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는 용기 vs 도전하는 용기

엄마의 5일 문법 도전기

by 라미

그냥 지켜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루 종일 아이 곁을 지켜보는 전업주부의 삶은 말로 다 하기 힘들 만큼 버겁다.

학원도 모두 그만둔 상태라 아이들은 집 안에만 있다.

하루 종일 빈둥빈둥, 쿵쾅쿵쾅, 시끄럽게 떠들고 싸우는 아이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는 건,

내겐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규칙적이고 계획적인 나로서는 더더욱.


그래도 결심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자.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를 위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다시 아이의 교육으로 돌아왔다.


둘째는 초등 고학년인데, 아직 제대로 된 영어학원 경험이 없다.

어릴 적 숙제 폭탄에 질려서 3개월 만에 학원을 뿌리치고는 지금껏 다시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곧 중학생이 될 텐데 괜히 불안했다.

나 역시 영어 전공자는커녕 배웠던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발견한 교재, 비주얼 G.

영어 문법을 그림으로 배운다니, 신박해 보였다.

망설임 없이 주문 버튼을 눌렀다.


책이 도착하고 첫 장을 펼친 순간, 글자들이 빽빽하게 쏟아져 나왔다.

글밥에 압도되어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연결된 강의 사이트는 공무원 시험 준비용.

순간 당황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무료로 5일 동안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문구에 눈이 번쩍였고, 바로 가입했다.


첫날, 머릿속 불꽃놀이


첫 강의를 들었다.

문장의 5 형식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데,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착착 맞춰졌다.

억지로 외우던 공식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였다.

학창 시절 늘 문제집 앞부분을 까맣게 만들던 그 동사 파트가 사실 문법의 기초였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노트에 펜을 꾹꾹 눌러가며 적었다.

손가락이 금세 뻐근해졌지만, 쓰는 맛에 더 힘이 났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침부터 커피만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속이 텅 빈 느낌.

점심은 평소보다 두 배나 먹어치웠다.

공부가 이렇게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이었나.


냉장고를 수시로 열어젖히며 과자를 집어삼켰다.

치팅데이처럼 계속 먹어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묘한 뿌듯함이 가득 차올랐다.


하루 다섯 강의.

오전에 한 개, 오후에 세 개, 저녁에 한 개.

계획표를 척척 세우고 나니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둘째 날, 몰입의 힘


아침부터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어제 그렇게 먹었는데도 변화가 없었다.

신기했다.

뇌가 에너지를 이렇게나 소모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손목은 욱신거리고, 손톱 옆은 쿡쿡 쑤셨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떠들어대자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 지금 공부하는데 방해할 거면 당장 나가!"

그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집을 나섰다.

"나가서 공부하고 올게요."


셋째 날, 무너지는 기세


셋째 날, 손가락이 본격적으로 말썽을 부렸다.

펜을 잡을 때마다 통증이 전해졌다.

강의는 점점 어려워지고, 처음 보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기억은 텅 비고, 의욕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잠시 멈추고 챗GPT에 물었다.

"중고등 문법은 뼈대(기본규칙)의 중심으로 시험용 공식 위주라면,

공무원 문법은 같은 뼈대를 더 깊게 파고들어 예외, 함정, 희귀 구문까지 출제돼요."

"비주얼 G 책 전체 중 약 50~60%만 공부하면 중학교 문법 총정리가 가능해요"

그제야 알았다.

내가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걸.

심화 부분은 흘려보내고, 뼈대 부분에만 집중했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노트에 꾹꾹 적어내려 갔다.


다섯째 날, 완주


주말까지도 불타는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하루 다섯 강의를 밀어붙였다.

40%는 이해 못 한 채였지만, 드디어 끝냈다.

노트를 덮는 순간, 성취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해냈다.


아이들, 그리고 현실


이제 아이들의 공부를 확인할 차례였다.

주말 아침, 채점과 오답을 하기로 약속했건만, 아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발뺌하고, 하기 싫다며 버텼다.


첫째는 하루 두 장, 둘째는 계획의 절반 조금 넘게.

이걸 잘했다고 칭찬해야 할까.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분명 자기들이 세운 계획인데, 결국 지키지 않았다.


혼내도 안 하고, 안 혼내도 안 한다.

사춘기 아이는 그냥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다.


이번 도전에서 얻은 것


결국 이번 5일은 아이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지켜볼 용기가 없어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세워준 시간.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 하나.

열심히 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


언젠가 아이가 갑자기 공부에 불타오르는 날이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간식을 잔뜩 챙겨줄 거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마음껏 먹게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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