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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인 Apr 24. 2019

그 범죄는 '묻지마'가 아니다

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사건 요약


사건 일시: 2019년 4월 17일 새벽 4시 29분경~57분경

- 4시 29분경,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 4층 가해자 집에서 가해자의 방화로 인한 화재 발생

- 가해자, 방화 후 경보소리를 듣고 대피하는 주민들 중 여성과 노인 등 약자를 선택해 3-5층에서 가해

인명피해: 총 18명, 사망 5명, 중상 5명, 연기 흡입 등 8명

사망자 5명 중 4명 여성, 남성 74세로 노령

중상자 5명 중 4명 여성, 남성은 사건을 막으려던 관리소 직원

- 주민 다수 옥상으로 대피

- 4시 50분경,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에게 공포탄, 실탄, 테이저건을 쐈지만 제대로 맞지 않음

- 대치 끝에 4시 50분에 2층에서 검거

검거 당시 ‘임금 체불 때문에 범행했다’고 진술

- 4시 57분경, 화재 완진



*이하 글은 개인적인 소견임을 밝힙니다.

묻지마


90년대, '묻지마 만남', '묻지마 관광'등의 용어가 언론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인물 사이 관계성이 없어 보이는 사회현상에 '묻지마'라는 단어가 활용되었고, 이내 범죄사건에도 '묻지마'라는 단어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후 범죄학과 형사정책 연구에서도 '묻지마'범죄를 하나의 범죄의 유형으로 인식하여 연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언론에서의 무분별한 활용으로 용어 자체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굉장히 모호하며, 불필요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등 전문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전달력을 가진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묻지마 범죄를 규정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가해 동기 없음

불특정 대상 피해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상관관계없음


'동기가 없다'라는 것은 확장적으로 해석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동기를 알 수 없음'이 외에 다른 해석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묻지마'는 주체에 대한 명확성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


가해자는 언제나 동기가 있다. 


그것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든 동네에 대한 분노든 주변 사람에 대한 증오가 되었든. 혹은 살인 자체가 목적이자 동기일 수 있으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착란이라 할지라도 그것도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진주사건이 묻지마범죄가 아닌 이유로 다수 지적되었던 부분은 ‘불특정 대상’으로 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불특정 대상이라고 한다면 성별이나 연령의 구분 없이 가해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계획적으로 약자인 여성과 노인을 대상으로 공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역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가해자는 가해 장소에 숨어 피해를 입히고자 하는 대상인 여성을 기다려 범행을 했지만, 언론은 이 사건을 '묻지마'범죄로 칭하기 바빴다. 


또한, 진주사건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명확하다.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거주자로 이웃이었다. 가해자는 이전에도 다양한 종류의 범죄로 피해자들을 괴롭혔다. 이들의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묻지마의 요건을 따지는 것 보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근원적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이 단어는 단지 대중에게 자극성과 불안감만 높일 뿐이다. 관련한 지속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묻지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단/대량 살인 (mass murder)


범죄현상을 칭할 때 '묻지마'라는 용어가 문제시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사건을 무엇으로 명시해야 할까?


한 가해자에 의한 살인 범죄의 피해자가 3명 이상인 경우 다수살인(multiple murder)으로 규정한다. 다수살인은 연쇄, 연속, 집단의 세 가지 살인으로 구분된다.

연쇄살인(serial murder): 장기에 걸쳐 냉각기를 가지고 3명 이상을 살해

연속살인(spree murder): 상대적으로 단기간(하루, 일주일 등)에 걸쳐 4명 이상을 살해

집단/대량살인(mass murder): 단 한 번의 범행으로 4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


이번 진주 사건을 이러한 다수살인의 범죄유형에 적용시켜보면 '집단살인'에 해당한다.


집단살인 가해자는 한 장소를 정해 그 장소와 근접한 장소들에서 시간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범행하는 것이 가장 큰 특성이다. 또한, 가해자는 가해의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장소를 선택해 범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장소들은 평소 가해자가 익숙한 장소일 확률이 높아 언제 사람이 많이 모이는지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그 시간을 계획적으로 택한다. 이렇듯 그들은 범행을 사전에 준비하고, 범행을 마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의도적으로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가 다수 나타났다. 범행의 이유는 단순 분노부터 사회에 대한 불만, 관계에 대한 불신, 피해망상 등 다양하다.


평소 학교에 불만이 많던 한 학생이 학교에 총기를 소지하고 와 점심시간 학교 식당에서 총기를 난사하는 경우라던가, 해고에 원한을 품은 직장인이 전 직장을 찾아와 흉기를 휘둘러 직장 상사뿐만 아니라 동료까지 모두 살해하는 경우라던가, 혹은 피해망상이 있는 가해자가 백화점이나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난사해 다수를 사망하게 하는 등 집단살인은 사람이 모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예고 없이 행해지는 범죄이다.


진주사건의 특성은 집단살인의 특성을 다수 적용하여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가해자는 계획적으로 가해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방화를 통해 피해자들이 집 밖으로 나와 복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사람들이 다수 모이는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가해의 극대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을 경우를 제외(관리인)하고 본인의 가해가 제지당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젊은 남성의 경우 선택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방화부터 선택적 가해까지 범행은 계획적으로 사전에 준비되었으며, 범행을 마친 후 본인이 어떠한 이유로든(경찰에 의한 체포 혹은 사망, 자살 등) 본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스스로의 집에 방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집단살인은 순간적인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지만, 가해자는 계획적으로 장소와 타깃을 정하고 범행 방법을 선택한다. 또한,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이러한 계획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총기를 이용한 집단살인 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미국의 경우 관련된 연구도 다수 진행되었고, 관련한 대응 매뉴얼을 국가 수준에서 마련해 각 기관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더 이상의 자극적인 제목의 클릭수 유도를 뒤로 하고, 이번 범죄의 유형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시작으로 대응과 예방에 대한 관심과 연구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소극행정


대부분의 대량살인범죄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진주 사건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으며,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사전에 이루어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였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해자가 저지른 이전 사건들을 증거 불충분이나 명확한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경고나 훈방조치를 해왔던 것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막지도 못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범죄는 세 가지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구성요건 해당 성: 형법 및 기타 형벌법규에 금지된 행위를 정해놓아야 함

위법성: 법질서로부터 부정적인 행위의 판단이 가능해야 함

책임성: 위법행위를 한 자가 비난받을만한 책임이 있어야 함 (미성년, 정당방위의 경우 그 책임이 다르게 판단됨)


살인이나 강도, 성폭력 등 강력범죄 미수의 경우 더욱 정확하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법률상 범죄에 대한 의도와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응이 어렵다. 형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위를 정확하게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각한 수준의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진주사건 가해자는 과거 대학생에게 칼부림 공격을 해 9개월간 치료감호소에 수감되었으며, 이후 3년의 보호관찰 관리 하에 있었다. 누군가에게 칼부림 공격을 했다는 것은 살인미수 수준의 위험한 행위이고, 정신질환에 공격성까지 보이고 있었다면 3년의 보호관찰로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피해의식에 빠진 채 정신질환을 앓는 데다 공격성까지 갖춘 사람이 전문가와 의료적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진주사건 이전, 가해자가 주변에 공격성을 나타낼 때마다 경찰은 가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제지하지도 못하는 경고-훈방의 반복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가해자는 자신이 '웬만한'가해를 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오히려 신고를 한 피해자들에 대한 분노만 쌓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진주사건 이후 21일, 김해에서 흉기난동 가해자를 긴급 체포해 정신병원 입원시키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이 사건에서는 경찰의 적극적인 조치로 앞으로 있을 더 큰 피해를 미리 예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흉기를 들어야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지기 전에 가해자가 어떠한 정신질환이 있던 그렇지 않던, 나이가 많건 적건, 어떤 특성을 가졌건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가해자들은 적어도 그 순간이라도 피해자와 격리시키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피해자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와 관계없는 단순 경고로 훈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는 영문도 모르고 다시 가해자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공격성을 나타내는 가해자가 있다면 미수라 할지라도, 이들이 차후 더 큰 공격성으로 다수의 시민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구체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죽기까지 움직이지 않는 수동적인 행정으로는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확한 법적 근거와 제도를 마련해 적극 행정의 범위를 넓혀 향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안전을 최대화시킬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조현병


과거 범죄자마다 ‘사이코패스’를 붙이는 것이 유행했듯이, 최근 언론에서는 범죄자의 정신병력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 통계 등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람들 중 강력범죄자의 비율이 정신질환자 중 강력범죄자의 비율보다 현저히 높다. 그러나 언론은 개인병력에 집중하여 사건이 일어나게 된 다수의 요인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정신과 질병에 대한 공포심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신과 질환, 특히 조현병의 경우 국가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피해망상과 공격성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증상이 공격성을 수반했을 때 강력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진주사건 가해자가 2010년 대학생에 칼부림을 했을 때, 이미 조현병은 발병된 상태였지만 치료감호소에 9개월 수감되고 이후 3년 간만 국가의 관리 하에 있었다. 이후 가해자가 자체적으로 치료를 거부하고 점점 폭력성이 커졌지만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도 불가능해지는 등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현병은 자체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와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 형편에 따라 치료하고 못하게 되는 질병으로 처리되기엔 그 공격성이 분출될 때마다 피해가 막대하다. 그렇다고 대부분 소극적으로 지내고 있는 정신질환자를 모두 범죄자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이다. 


우리 사회에는 공격성을 가진 개인의 정신 병력을 철저히 치료해주고 관리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지 '조현병 환자=강력범죄자'라는 공식은 필요 없다.



현행범 즉결심판


즉결심판(卽決審判)

경미(輕微)한 범죄사건(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사건)에 대하여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에 따라 경찰서장의 청구로 순회판사(巡廻判事)가 행하는 약식재판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이번 진주사건은 현행범으로 검거되었고, 그 피해도 명확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도 재판을 거치고 변호를 하고 피해자 진술을 하는 등의 처벌까지의 법적인 과정이 남아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감경을 주장하고, 어려웠던 생활에 대해 서사하려 할 것이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다시 정신적인 피해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집단살인의 현행범일 경우 그 동기와 정신병력 등을 고려하는 재판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일까. 가해자의 인권문제, 형법상의 구조 문제, 집행기관의 절차 문제 등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건의 현행범일 경우 무엇을 판단하고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가해자에 대한 그 어떤 동정도 하고 싶지 않고,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이어지고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하루빨리 내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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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  100. 묻지마 100회 [진주사건 분석] (아이튠즈 팟캐스트팟빵네이버 오디오클립)



참고자료


학술자료

Fox, J. A., & Levin, J. (2015). Mass confusion concerning mass murder. The Criminologist, 40(1), 8-11.

Meloy, J. R. (2014). The seven myths of mass murder. Violence and Gender, 1(3), 102-104.

Reisman, W. M. (2007). Acting Before Victims Become Victims: Preventing and Arresting Mass Murder. Case W. Res. J. Int'l L., 40, 57.

김민정. (2017).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 한국여성학, 33(3), 33-65.

박형민. (2009). 대량살인 범죄자와 연속살인 범죄자의 유형과 특징. 형사정책연구, 189-213.

이승묵. (2005). 다수살인 (Multiple Homicide) 에 대한 연구. 한국공안행정학회보, 20, 2-45.

이재영, 유영재, & 박보라. (2014). 미디어의 살인사건 보도에 관한 연구. 한국범죄심리연구, 10, 215-240.

정연대, & 이윤호. (2013). 묻지마 범죄담론의 사회적 구성과 영향: 묻지마 범죄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안적 접근. 한국경찰연구, 12(1), 213-246.

조국. (2003). 경찰 ‘훈방권’의 법적 근거와 한계. 경찰법연구, 1(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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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토보안부 총기난사자 대응 매뉴얼(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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