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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Feb 14. 2024

나한테 왜 그랬어요?

텃세의 기억


지금은 좋은 상사와 직장 동료들을 만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불과 약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텃세'로 정의되는 전 직장 동료들의 따돌림 때문에 멘탈이 하루도 멀쩡할 날이 없었다. 그것도 한 군데에서만 겪은 게 아니었다. 20년도에 A라는 회사에서 텃세를 당하다가 극복하고 이런저런 일로 이직했는데, 22년에 B회사로 옮기고 또 텃세를 당하게 됐다. (지금은 A도 B도 아닌 또 다른 회사로 옮겨서 다니고 있다.)


지금은 옛일이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너무 멘탈이 크게 다쳐서 울기도 울고 주변 사람들한테 고민상담도 수차례 했더랬다. 그리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자, 결국은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그 이후로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멤버가 되어보기도 하고 기존 멤버 입장에서 새로운 멤버를 맞아 보기도 하니까 더욱더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빴고 비겁했으며 치졸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은 아주 지루하고 짜증 나는 주제이지만, 내가 A회사에서 텃세를 당한 경험을 풀어보려고 한다. B회사는 별도의 글에서 또 한 번 얘기하겠다.










내가 A 회사에서 처음 미운털이 박힌 계기는 R&R 때문이었던 것 같다.


훗날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배경이 이렇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그 회사에서 어떤 직원이 퇴사를 하게 됐다. 연차가 오래됐던 직원이고 업무능력도 좋아서 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처음엔 당연히 퇴사한 그 직원의 후임자를 찾으려고 공고를 냈던 것 같다. 그런데 퇴사자가 퇴사할 때까지 적절한 후임자를 채용하지 못했던 것 같고 결국 해당 퇴사자의 업무는 기존 직원들에게 분배된다. 이에 기존 직원들이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한편, 기존 직원들은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신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A 회사의 공고에 지원하여 면접을 봤고 합격하게 됐다. 다만, 나를 면접 봤던 회사 대표와 팀장은 나의 기존 경력이나 성향 등을 고려했을 때 내가 퇴사자의 기존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것보다 준비하고 있던 신규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나는 이러한 히스토리를 모르고 입사했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을 맡게 됐지만 당연히 원래 내가 그 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기존 직원들은 대표와 팀장 한 마디에 본인들이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에서 타의적으로 물러나게 됐고, 빨리 후임자가 와서 가져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퇴사자의 업무를 그대로 하게 되어 불만이 생겼던 것 같다. 나야 R&R은 회사 입장에서 환경에 따라 더 적합한 방향으로 조정할 수도 있는 거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기존 직원들도 하고 싶었던 업무는 정작 못하게 되고 하기 싫은 업무만 계속해야 되는 상황에서 서운하고 짜증 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와 기존 직원들의 갈등이 풀리지 않고 더 쌓여가고 응축되면서 그 부정적인 감정의 찌꺼기를 결국 누군가가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나였다.


그들도 처음엔 나에게 잘해줬다. 아마 처음엔 내가 퇴사자의 업무를 가져간다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얼마 안 가 그 내용을 알게 됐는지 180도 바뀌었다. 사실 나에게도 일부 잘못이 있는 게, 내가 모르는 척 계속 밝게 있었으면 그냥 그러다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를 은근히 따돌리는 정황이 계속해서 느껴지자,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섞이려는 노력을 중단했다.


하지만 나도 딱히 그 이상 뭘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뭘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다만 우연히 팀장님과 출장 기회가 생기면서 이런 상황이 밝혀졌다. 이미 전부터 내가 겉도는 것을 알고 있던 그가 먼저 말을 꺼냈고, 그 이유로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방어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지 물으셨다. 나도 굳이 학교도 아니고 회산데 이르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못 섞이는 이유를 내 성격 탓으로 판단하시는 것은 억울했다. 그래서 말했다. 난 방어적이지 않다. 기존 멤버들이 내게 텃세를 부려서 적응이 힘든 것이라고.


그들은 내게 폭언이나 폭행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 문제 상황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당사자로선 너무 느끼지만, 이것을 제3자에게 말로 전달하면 너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느껴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렇지만 '방어적'인 사람으로 남긴 싫었고 그냥 참기만 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에 그간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상세하게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놀라셨으나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 R&R을 조정하면서 기존 멤버들의 반발 및 일부 텃세를 예상하셨겠으나 이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을 줄은 모르셨던 것 같다. 다만 나는 '누가'  그랬는지에 대한 주어를 밝히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팀장님은 그 주어가 누군지 알아차리셨다. 다수가 공범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예상하셨다는 것 자체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팀장님은 문제 해결을 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큰 기대는 안 했으나 그래도 팀장님이 내 말을 들어주셔서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풀렸다. 나는 솔직히 기존 멤버들이 미웠으나 그래도 그냥 모른 척하고 잘 지낼 용의도 있었다. 나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용서하고 잘 지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나 그럴 기회도 없이 몇 개월 후 팀장님이 집었던 딱 두 사람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아주 공교롭게도 그 둘이 말이다.


그 소식을 듣고 여러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기쁘면서도 슬펐다. 어쨌든 그들이 퇴사함으로 인해 나를 따돌리던 분위기가 많이 완화될 것이라는 안도감이 있었지만, 내가 팀장님에게 텃세 사실을 알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니 퇴사 사유에 내가 영향을 미친 걸까 봐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는 당연히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 퇴사한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피해의식이 최고점일 때라 "아~ 나와 잘 지내느니 퇴사하겠다는 건가?"까지 생각되면서 그들이 밉고 매우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정말 그들이 퇴사하고, 내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바빠지자 모든 텃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게 됐다. 다행이었고 또 씁쓸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나와 잘 지낼 수 있었는데도 그랬다는 것에 서운했고, 또 그 퇴사한 두 명이 정말 주동자가 맞았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벌써 3년도 넘게 지난 일이고, 그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 또 맘고생을 많이 하는 바람에 이 기억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 됐지만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자존심에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하고 먼저 벽을 쳤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더 미움을 사는 행동이었을 것 같다. 결국 내 자존심이 그러다 말았을 한 때의 질투를 5개월간의 왕따로 키운 것일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대체 어땠길래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아래의 예시를 들어주려고 한다. 실제 폭행, 폭언 수준으로 심하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진짜 폭행, 폭언이 있다면 바로 신고하셔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 한숨 하나하나도 힘든 시기에는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긴다.



1. 투명인간 취급

- 대화에 껴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

- 예의상의 스몰토크도 아예 하지 않기

- 눈치 없이 내가 먼저 말 걸면 호응 안 하기 (똥 씹은 표정으로 단답, 의견에 반대하면서 꼽주기)


2. 저격하기

 - 누가 봐도 타이밍상 내 얘기하는데 귓속말, 카톡 하면서 자기들끼리 웃기

 - '~~ 한 사람 진짜 싫어' 하는 식으로 나에게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들으라는 듯이 말하기


3. 불편하게 하기 & 죄책감 주기

 - 팀장님이 나한테 프로젝트를 맡겨야 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내가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잡일에서 배제시켰는데 팀장님을 내 앞에서 욕하면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

 - 위의 이유로 내가 잡일을 하지 않게 돼서 다른 직원들이 계속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얘기를 계속하기

 - 팀장님이 하지 말라고 한 잡일을 팀장님 없을 때 억지로 인수인계받게 하기 (모두가 몰아붙여서 거부하기 어렵게 함)

 - 역류성 식도염 있어서 밀가루 자제하는 중에 다들 칼국수 먹고 싶다고 칼국수 집 감 (근데 내가 칼국수 먹지 말고 딴 거 먹자고 한 적도 없고 순순히 따라감. 거기서 그냥 면 덜 먹고 국물 위주로 먹으려고 했음). 근데 이미 도착해서 시켜놓고 그 후에 나한테 칼국수 집 와버렸는데 딴 데 가야 되는 거냐면서 그냥 밀가루 먹으면 안 되는 거냐고 짜증내기 (자제하는 것뿐이라 상관없다고 백번 말했다)


4. 과한 무안 주기 & 꼽주기

 - 정말 사소한 실수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일일이 지적하고 필요 이상으로 꼽주기

(코로나 시국일 때 다들 실내 마스크 착용 안 했는데, 나한테만 코로나 어쩌고 하면서 민폐이니 주의해 달라는 식의 장문의 쪽지 보내기/

다들 다 상품 중단할 때 굳이 이유 안 썼는데, 나한테만 이유 안 적었다고 회사 메신저에서 저격/

키보드 소리, 다리 떠는 것 등 사소한 거슬림에도 크게 반응, 정색하고 무안 주면서 주의 주기 등)










이외에도 아주 사소하고 자잘 자잘한 배척이 많았겠지만 이제 워낙 예전 일이라 전부 기억나진 않는다. 한편으론 3년 전인데도 기억하는 것들은 나름 상처가 꽤 깊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 모든 것들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건 결국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유독 방어적이라서 저들과 더 멀어진 것은 아닐까, 다른 신규 입사자들은 잘 지내는데 하필 나만 잘 못 지내는 건 역시 내 문제가 아닐까. 당시엔 히스토리도 알 수 없고 무작정 미움을 받으니, 납득 갈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 결국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아무렴 내가 아무리 낯을 좀 가리고 방어적으로 굴었다 한들 정말 이건 정말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저 그때 난 지독하게 운이 안 좋았을 뿐이며, 모든 잘못은 그들이 했고, 마음으론 이제 그들을 모두 용서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쁘고 비겁하고 치졸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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