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다들 결혼하는 거지? 싶었던 노처녀의 결혼 이야기
아무리 늦게 만난 인연이라 해도 "그래도 남녀가 만나면 사계절은 겪어봐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이 일치했던 우리 커플. 한파특보가 재난문자로 올 만큼 외출자제 경계령이 내렸던, 이가 달달 떨릴 만큼 추운 겨울날에 만나 그렇게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두 번째 맞는 겨울에 양가 상견례를 했다. 그리고 함께 보내는 두 번째 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문득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떻게 결혼까지 이르렀을까 싶지만, 마침내 마흔을 넘겨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둘 다 정말 눈을 떠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어찌 보면 쉽게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그래도 꽤나 소개팅이나 선을 보았음에도 나의 30대에는 오랜 시간 동안 긴 인연이 없었다. 주말 중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누군가와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정도를 유지하는 것, 이게 딱 내가 연애를 지속하는 이유였다. 몇 개월의 짧은 만남만으로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와 여생을 함께 할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점점 나이를 먹어갔다. 그렇지만 결혼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은 달랐을 수 있지만.
누군가를 만나다 보면 대부분 서로의 니즈가 맞지 않기도 했지만, 만남을 지속할 열정이 부족했다. 나이 먹은 여자는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알고 있음에도, 심드렁한 상대들에 못지않게 나 또한 심드렁했다. 아마도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기에 데이트는 길게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만남을 칼로 뚝하고 자를 만큼 '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하지 않았다. 연애는 지속했으나 대부분 흐지부지 만나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인, 모든 노총각 노처녀가 "눈이 높아서"라고 단정 짓기엔 그 이면엔 정말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맞는 상대를 찾지 못한 것도 하나였겠지만, 그 수십 개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과연 결혼생활에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만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와 잘맞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나 또한 누구에게나 잘 맞는 1등 신붓감은 당연히 아니다. (그럴 생각도 없지만)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잘 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혼이 될 것이라고. 둘보다 나은 하나도 세상에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늦은 나이에 결혼상대를 찾는데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 것은 비효율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제 나를 바꾸지 못하니, 이 상태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수의 지인들은 연애와 결혼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내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나도 잘은 모르겠다. 굳이 찾자면 꽤나 심드렁하게 살고 있음에도 그래도 부모님 걱정을 덜 겸, 주말마다 이불속에서 누워 넷플릭스 보는 것보단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세상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겸 선도 보고, 소개팅을 간간히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한 분야에 깊이 공부를 해온 사람, 자기 커리어 개발을 하느라 혼기를 놓친 사람,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등등 내 인생에 어떤 부분에서 벤치마킹 또는 반성할 만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더러 만나보기도 했다. 꼭 크리티컬한 하자가 있어서 늦은 나이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개팅 남의 어이없는 재산 거드름 덕분에 '부동산'에도 관심을 갖고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니 소개팅 시장에서 시간과 돈을 허비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맞는 사람을 알아보고 만나 마흔이 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첫 시작은 그저 모랫 속 바늘 찾기 만큼의 가당치 않은 확률에서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회로를 돌리며 방구석 이불의 유혹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인연을 만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