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를 찾아 헤메는 나그네 신세
내 인스타그램 피드가 이상해졌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연예인 영상이 뜨고 유명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계정만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피드는 어디론가 감춰지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피드를 손가락으로 비비다가 그냥 허탈하게 떠나온다. 도대체 내 인스타그램 친구는 다 어디로 간거야?
메타는 우리를 바보로 본다. 아니, 더 정확히는 데이터 포인트로 본다. 한때 친구들의 따뜻한 일상이 흘러가던 인스타그램이 이제는 알고리즘의 차가운 계산기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나는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가 광고 수익의 부산물이 되었나?
인스타그램은 원죄를 저질렀다.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인위적인 참여 지표로 대체한 것이다. 친구의 커피 한 잔 사진이 주는 소소한 기쁨보다 수십만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의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이 우리의 시간을 더 빼앗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진짜 친구들을 찾기 위해 가짜 관계들 사이를 헤매고 있다.
이는 단순한 UX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의 본질을 훼손하는 윤리적 문제다. 메타는 나의 외로움을 상품화했다. 진정한 연결에 대한 갈망을 끝없는 스크롤링으로 전환시켜, 결국 더 깊은 고립감만 남겨두었다.
"개인화된 추천"이라는 미명 하에 나는 선택권을 박탈당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지, 누구와 소통하고 싶은지에 대한 결정권이 기계의 손에 넘어갔다. 친구 목록에서 시간순으로 게시물을 보는 것, 이토록 당연한 기능이 이제는 혁신적인 요구사항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괴한가.
메타의 경영진들은 참여도 향상을 외치지만 정작 우리가 원하는 참여는 친구들과의 진솔한 교감이다. 광고주들이 원하는 클릭률 증가가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인간적 욕구는 최적화해야 할 변수에 불과하다.
가장 씁쓸한 것은 메타가 이 모든 변화를 되돌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광고 기반 수익 모델에 너무 깊이 의존하게 되었고 주주들은 분기마다 성장하는 숫자를 요구한다. 이용자의 행복보다는 주가가 우선인 세상에서 나 같은 외로운 계정주의 피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인스타그램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너무 많은 기득권이 현재 시스템에 얽혀 있고 너무 많은 돈이 이 왜곡된 생태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메타에게 우리는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다. 광고주들에게 판매되는 주의력과 데이터의 집합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나는 일부러 팔로잉 메뉴를 찾아가 친구들을 찾아 소통하고 알고리즘의 유혹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얼마나 다행이야. 저들이 팔로잉 메뉴를 없애지 않아서. 참, 팔로잉 메뉴는 인스타그램 로고를 누르면 나온다. 오죽 갖다 놓을 곳이 없으면 로고를 눌러야 나오게 만들었다. 메타의 욕심이 지나쳤다.
인스타그램의 변질은 단순한 앱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재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진정한 변화는 메타의 선의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친구들과의 진짜 연결을 되찾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저항이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여기서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