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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맑으시네요." 3

텔레파시가 통하는 순간

by 봄비

그렇다. 나는 영혼이 맑아서 때론 우습기도 때론 무섭기도 한 예지몽을 꾸곤 했다. 영혼과 예지몽 사이의 관계를 이어 줄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저 길거리의 도인들이 나를 보며 영혼이 맑다고 접근했으니 그저 그렇게 갖다 붙여보는 것뿐.


어떤 생각을 깊이 하다 보면 그 꿈을 꾸게도 된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면 내내 시험을 치르는 꿈을 꾼다. 연재일이 다가온 밤, 글을 쓰다 잠들곤 한다. 그런 날에는 꼭, 멋진 시를 완성하는 꿈을 꾼다. 이렇게 깊은 생각이나 간절한 마음이 꿈으로 이어지는 일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이들이 내 꿈에 방문하여 현실 세계와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은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사촌오빠와의 연애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을 온 사촌오빠는 우리 집에서 함께 자랐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사촌오빠는 도널드덕의 주둥이가 툭 튀어나오게 하는 신기한 입체 카드를 만들 줄 알았고, 엄마 몰래 브루마블 게임을 사 와서 우리를 신세계로 이끌어 주기도 하였다. 어려운 방학 숙제를 척척 해결해 주던 그 오빠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둘이나 있는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소원한 시간이 오기 마련. 우리도 그렇게 명절에나 가끔 만나는 그런 시절을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의 꿈, 난 그 사촌오빠랑 너무너무 다정한 연인 사이였다. 그렇게도 다정한 남친이라니. 너무 달콤해서, 화장실도 참았다.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꿈에서 깬 아침, 다정한 오빠는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지만 현실자각은 여지없이 이뤄진다. 사촌오빠랑 연애질을 하다니. 현실로 돌아오니 그저 개꿈일 뿐이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 핸드폰을 찾았다. 카톡이 하나와 있었네.


세상에, 나랑 어젯밤 꿈에 연애를 했던 그 오빠가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놓았다. 이게 뭐지? 꿈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뜬금없이 웬 선물이야? 오빠는 어젯밤 새언니와 캠핑의 불멍을 즐기다가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 울보 짤순이가 이제 다 커서 어쩌고 저쩌고... 집안의 막내였던 어렸던 내가 잘 자라서 집안 식구들을 챙기는 어른이 되었다고. 오빠는 내가 자랑스러워 어젯밤 새언니와 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캠핑의 낭만을 즐기며 와인을 한 잔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밤에 오빠는 나를 생각하였고 나는 꿈속에서 오빠와 달콤한 연애를 했다. 그 밤, 꿈과 현실이 맞닿은 것 같았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절묘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꿈속에 나타난 일들을 그저 넘기지 못하는 마음이 되었다.


분홍색 롱패딩을 입고 나타난 오빠


내가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여름이면 바닷가로. 함께 시절을 보냈던 오빠가 있었다. 그러나 또 세월이 흐르며 연락이 뜸해진 사이. 그 오빠의 소식은 가끔 다른 이에게서 전해 듣는 게 전부였다. 유난히도 딸을 아끼고 사랑하던 그 오빠. 우리가 한창 함께 어울리던 시절에도 그 오빠의 딸, 여경이는 꼭 우리와 함께 있는 듯했다. 가장 최근에 들은 소식은 그 여경이가 미국의 직장에 취직하여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었다.


어느 밤 꿈. 그 오빠가 분홍색 롱패딩을 입고 나타났다. 그리 키가 크지 않은 오빠였는데 롱패딩의 역할 때문인지, 엄청 키가 큰 모습으로 내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꿈에서도 확 깨는 모습, 나는 왜 여경이 옷을 입고 있냐고 물었던 것 같다. 너무 뜬금없는 꿈. 나는 그 오빠의 딸 여경이가 미국에서 돌아왔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꿈들은 또 확인을 해보고 싶은 법. 오랜만에 나는 오빠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놀라는 오빠에게 어젯밤 오빠 꿈을 꿨다는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이었다. 혹시 여경이가 미국에서 돌아왔어? 물으니 오빠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한다. 그러게 왜 내 꿈에 여경이 분홍 롱패딩을 입고 나타나... 그러니 알았지. 몇 년 만의 통화에도 꿈 이야기로 어색할 겨를이 없었다.


임하연 시인님과 새벽의 조우


이건 꿈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의 새벽은 춥고도 어둡다. 잠을 깨우느라 커피를 마시며 운전을 한다. 운전을 하는 시간을 나는 참 좋아한다.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들기 좋은 시간.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의 생각은 늘 글 쓰는 일에 머물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임하연 시인님의 시가 떠올랐다.

임하연 시인님의「 일 분만이라도」라는 시. 갑작스레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시였다. 몸부림치듯 말하는 그 절절한 문장을 떠올리며 어쩜 그렇게 감정이 응축된 시를 쓸 수 있을까.

그 새벽 출근길에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에 반하여 임하연 시인님이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모두 읽었다. 또 다른 시도 읽고 싶어서 시인님의 브런치에 구독을 눌렀다. 나의 구애를 느끼셨는지 시인님도 나의 글에 구독자가 되어주셨고, 시 같지 않은 시를 쓰는 나의 글터에 아주 간간히 방문을 해주셨다.


그러나 나도 시인님의 글터를 방문한 지 오래되었으며, 시인님도 아주 간간이 나의 글을 읽어주실 뿐이었다.


그런데 그 새벽,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듯 임하연 시인님의 생각을 한참이나 하였다. 어쩌면 그리 아름답고 절절하게 시를 쓸 수 있을까, 고뇌하는 시인처럼 프로필 사진도 근사했지, 나도 머리를 그렇게 잘라볼까. 그 새벽에, 잠도 덜 깬 내가 시인님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핸드폰 알림음이 울렸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알림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고속도로를 120킬로로 질주하면서도 핸드폰을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알림 창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잠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임하연 시인님이었다. 새벽의 길 위에서, 묘한 전류가 지나갔다.


이것도 그냥 우연인 것일까? 출근길 운전을 하며 보통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나는 유독 임하연 시인님의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 순간 시인님은 내 글을 읽어주고 계셨던 거다.






내 깊은 무의식 속의 이들이 꿈으로 나를 찾아오는 일.

같은 순간에 서로를 찾는 일.

우연이라고 하기에 참 절묘한 순간들.


텔레파시라는 게 정말 있는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절실함이 이어주는 관계의 끈일까.

그저 우연으로 스쳐가는 해프닝일까.


임하연 시인님과의 조우의 순간,

새벽길의 묘한 전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순간 서로를 스쳐 지나간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혼이 맑으시네요>라는 제목으로 저의 신기한 예지몽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이 3번 째이구요. 저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도인 아니구요.^^


앞서 소개했던 두 편의 글도 소개합니다.


# "영혼이 맑으시네요"1

https://brunch.co.kr/@rainyspring/115


# "영혼이 맑으시네요"2

https://brunch.co.kr/@rainyspring/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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