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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Feb 21. 2017

혼술에 대하여

혼술 하는 사람이 바의 그림이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다 

혼술이니 혼밥이니, 심지어 혼영이니 하는 말까지 등장하는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혼자 무언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이 많아서 이젠 문화가 되었다고 해도 한쪽에서는 누군가 (이럴 때 꼭 심리학 교수님이 등장하는 것도 참 웃기다) 나와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실제로 만나서 소통하는걸 불편하게 생각한다드니 어쩌느니 하면서 그게 무슨 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터뷰를 한다.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편견이 있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온 사람에게, 혼자 먹었어?라는, 약간의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편견이다. 우리는 아직 혼술, 혼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행히 바 문화가 늘어나면서 혼술을 하기는 훨씬 나아졌다. 혼술 환영, 이라는 문구를 내건 바들도 꽤 있다. 바는 원래 혼자서 마시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좋다. 바에 앉아 한 잔 기울이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혼술에는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크나큰 매력이 있다. 그러나 바는 혼자 들어가는 것보다 혼자 마시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처음에야 당연히 바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물론 들어가야 마시던가 말던가 하니까 일단 들어가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다음부터 진짜 위기가 시작된다. 


혼술은 이름 그대로 혼자 마시는 것이다. 좋게 말해 고독하고 막말하면 청승맞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보이는 것이라곤 술과 바텐더뿐이다. 이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바에 어울리는 그림 같은 술꾼이 되기도 하고 바의 분위기를 해치는 주정 부리는 취객이 되기도 한다. 

금요일 밤, 군산 세컨드룸의 블랙 러시안은 혼자 마신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맛있었다.

바에서 혼술을 할 때는 서두르면 안 된다. 성급히 주문하지 않아도 되고 서둘러 마시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자유와 고독한 여유를 함께 부려도 좋다. “그 고독과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혼술의 매력”이라고 만화 ‘술 한 잔 인생 한 입’의 저자 라즈웰 호소키 선생은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한 잔 시켜둔 채 한 시간 씩 앉아 있으란 말은 아니다. 적당한 시간 동안 적당한 고독과 자유를 누릴 줄 아는 것, 이것이 혼술을 즐기는 기본자세다. 


그래서 바에서는 혼자 온 옆 자리 손님에게 쓸데없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서는 안된다. 한두 마디 인사치레는 오갈 수 있겠고 운이 좋아 마음이 맞는 손님이라면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원래 혼자 온 손님은 고독과 자유를 누리러 오는 것이다. 요즘 화제가 된 어떤 판사님의 표현을 빌면, 설령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니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거는 한 마디가 다른 손님의 고독과 자유를 빼앗는 실례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이성 손님에게 끊임없이 치근덕거리는 것은 실례를 넘어 범죄다. 


바텐더를 독차지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바텐더는 당신의 고독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당신 말고도 서브할 사람이 많다. 단골이니 어쩌니 괜히 허세 떨지도 마라. 저 옆에서 조용히 마시는 손님이 당신보다 몇 배나 많은 매출을 올려주는 그 바의 큰 손일지 모르니. 


마지막으로 바에서는 취하면 안 된다. 적당히 마시고 말과 손과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일어서야 한다. 이 정도를 지킨다면 바와 술은 당신이 지불한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당신에게 돌려줄 것이다. 당신이 그 가치를 안다면 바는 당신에게 휴식과 즐거움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힐링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른다면 바는 그저 당신의 돈을 잡아먹고 숙취라는 나쁜 놈을 안겨주는 술집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힐링의 공간이냐 나쁜 술집이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이자까야(라고 쓰고 바라고 읽는다)에 혼자 오는 손님은 꽤 많지만 그 모습이 그림이 되는 사람은 진짜 적어. 대부분은 어둡고 외톨이 같은 느낌이거나 반대로 너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 같은 느낌이거든.”

- 라즈웰 호소키, 술 한 잔 인생 한 입 31권 중에서 


혼술 하는 모든 술꾼이, 바의 그림 같은 존재가 되기를. / sool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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