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왕이 왜 실패했나

SwStr% 역설과 커브볼의 비밀

by randahlia

상식을 의심하다

변환 계수가 무너지고 나서 방향을 바꿨다. MLB 성적으로 KBO 성적을 직접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뭘로 예측해야 할까?

클로드와 함께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KBO에서 성공한 투수와 실패한 투수, 둘의 MLB 프로파일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적이 아니라 특성의 차이를 찾는 것이다. 구속, 구종 믹스, 무브먼트, 헛스윙 유도율... 이런 것들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신호가 될 수 있을까?

34명의 데이터를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MLB 지표와 KBO WAR의 상관관계를 하나씩 분석했다. 그러다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SwStr%가 높으면 실패한다?

SwStr%(Swinging Strike %)는 헛스윙 유도율이다.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렀는데 맞지 않은 비율. 이 숫자가 높을수록 "헛스윙을 많이 유도하는 좋은 투수"라고 평가받는다. 삼진 능력의 핵심 지표다.

구단에서 일할 때도 SwStr%를 중요하게 봤다. 11% 이상이면 "괜찮다", 13% 이상이면 "뛰어나다"고 분류했다. MLB에서 SwStr% 높은 투수를 데려오면 KBO에서도 삼진을 많이 잡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데이터가 정반대를 말하고 있었다.


MLB SwStr% vs KBO WAR 상관계수 = -0.382 p-value = 0.034


마이너스 상관. SwStr%가 높을수록 KBO WAR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했다. p-value가 0.05 미만이니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헛스윙을 많이 유도하는 투수가 왜 실패하지? 상식에 어긋난다. 클로드에게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다. "계산이 맞습니다. 실제로 역상관이 있습니다." 그룹별로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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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투수들의 SwStr%가 오히려 더 낮았다. 헛스윙을 "덜" 유도했던 투수들이 KBO에서 성공한 것이다.


왜 이런 역설이?


밤새 고민했다. 왜 삼진 능력이 좋은 투수가 실패할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가설 1: 의존성의 함정 SwStr%가 높다는 건 특정 무기에 의존한다는 뜻일 수 있다.

MLB에서 먹히던 공이 KBO 타자들에게는 안 통하면? 무기를 잃은 투수가 된다. 반면 SwStr%가 낮은 투수는 여러 방법으로 타자를 상대해왔으니 적응 폭이 넓다.


가설 2: 변화구 의존 높은 SwStr%의 원천이 주로 변화구다.

슬라이더, 스플리터 같은 공으로 헛스윙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런 공들은 공인구 차이에 민감하다. KBO 공인구로 같은 무브먼트를 재현 못 하면 무기가 무뎌진다.


가설 3: 스타일 부적합 삼진 의존형 투수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KBO에서 그 능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삼진을 못 잡고 볼카운트만 불리해진다. 컨택 유도형 투수는 처음부터 배트에 맞추게 하고 수비에 맡기는 스타일이라 적응이 쉽다.


정확한 원인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데이터가 말하는 건 분명했다. MLB에서 헛스윙을 많이 유도했던 투수가 KBO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구종별로 뜯어보다


전체 SwStr%가 역상관이면, 구종별로는 어떨까? 클로드와 함께 구종별 SwStr%와 KBO WAR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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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역상관이거나 무관했다. 슬라이더가 특히 눈에 띄었다. -0.398이면 꽤 강한 역상관이다. "슬라이더로 헛스윙 많이 유도한 투수가 KBO에서 안 좋은 경우가 다수 존재했다"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하나, 완전히 다른 구종이 있었다.


커브볼 SwStr% vs KBO WAR: r = +0.532 p-value = 0.009


커브볼만 정(+) 상관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커브볼로 헛스윙을 많이 유도한 투수일수록 KBO에서 성공했다.


커브볼 역설


이건 뭘까? 왜 커브볼만 다를까? 그룹을 나눠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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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확실했다. 커브볼 SwStr%가 높은 투수들의 평균 WAR이 2배 이상이었다. 통계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했다(p < 0.01). 커브볼 SwStr% 상위 성공 투수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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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들이다. 그리고 공통점이 있다. 효과적인 커브볼을 가지고 있다.

(주 : 스위퍼라는 구종이 KBO에 직접적으로 기록된 샘플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위퍼는 상관관계 보다는 '던질 줄 안다'라는 그 자체가 플러스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 커브볼만?


클로드와 함께 가설을 정리했다.

가설 1: 타이밍 파괴 커브볼은 직구 대비 25~30km/h 느리다.

직구가 150km/h면 커브볼은 120~125km/h. 이 속도 차이가 타이밍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KBO 타자들도 "커다른 구속"의 차이에는 취약할 수 있다는 것. 슬라이더는 직구와 10~15km/h밖에 차이 안 나서 이 효과가 덜하다.


가설 2: 큰 수직 무브먼트 커브볼은 크게 떨어진다.

수직 드롭이 평균적인 커브볼 대비 크기 때문일 것이다. KBO 타자들이 이 정도 낙폭의 공을 자주 접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궤적은 대응하기 어렵다.


가설 3: 운용 능력의 시그널 커브볼은 "섞어 쓰는" 공이다.

주무기가 아니라 보조 무기. 이 공을 효과적으로 쓴다는 건 구종 운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 그런 투수가 KBO 환경에도 유연하게 적응한다.


가설 4: 슬라이더 의존의 반대 슬라이더에 의존하는 투수는 커브볼이 효과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둘 다 breaking ball이니까. 커브볼이 효과적이라는 건 슬라이더 의존형이 아니라는 신호다. 슬라이더 의존형은 역상관이니까, 그 반대는 정상관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스크리닝 기준

이 발견은 투수 평가의 기준을 바꿨다.

기존 방식은 이랬다.

SwStr% 높은 투수를 찾자

삼진을 많이 잡을 거니까


새로운 방식은 이렇다.

SwStr%가 너무 높지 않은 투수를 찾자 (9~10%가 최적)

대신 커브볼 SwStr%가 높은 투수를 찾자 (10% 이상)

슬라이더에만 의존하는 투수는 주의


구체적인 숫자로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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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뒤집는 기준이다. 헛스윙을 많이 유도하면 좋다는 통념, 완전히 틀렸다. 적어도 KBO 외국인 투수 영입에서는.


직구 회전수의 역설


SwStr%와 커브볼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데이터를 더 파보니 또 다른 역설들이 나왔다.


직구 스핀레이트 vs KBO WAR: r = -0.497 p-value = 0.005

고스핀 직구는 MLB에서 각광받는다. 라이징 효과가 있어서(공이 실제로 떠오른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 선수들이 봐왔던 궤적에 비해 '덜 가라앉는' 것이, 타자들의 뇌에서는 '떠오른다는 느낌'의 착시를 주기 때문에 '라이징'이라고 표현한다)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다고. 그런데 KBO에서는? 저스핀 직구 투수가 성공했다. 2100rpm 이하의 "싱킹" 성향 직구가 오히려 좋은 신호였다.


싱킹 vs 라이징


싱킹 성향 투수: 평균 WAR = 3.84 라이징 성향 투수: 평균 WAR = 2.34


가라앉는 직구를 던지는 투수가 뜨는 직구를 던지는 투수보다 WAR이 1.5나 높았다.

이쯤 되니 그림이 그려졌다. KBO에서 성공하는 외국인 투수의 프로파일은 MLB에서의 "좋은 투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삼진왕이 아니라, 커브볼 잘 쓰고, 싱커 성향 직구를 던지는 투수. 그런 투수가 KBO에 맞다.

이 모든 발견을 하나의 모델로 통합해야 했다. v6.0은 폐기됐고, 새로운 버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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