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Mar 03. 2017

김렛과 마티니 사이

아재 술꾼이 칵테일 이름을 함부로 짓다  

"뭐 마실 거야?" M이 물었다. 깔끔하면서도 센 것을 마시고 싶었던 나는 "김렛 마시려고." 하고 말했다. "마티니 마시지?" 요즘 내가 마티니에 대한 고집을 버린 걸 알아서 걸핏하면 마티니를 부추긴다. 하지만 오늘은 마티니 생각이 없다. "김렛 주세요."

김티니 ㅋㅋ by 비바라비다

"예전에 드시던 김렛 하고 좀 다를 거예요." 상큼 새콤 시원 짜릿해 보이는 잔을 밀며 바텐더가 말했다. "진을 55ml 넣었거든요." 센 걸 원했던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레시피다. 그러나.


세다. 시트러스는 간데 없고 진 특유의 강한 향이 밀고 올라온다. 이것을 김렛이라 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시트러스가 슬쩍 밀고 올라온다. 그래, 김렛은 김렛 이고나. 아니, 잠깐만. 설마 이런 건 아니겠지?


‘바에 앉은 두 사람이 김렛과 마티니 중에서 망설인다. 그걸 본 바텐더는 김렛과 마티니를 섞을 묘안을 생각했다.’


"흥, 이건 '김티니'잖아요?"라고 살짝 들이댔다. M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바텐더는 차마 반응을 하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나는 여지없이 술꾼 아재, 아재 술꾼이 되고 말았다. 그럼 어떠랴. '김티니'는 마음에 들었고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빨리 기분 좋은 취기에 오를 수 있었다. 술꾼의 밤이 우윳빛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soolkoon

작가의 이전글 혼술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