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여디다.. 헤여디다... 입말로 반복될 때의 느낌이 헤어지다와는 조금 다르다. 함께 있던 누군가와 떨어져 멀어졌다는 물리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본래의 의미에 더해 그 뒤 이어지는 감정적인 결까지 담고 있는 느낌이다. 천이 찢어진 것으로는 모자라 이젠 색마저 바래버린 느낌이랄까... 감정의 골이 깊어져 더 처연한데 출렁거리던 감정의 흔들거림은 잦아진 느낌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에 처연하나 흘릴 만큼 흘린 눈물 뒤로 남겨진 먹먹한 슬픔의 메마름이 만져지는 것만 같다. 안다. 술 취한 이들이 내뱉는 고백처럼 필요 이상의 감상적 해석처럼 들린다는 것을. 다만 지금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기꺼이 취한 상태이기에 그냥 알콜기 가득한 해석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ㅋ
삶이란 시공간 속에 놓인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때때로 헤어짐이란 문을 통과하게 된다. 문을 지나고 나면 전과 같은 세상임에도 숨 쉬는 공기가 다르고, 지나치는 가로수의 시선이 다르고, 발에 느껴지는 중력도 다를 때가 있다. 헤어짐이 남기는 흔적들이 늘 같지는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시구와 노랫말들에 그려진 헤어짐은 결국 헤어짐 이후 얼마나 세상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고백의 다름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달라지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픈 간절함, 또는 뒤늦게 찾아온 후회에 대한 토로이거나. 많이 보고, 많이 들었고, 경험도 좀 했다. 헤어짐의 사건 뒤 달라지는 시공간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헤어짐의 흔적을 느끼는 시기가 누군가에겐 뒤늦게 찾아오는 것일까.
몇 년 전이었다. 인생에 있어 두 가지 중요한 연결고리가 같은 해 끊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는 둘 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라 믿었던 관계였었던 것이 맞다. 일과 사랑. 사람들에게 보통 가장 중요한 그것이었다. 허나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고 말하긴 어렵고, 일정 부분 나의 의지도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고와는 분명 달랐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나의 둔감함 때문인지 생각보다 괜찮다고 여겼고,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뒤늦게 그 여파가 찾아왔던 모양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은 감지했지만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는 인식하지 못할 때와 같았다. 약간의 무기력증과 약간의 허탈감과 뜬금없이 찾아오는 눈물이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생겼다. 남들 하듯이 여행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해외여행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무언가 이번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낯설고 생경한 곳이 주는 신선함이 그동안의 고민을 잊게 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남기는 즐거움도 얻겠지만 이번 여행이 그렇게 되길 원하진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좋아, 그럼 국내에서. 그런데 어딜 가고, 뭘 하지?
그때 그래도 가장 쌩쌩해 보였던 건 너였는데..
딱히 계획된 일정도, 번호표 뽑힌 욕구도 없었다. 그저 ‘섬도 같고, 뭍도 같은 남도를 쭉 돌면 좋겠다.’ 정도가 계획표 첫 줄에 올라왔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명확하게 하진 않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정도를 주요 기준으로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저런 기준을 잡고 움직였다는 사실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한다. 원래 내 기본적인 스타일과는 달랐으니까. 당시 여행 전날, 이어서 첫날 아침까지, 이런저런 필요한 물품들을 챙긴다고 분주하고 정신없게 짐들을 늘려가던 나를 보면 원래 내 모습이 사라졌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이었기에 남쪽으로 내려가는 단풍을 좇아 강원도에서 시작해 남해까지 내려가자는 러프하고도 광대한(?)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차를 빌리고 자전거를 동행시켰다. 기대했던 계획은 일정 부분 맞아들어갔다.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길에선 드라이브를, 자전거 타기 좋은 길에선 자전거를, 두 발로 가서 만날 곳은 두 다리로 걸으면서 나름 하이브리드 여행을 즐겼다. 가야 할 곳들은 바로 전날 결정했고, 마음이 바뀌면 그냥 바뀌는 대로 따라갔다. 멀리서 바라보고 싶으면 멀리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 걸어갔다. 예상치 못한 막다른 골목을 만날 때도 있었고, 쏟아지는 비에 오도 가도 못할 때도 있었지만 원 없이 바람을 맞았고, 평생 볼 해돋이와 해넘이를 그때 다 보았던 것 같다.
밥을 먹을 식당이야 어디에나 있었고, 잠은 차에서 해결했다. 지금과 같은 차박의 이미지가 아니라 매우 궁색한 모양새였다는 점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하지만 계획은 늘 틀어지는 법, 그리고 무계획은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법이었다. 애초에 예정에 없던 제주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남쪽이긴 했지만 10월 말, 차에서 자기엔 추워진 날씨가 한몫했고, 이미 감기가 찾아온 지 며칠 되었던 때였다. 지도상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갈 땅은 없었다. 바다를 건너야 가능했다. 다행히 지인과 연락이 닿았고, 고맙게도 머물 곳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나와 자전거와 차량은 같이 제주행 배를 탔다.
여기서부터의 글은 당시 여행 후에 적었던 글을 다시 편집한 것이다. 이제까지 노트북에서 잠자던 이전의 글이 지금에 와서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우선 앞선 헤어질 결심에서 이어진 생각들의 연장선이다. 사랑도 어렵지만 헤어짐도 참 어렵다. 그렇게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시 헤어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이전 내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헤어짐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둘 소환되었다. 그에 더해 어떤 면에선 지금 다시 그때의 감정과 위로가 필요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여름철 더웠던 기억을 잘 보관했다가 추운 겨울에 꺼내 사용하자는 드라마 해방일지의 대사를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 여섯 개와 두 개의 발이 바다를 건너 제주에 다다르게 되었다.
용눈이오름
사람이 아닌 제주가 스스로 만들어낸 곳에 대한 첫 방문지는 오름이었다. 하지만 오름과의 첫 만남을 인도한 이는 (작고하신) 김영갑 씨였다. “제주요? 오름 한번 가보세요. 좋아요.” 정도의 일상적인 추천사 정도만 들었을 뿐 오름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였으나 그분의 갤러리를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용눈이오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나 좋았기에 이토록 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그리고 도대체 어떤 매력이었길래 그의 남은 평생을 오롯이 그곳으로 이끌었을까 궁금해졌다.
바로 다음날 용눈이오름을 찾아갔다.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용눈이오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창밖 길가에 다랑쉬오름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둘이 이웃이었나 싶은 가벼운 의문이 뒤로 멀어지는 표지판을 잠시 따라간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내비게이션은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듯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음성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주차장이었지만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오름을 한번 바라보고, 운전하느라 차에선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하늘도 한번 천천히 올려다본다.
창밖으로 얼핏 파랗게 보이던 그 하늘, 차창에 갇혀있던 그 푸름이 말 그대로 탁 트인 하늘에 걸려있다. 참 맑다! 맑음 그 자체에 반한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겠다 싶다. 투명함 속에 속 깊은 푸름을 간직한 하늘을 배경으로 심심하지 않게 펴진 얇은 흰 구름들까지. 그래, 오름을 오르기에 참 좋은 날씨군!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물론 오름마다 다르겠지만 용눈이오름은 일종의 잔디밭형 언덕과 같아서 어떤 면에선 거대한 봉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도 별로 없어 벌거벗은 듯한 구릉은 다소 쓸쓸해 보이기도 했으나 그런 나의 느낌과 무색하게 말들은 보란 듯이 자유롭게 올라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고, 말똥은 길과 길 아닌 곳을 구분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 첫인상은 첫 인상일 뿐이니까.
형태가 그대로 보이는 오름은 자신이 얼마나 높은지, 어떻게 오르면 되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얌전하게 땅에 표시된 방향대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름 자체는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 역시 그다지 넓지도 않았다. 한 시간이면 휘 돌고 충분히 내려옴직했다. 어떤 특별한 형태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라도 스케치북과 연필 하나 쥐여주면 금방 그릴 수 있는 그런 언덕이었다.
다만 따로인 듯, 하나인 듯 서로 연결된 구릉들이 올라가는 걸음마다 서로 이어졌다 나눠졌다 하면서 때로는 하나처럼 보이고, 때로는 둘처럼 보이고, 때로는 바깥쪽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느새 안쪽으로 접어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 이거였나! 분명 구릉도 몇 개 되지 않았던 오름이었는데... 그 몇 개 되지 않는 단순한 코드로 다채로운 변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의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김영갑 씨 역시 그 수많은 사진으로도 마지막까지 용눈이오름을 다 담지 못해 아쉽다고 얘기하신 배경엔 지극히 평범한 듯 보이는 오름에서 이런 다채로운 표정을 읽어내셨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여기에 눈이라도 오거나 꽃이라도 핀다면!
나에게 있어 용눈이오름의 가장 매혹적인 포인트는 그 사랑스러운 라인이었다. 단지 땅과 하늘이 만나는 선일뿐인데도 그 선 위로 무언가 위로와 같은 것이 지나감을 느꼈다.
변화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결국 그 변화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용눈이오름의 능선. 그 선 자체의 흐름이었다. 언뜻 밋밋해 보이는 오름의 능선은 하늘과 닿으며, 아니 하늘과 닿았을 때 물 만난 고기처럼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생생한 느낌에 과장을 목적으로 하는 지나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하나가 전경이면 다른 하나는 배경이 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하늘과 오름은 별개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도록 사귀어 이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는 듯, 하늘과 오름이 만나는 선은 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 또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부드러운 선이었다.
아마도 오름의 그 곡선은, 땅이면서도 하늘을 닮았던 것 같다.
어느덧 굼부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니 하늘을 향하던 선이 어느새 하늘을 담아내는 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언가 가슴에 찡, 하는 울림이 잔잔하게 퍼진다.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고 돈다. 자연스럽게 내뱉게 되는 감탄사하고는 다른 그 무엇이었다. 하늘과 오름이 만나 직조한 풍광 앞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 자신도 잘 모르던, 누덕누덕 헤어진 채 끌고 다니던 상처 입은 존재가 그 앞에서 다독거림을 얻는다. 누군가의 노랫말에 그런 가사가 나온다.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 것만 같던 내가 있는 이유는 어느 밤에 엄마와 아빠가 뜨겁게 안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내가 그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는 오름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안기고 싶었다.
그래. 분명 그건 위로였다.
하늘을 향하던 선이 어느새 하늘을 담아내는 선으로 바뀌어 있다.
어느 순간 귓가에 다가온 노래가 걸음을 멈추게 만들 때가 있다. 우연히 만난 노랫말이 깊숙이 덮여있어 나조차 잘 몰라주던,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마음구절을 대신 읽어줄 때면 그 갑작스러움에 당황하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노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렇게 내 마음을 보듬어준다.
복잡했던 사고의 시간이 정지화면처럼 잠시 멈춰 서고 얼룩졌던 마음 아래에서 오래도록 토닥임을 기다리던 작은 기대 하나가 가만히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메시지가 귓가에 띵 울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공감의 포옹이 와락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 바람과 저 하늘과 저 움푹 패인 들판이 나의 깊은 곳 하나하나와 연결되어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위로를 받는다. 내 처지가 변화한 것도 아니고 내 보잘것없음이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위로는 그렇게 온몸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김영갑 씨 때문에 너무 감상적이 되었는지, 위로가 필요한 내 마음이 만들어낸 이미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의 용눈이오름은 ‘자연이 만들어낸 사람의 품’이라 이름 붙여주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바라보니 용눈이오름의 굼부리는 단순히 한때 불꽃이 타올랐던 흔적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세월과 천천히 화해하며 아문 상처였다. 아픔을 겪었지만 잘 치유했던 이처럼, 담담한 듯하면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풍성하지만 세심한 태도를 갖추고 상대방을 위로할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였다.
오름의 정상이었지만 오름의 가장 깊은 속살이기도 했다. 마음으로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잠시 올라갔다 내려오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단순해 보이는 굼부리의 어깨였지만 그 길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 안에서 걷고 있으면 걱정과 근심 없이 평온함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다.
올라가는 길 중간에서 바라본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무렵이 아마 이때쯤부터가 아녔을까 싶다.
제주에서 첫 오름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나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용눈이오름 이후엔 하루에 하나씩 오름을 방문했었고, 그 주선자는 분명 용눈이오름이었다. 이어서 만난 오름들은 용눈이오름과는 또 다른 모습들을 각각 보여주지만 최소한 오름이 단지 오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등반과는 다른, 다른 종류의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이는 역시 용눈이오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