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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04. 2021

돌봄 노동의 편익과 비용

아내의 가사노동은 공짜가 아니다

매일매일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한 덕분에 아이들이 성장했다. 무척 보람된 일이다. 가족을 사랑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주어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다.


나의 돌봄 노동은 분명 국민경제에도 기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2019년 기준으로 약 490.9조원이다. 이 중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는 약 356.0조원, 남성의 가사노동 가치는 약 134.9조원이다. 1인당 무급 가사노동가치는 여성은 1,380만원, 남성은 521만원이다(통계청, 2021).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존하고 있다.”(폴브레, 2007). “양질의 돌봄은 돌봄을 받는 당사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이득을 준다. 그 돌봄의 수혜자는 아이들만이 아니다. 돌봄은 긍정적 외부 효과를 지닌다. 이득이 돌봄을 제공하기로 한 실제 결정의 바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폴브레, 2007).


내가 매일매일 수행한 돌봄 노동은 분명 가족과 사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 분명하므로, 나는 그 사실에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을 둘러싸고는 어느 정도 억울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남편조차 아내인 나의 돌봄 노동을 인정해 주지 않고 보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돌봄 노동에 더해 시장 노동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돌봄 노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남편은 돌봄 노동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는 ‘당신이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가사도우미를 불러’ 하는 말이다. 나는 살면서 가사도우미를 부른 적이 있기는 한데, 모두 합쳐 봐야 열 번 남짓한 정도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 스스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했다. 그런데 논문 작성과 강의 준비로 집안일이 너무 많이 밀려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에, 가사도우미를 불렀다. 그런 날이면 퇴근한 남편은 나를 비난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남편은 요즘도 수년 전에 가사도우미를 부른 일을 비난한다.


남편의 ‘당신이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라는 말은 나의 돌봄 노동의 편익과 비용을 모두 부정하는 말이다. 돌봄 노동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남편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아내인 내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치러야 하는 희생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돌봄 노동을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남편에게 없다.


돌봄 노동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돌봄 노동의 비용은 돌봄 노동을 하는 사람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될 것이다. 그 수없이 많은 돌봄 노동의 순간들. 참 많이 힘겨웠다. 우리 세대의 돌봄 노동의 부담은 이전 세대 여성들의 돌봄 노동 부담에 비하면 많이 경감된 것은 사실이다. 선배 세대인 어머님 세대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겹다. 그런 선배 세대의 부담에 비하면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돌봄 노동은 힘겹다. 돌보는 사람은 무거운 책임을 떠안으며, 돌봄 책임은 돌보는 이의 선택을 제한하고 착취에 취약하게 한다(폴브레, 2007).


한편, 돌봄 노동의 직접적인 비용들도 힘겹지만, 그 모든 소중했던 순간을 가사노동으로 그렇게 써 버리고 막상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속상하다.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이다. 가사노동을 하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하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어떤 편익을 잃게 된다. 그 가사노동을 하지 않고 다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었을 편익이 바로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이다. “여성의 직업 기회가 확대되면서 가족을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의 기회비용도 증가했다.”(폴브레, 2007).


가사노동을 함으로써 나는 연구시간과 강의 준비 시간을 충분하게 갖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잠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갖지 못하고, 친구들과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늘 지쳐있고, 시체같이 창백한 얼굴로 강의를 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학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학회 발표에서는 허둥댄다. 돌봄 노동에서 자유로워서 좀 더 여유 있었다면 좀 더 침착하게 좋은 내용으로 발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했다면 나는 연구자로서 좀 더 인정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연구자로서 달성할 수도 있었던 어떤 성취와 인정이 바로 돌봄 노동의 기회비용인 것이다.


돌봄 노동의 기회비용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세대 이후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님께서 만약 사업을 했다면 크게 성공하셨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신께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시는 듯하다.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 기회를 갖게 된 우리 세대 이후에 비로소 돌봄 노동 아닌 다른 삶의 기회를 생각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래서 돌봄 노동의 기회비용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은 종종 택배박스와 같은 재활용품을 잘 보관하라고 지시한다. 다음에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남편은 정말 알뜰한 사람이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협조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재활용품보다 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억울해한다. 재활용품을 챙기고 보관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내가 논문을 작성하는 데 사용하면 더 큰 편익을 가져올 텐데 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을 제대로 카운트하지 않는 남편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가사노동과 나의 일 사이에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해 남편이 내게 선택권을 주면 좋겠다. 나는 택배박스를 집에다 모으는 수고를 하는 대신 내 연구에 더 시간을 쓰고 싶다. 사회에서 잘 재활용될 수 있도록 택배박스를 적절하게 분리배출하는 것으로 나는 만족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버린 택배박스가 아쉬운 순간이 있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그 아쉬움보다는 내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아쉬울 것 같다.


돌봄 노동에는 불이익이 따른다(폴브레, 207). “부모가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근무 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하는 것은 잠재 소득을 포기하는 것이다.”(폴브레, 207). “부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경쟁은 돌봄 노동에 아무런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폴브레, 2007). “돌봄 노동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그 효과를 측정하거나 보상해 달라고 하기 힘들뿐더러 돌봄을 받은 사람도 되갚을 계약적 의무를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폴브레, 2007).


가사노동을 너무 낭만적으로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별도의 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아내의 가사노동이 남편 입장에서는 공짜겠지만 직접 가사노동을 하는 아내 입장에서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 가사도우미를 불렀던 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잘했어. 가사노동을 줄이고 연구를 더 해.”라고. 그리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면 더 좋았겠다. “가사도우미를 부르지 마.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게. 내가 당신과 함께 가사노동을 할게.”     


<참고문헌>

폴브레, 낸시 (2007). 보이지 않는 가슴: 돌봄 경제학(윤자영 역. 원저 The Invisible Heart: Economics and Family Values by Nancy Folbre, 2001).

통계청 (2021). (보도자료) 가계생산 위성계정(무급 가사노동가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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