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딜 EP30

Ⅷ. 뒤바뀐 입장 ②

by 랜덤초이

갑작스러운 계기로 JM그룹의 기획조정실장 자리를 차지한 김도형 부회장


그에게는 늘 JM그룹에 어울리는 않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그건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그의 거친 리더십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JM그룹의 이미지에는 회장이었던 강무영의 영향이 컸다.

편법이나 속임수로 경쟁하기보다는 차라리 일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듯한 태도가 그룹 전체의 이미지로 널리 인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도형은 그런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난 인물이었다.

악착같은 근성과 강력한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늘 남다른 성과를 만들어갔다.

혹자들은 그의 성과가 장기적인 성과를 포기하고 단기에 집중적인 실적을 뽑아내는 방식이라고 폄훼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가 성과를 내기 위해 몰입하는 사람이란 점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그런 독특한 포지셔닝으로 인해 혼란한 변화기에 그룹의 기획조정실장이 된 것이란 점은 분명했다.



기현도 김도형이 처음 JM텔레콤의 CEO로 부임했을 때,

그가 강력한 눈빛과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임원들을 몰아붙이며 그들을 손아귀에 넣듯 장악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의 오래된 구습과 안이한 조직문화를 뜯어고칠 적임자라 느꼈었다.


적어도 뒷짐 지고 부하들이 가져오는 보고서만 품평하던 그런 무책임한 CEO들과는 다를 것 같았다.




김도형은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을 때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을 CFO와 영업부문장에게 지시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가장 큰 어젠다 중 하나였던 M&A건에 대해서는 모호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김도형이 직접 자문역으로 초빙했던 조규혁 대표를 내보낸 것이었다.

여러모로 공들여 초빙하고 그 후로도 조대표의 의견을 중하게 경청했던 터라

그를 내보낸다는 것은 마치 천지방송 M&A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뜻으로 읽혔다.


김도형이 기현에게 남긴 마지막 지시도 그런 연장선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권기현, 나는 정말 천지방송 M&A를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당신은 반드시 그 회사를 인수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알아내란 말이야

그걸 모르면 이 거래는 할 수 없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기현은 서둘러 거래를 마무리하려던 민상무도 협상에서 제외되었고,

김도형 부회장도 그렇게까지 당부를 하고 떠났기에 천지방송 M&A가 제대로 된 과정을 밟아가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천지방송의 대주주는 그 후로 이어진 자료확인 요청도 갖은 핑계로 피해대며 애매한 입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문직을 그만두고 회사를 떠나던 날 조규혁 대표는 기현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헤어져서 아쉬운데

내가 가만 보니까 이 Deal은 잘 되기가 힘든 것 같아.

자네한테만 무거운 짐을 남겨주고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네

내가 보니 CFO는 진짜 생각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자네도 잘 새겨서 생각하며 일하라고"


"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M&A를 준비하라던 조직들이 하나둘 서둘러 축소되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CEO가 부임하기 전에 그동안 벌려놓은 시장판을 치우는 것처럼 보였다.


기현은 생각했다.

'그래 잘못 꿴 단추는 풀고 이제부터 새로 제대로 된 절차로 일이 되면 되는 거다'




JM텔레콤의 새로운 CEO로 부임한 허종혁은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사실 김도형 대표가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옮긴 것을 영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면

거꾸로 그룹 기획조정실장에서 계열사 대표로 옮긴 허종혁은 좌천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JM텔레콤의 많은 임원들은 그가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는 집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임원들의 경우 새로 온 CEO보다 그룹의 기획조정실장으로 옮긴 김도형 부회장을 여전히 무서워하고 그의 지시를 듣기 위해 그룹에 오가기도 했다.


회사 전체에 그런 분위기가 노골적으로 느껴지자 허종혁은 신경질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었고 JM텔레콤은 그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산업 영역의 회사였기에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업무보고 절차를 진행했다.


모든 본부조직이 업무보고를 하였고, 조직별 보고가 끝난 후에는 중요추진과제 현안에 대한 개별 보고가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천지방송 M&A건은 제1호 안건이 되었다.


기현이 당황했던 이유는 M&A 추진 과정에 대한 보고를 그 과정을 담당해 온 M&A TF가 아니라 기현에게 맡겼다는 점이었다.


민상무는 이미 협상 업무에서 손을 떼었고, 후임인 고상무는 새로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난맥을 만든 책임부서가 아니라 그런 문제를 확인한 사람에게 보고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일으킨 문제를 애써 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인 조직에서 CFO 측 임원들의 압력과 입김은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현은 뒤바꾼 입장에 서게 되었다.




기현이 새로운 CEO에게 보고를 하게 된 마당에 문제는 또 있었다.

그동안 M&A TF에서는 그룹 기조실에 정보 보고를 하면서 천지방송 인수가치가 1조 원이라고 얘기해 왔던 것이었다.

단연히 허종호 부회장도 그렇게 알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 보고를 하면서는 천지방송의 기업가치가 마이너스란 사실을 밝혀야 했다.


보고를 앞둔 기현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지금까지의 모든 진행과정을 다 알고 있는 김도형 부회장이 그룹 기조실장으로 가있는데

허종호 대표에게 선택적인 보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그래서 CFO 측은 보고의 책임을 기현에게 맡겼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현은 김도형 부회장이 알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허종호 부회장에게도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허종호 대표의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과 분노 어린 질책은 기현이 오롯이 감당하게 되었다.


"아니 당신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래를 하려던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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