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테니스인을 고발하다
그들은 아마도 엄마 뱃속부터 테니스 장인으로 태어난 듯. 아니면 시집살이 해본 여자의 시집살이 되물림을 테니스장에서 시전하는 것인지. 일부의 이야기로 전체를 매도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20년을 테니스장을 맴돌다보니 이 세계에 이런 행태가 만연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이 구차하게 보일까봐 먼저 변명부터 하고 고발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성격적 결함 탓으로 나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소심한 사람. 난타를 쳐도 상대에게 볼을 제대로 못 주면 미안해지고, 그 미안함이 또 나를 더 주눅들게 하여 꼬여버리는 스타일이다. 복식게임은 오죽하겠나. 이런 성격 탓에 전국대회 우승 몇 번 해본 사람처럼 거만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나였다. 누군가 애타게 권하기 전에는 난타든 게임이든 먼저 나서지 않았으며, 누가 권해도 손사레 치다 겨우 기어나갔으니까. 물론 나랑 쳐보면 내 실력은 들통나지만. 게다가 또 하나 나의 약점. 나를 가르치던 테니스 선생님이 속에 천불이 난다고 하셨을 정도로 난 운동신경도 없다는 점이다. 웃자고 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처음부터 테니스에 욕심을 부리기 어려운 두 가지 조건을 장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처받을까봐 욕심 부리지도 않았고, 욕심도 없었기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이들의 행태를 까발리고 싶은 내가 이상한 것일까.
#1. 나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사람이 모자라 나라도 있어야 될 상황을 기다리는 것. 내 옆에 여자 세 명이 하는 말. "아, 사람이 없어서 게임(복식)을 못하네." 참나, 나는 사람도 아닌가. 사람을 옆에 두고 사람이 없다니. 그 여자들과 게임할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던 나이지만,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무안했다.
#2. 조금 실력 차가 있는 여자 두명이 파트너가 되어 복식게임을 한다. 둘 중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한 여자가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친다. 그 순간. 조금 실력이 나은 여자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자기 파트너를 향해 낮고도 앙칼지게 하는 말. "어따대고 화이팅이래?" 아이쿠야. 테니스가 뭐라고. 사람 잡겠다.
#3. 이제 테니스 배운지 3년 된 열정 넘치는 남자. 앉아 있는 고수들에게 "한 게임 하실래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고수들은 이렇다 저렇다 대답도 없다. 이런 장면을 여러차례 목격한 나는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 그 남자에게 넌지시 조언을 한다. 그 착한 사람이 상처받는게 안타까운 마음으로.(나는 비굴한 테니스 구력이 나름 20년이니 보고 들은건 많지 않나.) 먼저 게임하자고 하지 마시라고. 하자고 할 때 고마운 듯 하는게 더 모양새가 좋지 않겠냐고. 미국에서 30년 살다온 그 남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좋은 웃음, 그 남자를 위하여 미묘한 그 감정들과 테니스장의 생태를 더 설명해주고 싶었으나 오지랖이다 싶어 입을 닫았다.
#3-1. 그런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사람좋은 웃음,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테니스장에 안나올거라고. 사연은 이렇다.
사람좋은 웃음 남자는 자기랑 비슷한 실력의 신참과 볼박스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고수들이 들어오더니 볼박스 치우라고 했다고. (코트는 2면이라 방해받지 않는 상황) 그래서 볼박스를 치웠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게임 하실래요?" 물었다고. 또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겠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안해서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그들은 자기를 빼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그래도 괜찮았다고, 참을만 했다고 한다. 게임을 보며 신참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게임하는데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단다. (모두 50대 이상의 남자들임) 사람좋은 그 남자도 자존심이 상해 그날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다음날 열정 많은 그 남자는 또 새벽운동을 갔단다. 그 남자가 새벽운동 하는 걸 이 클럽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테니스장 열쇠의 비밀번호를 바꿔놓았다고.
#3-2. 그 이후 이야기. "한 게임 하실래요?" 이 말이 고수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하던 나의 생각이 맞았다. 그들은 그게 거슬렸다고, 하수가 자꾸 게임하자고 말하는게 거슬렸다고 한다. 클럽의 회장과 몇몇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며 테니스장 열쇠를 바꿔버리라고 했다고. 사람좋은 웃음, 그 남자를 달래려던 총무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쐐기를 박는다. 원래 하수 때는 다 그렇게 설움을 겪는거라고. 자기는 더 많이 겪었다고.
어디 위의 세 가지 이야기 뿐일까.
하수는 투명인간 취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화이팅!" 이라는 말은 하수는 고수에게 하면 안되는 말인가?
"한 게임 하실래요?"라는 말은 하수는 하면 안되는 말인가?
그럼 하수는 언제 실력을 키우나?
하수 때 설움을 겪으면 꼭 그대로 되물림 해야한단 말인가?
상처받을까봐 먼저 게임하자고 말하지 않는 나, 그래서 게임을 안하니 상처받지 않는 나. 상처는 받지 않았지만 난 구력 20년에도 실력이 제자리다. 속에서 천불난다는 그 코치님이 나보고 하신 말씀. 누가 너 구력을 물어보거든 3년이라고 하거라.
그래, 어떻게 사는게 맞는 것인가.
1. 상처 안받으려고 욕심 안 부리는 나. 그래서 실력도 제자리인 나.
2. 넘치는 열정과 순수함으로 "한 게임 하실래요?" 말하며 상처도 실력도 늘 예정인 사람좋은 웃음, 그 남자.
3. 아까운 내 시간, 더 잘 치는 사람들과 임팩트있는 게임을 즐기고 싶은, 설움 딛고 일어선 자칭 고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