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도착하는 편지를 받고, 조금 이른 답장을 쓰는 여행
이틀 뒤면 낯선 뉴욕을 걷고 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시간대를 사는 이방인의 눈을 하고서, 은빛이 도는 낡은 뉴발란스 530을 신고 격자무늬의 거리를 터벅터벅 걸을 것이다. 초록과 붉은 줄무늬가 그려진 바스타올을 둘둘 말아 들고 센트럴파크에 갈 것이다.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어 올리고, 곰이나 강아지가 그려진 맨투맨을 입고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장소에서 나는 나를 가장 잘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너무 크고 낯설고, 때론 너무 거칠거나 너무 아름다울 것이다.
내게 밀려오는 풍경들은 어떤 흐름을 남길 것이다. 파도가 지나간 바다처럼 어떤 것은 쌓이고, 어떤 것은 먼바다로 흘러간다. 바다 위를 뛰어넘는 물고기 떼의 비늘처럼 빛나는 감각들이 내게 쏟아질 것이다. 빛나는 것을 소복하게 담은 마음들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안다. 뉴욕의 나에게 사랑을 보낸다.
많은 걸 사랑하는 사람,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 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주 괴롭다. 천 번의 입맞춤처럼. 낯선 나라의 어떤 명소에 있는 내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고 다시 그리는 세상이 궁금하다. 그러므로 여행은 다녀온 후에, 아주 오래 천천히 완성된다.
떠나기 전에 이 여행의 가제는 <네가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을 보낸다.> 어디에 있건, 사랑만 있으면 사는 먼 나라의 나에게 깊은 사랑을 보내둔다.
모든 장소에서 사랑을 아카이빙한다. 그리고 다른 여행지에서 오래전의 내가 보내둔 사랑을 소포처럼 받는다. 모서리가 까지고, 조금 구겨진 상자 속에 덩그러니, 그러나 오롯하게 담긴 사랑을. 나로 겪는 고통과 기쁨, 사랑과 절망. 온몸의 세포들이 와아, 소리를 지른다. 지금 내가 보내는 사랑이, 언제 어디에서 도착할지 모른다.
런던에서 걸음을 멈추지 못해서 계속계속 걷던 나, 북극을 향하는 기차에서 따끈한 물로 샤워하고서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숲을 바라보는 나, 오슬로 시내를 헤매며 하루키 책을 찾는 나. 그 모든 내가 보내온 반짝이고, 유약하고, 불완전하며, 아슬아슬한 사랑.
그래서 여행은 너무 아름답다. 나는 빛나는 물고기처럼 살아왔던 모든 순간, 앞으로 살아갈 순간을 헤엄친다. 지금 밖에 없다. 호텔 방에서 백조 모양으로 접어둔 수건처럼,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나를 기다릴 사랑을 만나러 간다. 아주 느리게 도착하는 편지를 받고, 아직 오지 않은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러. 문득 긴 여행을 준비하다 망설여졌는데, 편지를 열어보러 가는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