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 Due Diligence ①
2018년 봄
윤 팀장으로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M&A 추진 자료를 공유받은 기현은
서둘러 앞서 보고된 자료들을 확인하다가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M&A를 추진하는 프로세스가 통상적인 절차와 다르단 점이었다.
일반적인 M&A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았다.
1. 인수 대상 기업 선정 (Target Identification)
2. 예비 실사 및 접촉 (Preliminary Due Diligence)
3. 본 실사(Due Diligence) 및 가치 평가
4. 협상 및 계약 체결 (Negotiation & Signing)
5. 규제 승인 및 인수 후 통합(PMI)
전체 절차 중 가장 핵심적인 단계는 실사 즉, Due diligence라고 볼 수 있었다.
M&A 진행과정에서 인수대상 기업의 실사(Due Diligence)는
재무제표 신뢰성 검토, 수익성 분석, 부채 구조 파악 등을 위한 재무 실사
세금 리스크, 이연법인세, 세무 신고 적정성 등을 알기 위한 세무 실사
소송, 계약서, 법적 분쟁 위험 요소 등을 알기 위한 법무 실사
사업모델, 주요 매출처, 시장 점유율 등을 확인하기 위한 영업 실사
그리고 조직 구조, 인건비, 퇴직 충당금 등을 알기 위한 인사 실사 등 까지를 망라 한다.
그리고 실사(Due Diligence)로 확인된 결과는 적정한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최적의 거래구조를 설계하는데 활용되며,
인수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후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계약서 내에 진술 및 보장 조항(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을 반영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천지방송 M&A의 경우,
협상이 끝났다고 계약체결을 서두르면서도 제대로 된 실사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정상적인 실사는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인수가격이 정해져 있는 듯한 상황은 확실히 상식적이지 않았다.
기현이 처음 CEO로부터 M&A TF에 참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을 때는
분명 M&A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단계가 아니라고 들었다.
그저 철저히 검증해서 필요한 준비를 하라는 원론적 지시가 있었지만,
M&A TF는 이미 민상무의 시간표대로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매수인 측이 그런 입장을 보이니 매도인 측인 천지방송 대주주는 거래가격이 확약되었다고 하며 실사에 필요한 자료제공에는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었다.
윤 팀장이 M&A TF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일이 그 이유에서였다.
두 번째 의문은 M&A TF가 CEO에게 보고했다는 예비적 가치 평가의 정확성 문제였다.
기업 가치를 평가(valuation)할 때는 통상적으로 자산을 기준으로 한 가치평가와
수익을 기준으로 한 가치평가 방식을 활용한다.
그리고 유사한 거래에서 인정된 배수(multiple)를 비교해서 활용하기도 한다.
여러 가치평가 방법 중, 대개는 어느 하나의 방법 만으로 가치를 산정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서 평가해 보고 이를 비교함으로써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천지방송의 기업가치 평가방법은 너무 예상밖의 방법으로 이뤄졌다.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천지방송 기업가치는 상장된 주식 시가총액 6천억 원보다도 낮은 수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부보고 시에는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해 계산하는 DCF(Discounted Cash Flow) 모델링을 통해 회사의 가치를 1조 원이 훌쩍 넘는 수준으로 높게 보고 있었다.
DCF 모델로 확인한 기업가치가 자산 기준으로 평가한 기업가치와 그렇게나 큰 차이가 있었던 건 이유가 있었다.
그건 DCF 모델에 적용된 가정이 현실과 달리 장밋빛으로 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 팀장은 민상무의 지시로 1조 원이라는 목표 거래가격에 근거를 만들어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이미 부풀려진 기업가치에 더해서 앞으로 회사 인수가 마무리되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시너지까지 더 얹어서 기업가치를 2조 원으로 설명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거꾸로 다시 2조 원 가치의 회사 지분 50.1% 인수를 위해 1조 원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였다.
기현은 이런 허술한 논리로 가격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근거로 기업가치를 조정 아니 조작하고,
이에 맞춰 인수가격을 정하는 M&A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진행하면 거래의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세 번째 마지막 의문은 이런 상황이 왜 제대로 보고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였다.
CEO가 평소에 회사의 업무를 챙기는 방식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이었다.
M&A 절차가 뒤죽박죽 꼬여있는 것도 그렇지만, 기업가치 평가 로직까지 모두 의도가 있는 듯 조작되어 있다는 점은 정상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과연 지금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를 아는 게 중요했다.
거래를 담당하는 임원의 과욕 때문인지
아니면 성급한 지시에 의해 운영 상의 난맥이 생긴 것인지 정도는 구분이 필요했다.
그 정도의 분별은 되어야 기현이 다음 스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TF 실무를 책임지는 윤 팀장은 정직하게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현에게도 모든 정보를 공유했고, 윤 팀장 본인이 잠을 못 자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했다.
적어도 그는 리스크를 제대로 알고 있었고, 민상무에게도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CEO는 기현에게 처음 일을 맡길 때 CFO 조직의 일을 크로스체크하라고 했다.
그러니 일단 CEO가 현재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혹시 정확히 알았다면 굳이 크로스체크를 CFO 아닌 다른 조직에 맡기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니 기현은 결국 M&A TF를 담당하는 민상무와 그의 직속 상사인 CFO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아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기현이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내부에 소통하려면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건 현재 M&A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민상무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매도인 즉 천지방송의 대주주, 거래를 중개하는 투자은행, M&A 프로세스 지원을 위해 계약된 로펌과 회계법인까지 모든 당사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CFO 조직 민상무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중에 누가 지금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는 설계자인지 그리고 동조자와 방조자는 누구인지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기현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이었다.
자신의 의심을 감추고 그들이 가진 정보에 접근해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시간
말은 쉽지만 그들이 독점한 정보에 접근해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한다는 것은
이미 달리고 있는 열차에 뛰어올라 승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막한 일이었다.
그래도 기현이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점도 있었다.
CEO는 기현이 천지방송의 영업정보를 정확히 판단해서 M&A로 기대되는 시너지 규모를 다시 보고할 때까지 의사결정을 미루겠다고 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기현의 생각은 상장기업인 천지방송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서
이미 보고되었던 그들의 기업가치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를 감싸 쥐게 되었을 때, 기현은 CEO의 비서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권기현 리더님, CEO께서 지금 찾으십니다"
"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