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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라는 이름으로 자라온 너에게

내 아이는 나의 기적입니다. 10

by Rani Ko


사랑하는 첫째 아들, 윤이에게


윤이야, 네가 엄마와 아빠의 첫 아들로 세상에 와 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란다. 사춘기가 살짝 찾아와 요즘은 어릴 적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엄마 눈에 넌 여전히 귀엽고 명랑하며, 속 깊은 착한 아들이야.


1학년 때 처음 안경을 쓰던 날 기억나? 친구들이 널 ‘해리 포터’라 부르며 놀리듯 불렀는데, 쑥스럽게 웃던 네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그때 엄마는 주인공 해리처럼 정의롭고 현명한 아이가 되길 바랐는데, 지금 보니 네가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어서 참 고마워.


이제 5학년이 되어 해리포터 시리즈를 책으로 다 읽을 만큼 훌쩍 큰 너를 보며 엄마는 늘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자라는 동안 엄마가 온전히 너에게만 집중해 주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이 미안하구나. 준이 치료와 여러 사정들로 엄마의 시선이 동생에게 더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날들이 있었지.


사실 지금과는 반대로 네가 처음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는 오히려 너에게 더 많은 애정과 시간을 쏟았단다. 그래서 준이가 발달이 느린 것이 혹시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안고 살았어. 지금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두 아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웠던 시간들이 엄마에게도 있었단다.


엄마가 병원에 있던 시절, 몇 달 동안 떨어져 지내며 너에게 분리불안이 생겼을 때가 있었지. 그때 엄마는 준이를 데리고 잘 수 없어 주로 아빠와 지내게 했고, 그래서 준이는 아빠와 더 가까워졌어. 그러면서도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함께 자며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기로 했던 날들이 기억나니?


그때 엄마가 너에게 이렇게 말했지.
"준이가 발달이 조금 느려서 엄마가 동생을 많이 도와줘야 해. 윤이는 형아니까 뭐든 잘할 수 있지?"
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 엄마는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단다. 너도 아직 겨우 1학년이었는데, 벌써 그렇게 단단해져야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엄마는 늘 믿었어. 윤이라면 잘 해낼 거라고.

넌 서너 살 때부터 스스로 옷을 챙겨 입고, 다섯 살부터 혼자 샤워도 척척 해냈잖아. 어린이집 5세 반 담임 선생님이, 손이 불편한 친구의 식판을 네가 먼저 열어줬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엄마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니까. 타고난 네 선함은 당시 힘들었던 엄마에게 큰 위안이자 값진 선물이었어.


준이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엄마의 시선은 늘 동생 쪽으로 더 자주 향했지. 그럴 때마다 너는
"엄마, 나 이거 해줄래?"가 아니라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 나 혼자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해 주곤 했어.


마른 몸에 다부진 마음을 가진 너는 웬만한 누나들보다도 야무졌단다. 동생이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밀려나면 곁을 지켜주었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스스로 숙제를 마치고 집안일까지 도왔지. 어버이 날에도 그랬어. 준이 놀이 치료 때문에 엄마가 늦게 돌아왔더니 싱크대에 쌓여있던 밥 그릇과 컵, 식기류, 네 물통까지 모두 깨끗이 씻어놓고 식탁 위엔 카네이션과 편지까지 올려두고 학원에 갔더구나. 그런 네 모습을 볼 때면 엄마는 그 작은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단다. 그저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하다.

윤이와 준이가 모래 놀이터에서 둘 만의 정원을 함께 만들었다.

작년 이맘때쯤, 준이 상담 자리에서 준이 담임 선생님이 네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어.

"4학년 @반 첫째 윤이 맞죠? 동생을 참 잘 챙기던데요."라고 하시더구나. 엄마는 깜짝 놀러 선생님께 물었어. "저희 첫째 아이를 어떻게 아세요?" 그랬더니 네가 동생이 입학한 3월 한 달 내내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동생 교실에 들렀다고 하시더구나. 화장실 가는 법, 특별실 가는 길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지 뒷문에서 살짝 지켜보고 돌아갔다고... 엄마는 네가 그렇게 동생을 챙겨주길 시킨적도, 바라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단다.


네 마음이 너무 착하고 예뻐서 지금도 준이 담임 선생님의 얘기를 떠올리면 엄마 마음이 따뜻해지며 올해 인상깊게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엄마 대사가 떠오른다.

'어찌 이런 아이가 내게 왔을까.'

윤이 너는 엄마에게 이렇게나 귀한 선물같은 존재란다.


준이는 겁이 많고 의존적인 편이라, 독립심 강한 널 유난히 잘 따르지. 말투도, 어휘도, 몸짓까지 따라 하며 세상을 배우고 있어. 학교 친구들보다 형과 형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겁다며 웃는 준이를 보면서 엄마는 깨달았단다.
형이라는 울타리가, 동생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구나 하고.

형 윤이의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한 준이


윤이야, 네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단단히 버틸 수 있었고, 준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다. 너는 동생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고,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야. 오늘도 내일을 밝히는 빛이 되어주는 너에게, 엄마는 진심으로 고맙고, 또 사랑해.



2025년 8월 31일 더운 여름날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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