며 상품을 주셨어요.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상품을 받고 좋아했습니다.

프란치스카, 그거 엄마가 글 써서 받은거야 ㅎㅎㅎ*



<하느님! 제 기도가 접수되었나요?>



“가족 모두 함께 미사를 봉헌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한지 6년이 지났습니다. 천안쌍용동성당에서 2015년 12월에 저는 임신 7개월의 몸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집안에서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고 기뻐하던 순간은 잠시, 냉담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저는 산후우울증을 겪었고, 남편 역시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지병으로 늘 힘들어했거든요. 설상가상 저의 타지 발령으로 온 가족이 시골에서 살게되면서, 저는 아픈 남편을 집에 두고 아이와 출근했고, 평일 저녁엔 사람이 거의 없는 성당에서 미사를 평일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 시골구석에서, 우리 프란치스카만은 잘 키워달라는 기도를 바쳤었지요.


프란치스카는 제 걱정과는 상관없이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성당 할머니들과 마태오 신부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는 저희 집 상황을 아시고, 자필편지로 남편에게 직접 편지를 써주시기도 했고, 직접 찾아와 가정 미사를 집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만 고해성사도 그때 뿐, 남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가자, 가자, 해도 무게가 천톤이 넘는 돌부터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희가족은 관사 생활을 정리하고, 사실은 시골생활이 너무 고되기도 해서 차라리 편도 90킬로미터, 왕복 180킬로미터를 통근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장거리 출퇴근을 시작하게 된 저는 매일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 운전 길에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어느 날은 울었고, 어느 날은 떼쓰고, 어느 날은 이렇게 여쭤봤습니다.


“하느님, 제 기도가 하느님께 접수된 게 맞나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저는 지금의 성당으로 교적을 옮겨 주일 저녁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살의 프란치스카가 성전 맨 앞자리에 앉아 성가도 크게 부르고, 뒤에 앉은 할머니들께 용돈도 받아가며 그렇게 시골성당에서처럼 사랑받았습니다. 또 1년이 지나고, 프란치스카는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주일학교에 등록했고, 저도 보조교사로 1년간 봉사했습니다만, 남편만큼은 주일마다 꼭꼭 미사시간에 맞추어 술을 마시는 등, 참으로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제 기도는 누락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요.


2022년, 프란치스카는 일곱 살이 되었고, 저는 15년간 일한 학교를 잠시 떠나 교육청에서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는데 기적적으로 면접에서 합격했어요. 왜 내가 뽑혔을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저는 격무에 시달렸습니다. 밤낮없이, 그리고 주말도 없이 일이 있더라고요.


매번 저 혼자 데려다 줄 수 없겠다고 판단한 저는,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토요일 오후 3시까지 주일학교에 가달라고 몇 차례 부탁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결국 반 년 정도, 제가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멀리까지 출근했다가 오전에 최대한 일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려 2시 50분, 55분에 성당에 도착해 어린이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초조함과 눈물과 상관없이 프란치스카는 진심으로 행복해했습니다. 미사 자체에서 행복함을 찾는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데리고 성당으로 향하던 2023년의 어느 토요일, 저는 또 마음으로 여쭈었습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미사를 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 기도가 접수는 되었나요?” 하며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한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영상 속 신부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매일매일, 여러분을 미사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이유 모를,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제가 여쭤본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대답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달까요.


그로부터 한 달 뒤, 그 주 토요일은 제가 하루종일 서울에 출장을 가야했습니다. 아이는 저를 따라갈 수도, 제가 아무리 일을 빨리 끝낸다 해도 어린이미사에는 절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저는 약간 자포자기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지도 않은 언짢은 기분으로 출장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이가 “나 그럼 내일 누구랑 주일학교 가?” 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한참을 침묵하던 남편이 TV를 보다 말했습니다.


“아빠랑 가자.”


아이는 정말? 정말?을 반복하더니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저는 반신반의하며 서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저녁에 만난 아이는 무척 신났고, 남편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많은 교리선생님들이 아이와 아빠가 무척 닮았다며 반갑게 인사해주셨고, 로베르토 신부님께서 고해성사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해 청소년분과 주관 성탄제에서 학부모 무대를 꾸며주셔서 하느님께 ‘강하고 담대하라’는 생활성가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가고,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저도 2024년에 부족하지만 초등자모회 임원으로 1년간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교리교사 빈자리를 지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새샘5구역장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남편은 잠시 고민하다 구역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뻘 되시는 구역장님들과 함께 예쁨받으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레지오에서도 막내라 숨만쉬도 있어도 예쁨받고 있고요. 왜 교리교사를 원하던 남편은 구역장과 레지오를 하고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남편에게는 저희 시아버지로 인한 일반인은 상상하지도 못할 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빠가 된 남편은 상당히 힘들어했습니다. 이런 저희 가정을 지켜보신 하느님께서는, 남편을 아이들 곁에서 일하게 하시기에 앞서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구역장님들을 통해 먼저 느끼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사랑이 부족한 가정에서 자라 쉽게 당황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꺼리는데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이다보니, 매일 번아웃이 옵니다. 그런 부족한 저에게도 성당에 나와 봉사하게 하시며 새로 사회성도 길러주셨습니다. 2025년 1월, 프란치스카도 첫영성체의 길을 지나 복사단에 입단하게 되고, 저도 남편을 따라 레지오 쁘레시디움에 가입하게 되면서, 저희 가족은 모두 성당에 자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을 만나는 많은 분들이 같이 나오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칭찬해주시기도 하고, 성가정이라고도 말씀해주십니다. 부끄러운 칭찬입니다. 집에서는 투닥대기도 하고, 서운한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 다툴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만 할까요. 지금은 그 어떤 상황이어도 그때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나날들이었지만, 또한 지금의 나는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언제 유혹에 거꾸러질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올 2025년 5월, 어김없이 가정의 달 미션이 주일학교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온 가족이 함게 기도하게 된 것은 아이가 여섯 살 때, 묵주기도성월 미션으로 매일 묵주기도를 시작한 몇 년전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희 가족은 혼자든, 함께든 묵주기도를 꼭 드리게 되었고. 지금은 저녁 9시에는 셋이 꼭 모여 주모경을 바치고 있습니다. 미션을 위한 사진을 찍지 못해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더군요.


그리고, 이 글을 꼭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5월 한달 내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을 쓸 환경은 더더욱 되지 않았기에, ‘아쉽지만 글을 쓰는 것은 못하겠구나.’ 하고 마음을 접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함께 주모경을 바치는시간, 그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로소 알게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부족함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교육청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보내셨고, 아이와 아빠가 친해질 시간을 주셨으며, 아빠는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주일학교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느님께서 저희 가정에 내려주시는 은총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제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은총도 무수히 많을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저의 생각과, 저의 방법으로, 이렇게 저렇게 충분히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많은 일상속의 고민이 많습니다.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점점 늘어갑니다. 저를 비우는 법도 잘 모르고, 저는 여전히 교만하며, 죄를 짓습니다. 하지만 그거 하나만은 믿고 매일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가정을 허락하셨고, 저희 가정을 매일 미사로 초대하셨으며, 지금도 저희 가정이 9시마다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 저같은 작은 인간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큰 그림을 제 삶 속에서 이미 완성하고 계시다는 것을요.


저는 이 글이 보상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5월의 마지막 날, 제가 몇 년간에 걸쳐 입었던,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게 된 오늘, 이렇게 고백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누가 얼마만큼 읽게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성당 앞에서 망설이는 분이 계시다면 인생은 어차피 진흙탕일때도 있고 아스팔트일 때도 있고, 거기에 좋은 차 타고 갈 때도 있고, 걸어갈 때도 있으니 이왕이면 혼자 가지 마시고 일단 하느님과 함께 가시는 길을 선택하시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솔직히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진흙탕을 뒹굴었어도 하느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믿었기에 매일 용기내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하느님께 닿았는지 방황하시는 많은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느님께, 그 간절한 기도는 접수되었을 겁니다.” 라고요.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할 뿐이니, 인내할 수 있는 힘도 주실겁니다.


<끝>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25. 5. 31. 남 베로니카 드림(3학년 정 프란치스카 엄마)


KakaoTalk_20250621_232728064.jpg

나의 사랑하는 세종성바오로성당.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불러주신 하느님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