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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Jun 14. 2017

네그로니, 디 오리지널

술꾼이 텐더의 네그로니를 오리지널이라고 부르다

"네그로니는 말이야, 본질적으로 캄파리의 쓴 맛을 스위트 버무스의 풍미로 길들이는 동시에 맛의 깊이를 더하고 거기에 진이 가진 알코올의 힘으로 마시는 사람을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드는 술이지. 이 세 가지 종류의 술을 얼마나 조화롭게 섞느냐에 따라 천차만별한 맛이 나는 거야. 그래서 바텐더들은 다양한 버무스와 아마로와 진으로 저마다 개성 있는 네그로니를 선보이곤 하지. 그렇지만 들어가는 술이나 비터, 가니시 종류 하나만 달라져도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는 칵테일 세계에서 그렇게 다양한 네그로니 류를 모두 네그로니라고 불러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잠시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텐더의 네그로니는 디 오리지널이라고 부를 만해."


내자동 이자까야 나나에서 그나마 좋아하는 사케 카라탄바 큰 병을 게눈 감추듯 마셔 살짝 흥이 오른 탓일까. 2차로 찾은 텐더에서 술꾼의 잡설이 시작됐다. 막 끝나버린 네그로니 위크 동안 네그로니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아쉬웠던 술꾼이 첫 잔으로 주문한 네그로니가 타겟이 됐다. 바텐더는 두 개의 금속 텀블러에 기본에 충실한 재료를 넣고 텀블러 하나를 높이 들어 위에서 아래로 붓는 이른바 쓰로우(Throw) 방식으로 네그로니를 만들었다. 그 유난스러운 모션에는 재료를 보태지 않고 사람의 노력 만으로 가장 좋은 맛을 뽑아내겠다는 그만의 고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네그로니, 디 오리지널 by 서울텐더

루비 빛 네그로니는 눈을 편안히 할 만큼 고왔고 잔을 들어 맡은 오렌지 필은 상큼했다. 칵테일을 머금은 순간, 캄파리의 쓴 맛은 기분 좋은 씁쓰름으로 변해 있었고 스위트 버무스의 복잡하고 풍부한 맛이 뒤이어 올라왔다. 진의 날카로움은 어디로 숨은 것일까. 전작으로 혀가 무디어졌다는 걸 염두에 두었다 해도, 텐더의 네그로니는 몹시 매끄러웠다. 한 모금에 반 넘게 들이켜 버릴 정도로. 아, 맛있다, 하며 혼자 황홀해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M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한 모금 줘봐 봐, 하는 눈빛으로.


M에게 네그로니를 넘기고 술꾼은 다음 잔을 주문했다. 네그로니는 오리지널 했고 모리 마티니는 특별했으며 그래스호퍼는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달콤했던 까닭에 술꾼은 알코올이 흐르는 대로 정신을 내맡겼다.


알코올이 당신을 뒤흔들어 저 닿을 수 없이 깊이 가라앉은 곳, 소리가 아주 둔탁하게 들리는 그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도록 내맡기는 것이 얼마나 만족감을 주는지를 내 마음 한 구석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와 술 / 올리비아 랭 / 정미나 옮김 / 현암사


네그로니 디 오리지널이면 어떻고 네그로니 더 스페셜이면 어떠하며 네그로니 더 콜드브루면 또 어떠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네그로니는 저마다 백만 조각의 네그로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법. 네그로니의 루비 빛은 흥겹고 즐거운, 때론 외롭고 힘든 술꾼들의 위장을 빛내 주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 soolkoon


#네그로니 #칵테일 #서울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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