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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두려웠던 아이가 건너온 시간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35

by Rani Ko
천천히 떠오른 1년 6개월의 기록



버티는 시간이 길었을 뿐, 아이는 언제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준이는 2024년 5월부터 아프거나 열이 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월·수·금, 주 3회 수영을 빠짐없이 다니고 있다. 평소 물을 좋아하는 아이지만 막상 깊은 물 앞에 서면 겁을 내어, 초반에는 수영장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적응할 때까지 매회 준이와 함께 센터에 갔고, 수업 내내 유리창 너머로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업이 끝나면 담당 선생님은 늘 “준이 어머니” 하고 나를 부르셨다. 말투는 조용했지만, 아이가 물을 무서워해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는 뉘앙스가 매번 담겨 있었다. 처음 등록한 곳은 소수정예의 고가 학원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립 수영장이었다. 합리적인 비용이 장점인 대신 한 반의 인원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소수정예 학원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이인 윤이가 과거 소수정예 수업을 들었지만, 주 1회만으로는 실력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준이처럼 ‘능동적 자극이 있어야 학습이 열리는 아이’에게는,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물과 친해지는 빈도가 곧 성장의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 믿었기에, 다인원 수업이더라도 주 3회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시립센터를 선택한 것이다.



처음 한 달은 쉽지 않았다. 준이는 수영장에만 가면 물을 많이 마시고, 겁이 나는지 거의 매번 울었다. 수영장이 있는 날이면 집에서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났고, 도착해서도 한참을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만큼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 영향인지 한 달 내내 집에서도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특히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수영 가기 싫다”라고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인 나에게는 눈물을 흘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내 앞에서는 거의 울지 않았다. 반면 마음이 약한 아빠 앞에서는 작게 흐느끼거나 매달리는 일이 잦았다. 남편도 아이가 이렇게 두려워하는데 억지로 운동을 시키는 것은 무리 아니냐며 그만두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한 달이 채 지나기 전부터 나 역시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그동안의 준이 히스토리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불안도가 높아 뭐든 첫 시작이 어렵지 않았던가. 인라인 스케이트 배울 때도 첫 일주일간 울었었다. 처음이라 균형 잡기 어려운 건 당연한데도 "나 못해~~~"하면서 많이 울었었다. 그때도 어르고 달래서 조금만 참아보자 했더니 금방 잘 타게 되었다. 수영은 물속에서 하는 운동이라 환경변화가 더 심하니 적응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달만 꾹 참고 다녀보자 싶었다. 벌써 3주나 지났는데 열흘만 더 참아보고 그때까지 적응 못하면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결심하고 준이에게도 열흘 뒤에도 물이 무서우면 그만두자 했더니 그때부터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 달이 되기까지 남은 열흘은 준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물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영선생님께서 신기해하시면서 한 달이 지나고부터는 더 이상 "준이어머니~"하고 강습 이후 나를 찾지 않으셨다.



물론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는 오래 걸렸다. 거북이 등판과 킥판 없이 물에 완전히 떠서 자유형 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4개 영법을 다 배우는 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동안 눈이 내리는 날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폭염에 온 대지가 푹푹 찌는 날에도 준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또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꼬박꼬박 수영장에 왔다.

팔, 다리의 힘이 다른 아이들보다 약한 편이고 물속에서의 호흡에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보다 부족하다면 남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끈기 하나만큼은 타고난 준이여서 오늘의 쾌거(남들이 본다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월말이라 한 달에 한 번 있는 자유 수영일 이었다. 이 날은 강습 대신 아이들이 50분간 자유롭게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수영복 대신 유니폼을 입으시고 감독만 하시는데 오늘 대기실에서 준이를 지켜보다 잠시 밖으로 나오신 선생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 준이 어머니! "


수영 선생님은 나를 부르셨다.


"준이 너무 감동이에요. 어쩜 1년 6개월이 넘게 이렇게 성실할 수가 있어요. 이제 다음 달이면 준이 접영까지 완전 마스터 합니다. 내년에 가능하다면 준이랑 초급반 아이들 다 데리고 제가 중급반 가려고 합니다."


활짝 웃으시며 나를 부르시는데 선생님의 반응이 작년 5월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때와는 너무 달라서 어리둥절하면서도 기쁨에 벅차올랐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저희 준이 열심히 지도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뻔한 예의상 인사로 들으실지 몰라도 나는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한 말이었다.


"준이도 감동이지만 준이 어머니가 고생하셨죠. 너무 애쓰셨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 순간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대기실에 다른 어머니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선생님 앞에서 주책맞게 울 뻔했다.



혹시나 우리 아이가 운동 신경이 없다고 생각되어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 시작하고, 하다가 고비가 더라도 아이와 의논해서 조금만 참고 버텨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때는 아이의 성향을 잘 살펴 접근해야 된다. 준이는 참을성과 끈기가 있는 아이였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며칠 아이의 수학으로 인해 답답하고 걱정되었던 마음에 오늘의 작은 해프닝이 마치 나를 위로하는 작은 보상인 듯하다.



천천히라도 스스로 건너온 경험은, 앞으로 어떤 물살 앞에서도 아이를 지켜줄 가장 든든한 힘이 된다. 준이의 작은 용기가 나를 다시 숨 쉬게 한 오늘, 우리 모자는 그렇게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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