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술은 없다.
전 편에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번 편에서는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고민했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블록체인의 미래다.
사토시가 말했던 블록체인의 미래가 예상대로 흘러갈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토시가 처음 블록체인을 이야기한 목적 중 하나는 중개인없는 완벽한 개인과 개인간 거래의 실현이다.
현존하는 금융 시스템은 중앙 집중적인 형태로 구성되어있으며 해당 기관에서 모든 거래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사토시는 이 점을 문제삼았다.
자유로운 시장에는 중개인이 존재하는데 블록체인에서는 이로 인한 불필요한 중개 비용의 발생을 줄이겠다는 목표도 존재한다.
중앙 집중적인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개인간의 거래가 가능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개인 간의 거래에서 중개료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블록체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중개 비용 발생을 지적했지만 현재 블록체인 시스템에 존재하는 트랜잭션 비용은 중개 비용과 같은 의미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수료는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보상으로 존재하지만 수수료없이 네트워크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마이너가 해당 트랜잭션을 블록에 넣어주고 그 블록을 Longest Chain에 편입시키기 위해 열심히 계산한 노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트랜잭션 비용도 기존의 자본 시장에 존재했던 중개 비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마이너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고 그러한 보상체계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시스템이 건전하게 유지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비트코인의 채굴량은 한정되어있다. 언젠가 비트코인은 모두 채굴될 것이며 그 시점이 오면 트랜잭션 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보상을 위해 열심히 컴퓨터 파워를 소모하던 마이너에게 주어지는 보상 중 하나인 비트코인의 지급이 어느 시점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이너들은 수수료를 높게 주는 트랜잭션만 채택하고 이것은 전체 트랜잭션 수수료의 평균을 올린다.
트랜잭션 비용은 마이너에게 지급할 금액을 거래 당사자가 기입하는 것인데 마이너는 해당 금액을 확인하고 너무 적으면 자신의 블록에 추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100불을 지급하는 거래에서 트랜잭션 비용으로 마이너에게 50불을 지급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문제점이다.
물론 마이너가 트랜잭션을 선택적으로 취합할 수 있다는 점도 지나친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트랜잭션 비용 즉 수수료의 존재는 정당한가?
왜 수수료를 내야하는가?
네트워크에 기여한 마이너에게 보상으로 지급한다는 논리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랜잭션 비용이라는 것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비용으로 볼 수 있다면 현존하는 자본 시장의 중개 비용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고 이 점이 블록체인의 한계로 인식될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아무런 보상도 지급하지 않고 거래를 진행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개인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거래 당사자들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여 설계한다면 당연한 고려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해법은 나도 아직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설계가 향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한 개인간의 거래인 Peer 2 Peer 네트워크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개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처럼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개인이라고 가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고민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지만 마이너 또한 보상이 낮으면 참여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기적 개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마이너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선한 천사가 아니라 자신의 컴퓨팅 파워와 보상을 계산하여 보상이 높을때만 활동하는 이기적 개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마치 투자자처럼 말이다. 현실 세계의 중개인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적 주체들이 충분한 보상을 얻게 되는 곳에만 투자하는 것을 떠올리면 마이너와 그들 간의 경계가 흐려짐을 느낄 수 있다.
마이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여한다. 하지만 중개자 또한 시장 경제에 기여한다. 자본주의를 충실히 따르면서 말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것은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마이너의 이기심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선과 악에 대한 문제는 두번째 문제에서도 언급된다.
두번째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어떤 동물인가?
이 점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두번째 문제의 핵심이다.
블록체인에서 주류 체인으로 인정받는 체인은 가장 긴 체인이다.
모두가 확인하고 검증된 체인이 전통성을 가진 가장 긴 체인이므로 해당 체인에 계속해서 블록을 추가하며 네트워크가 유지된다. 그리고 여기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훼손하고 싶은 해커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선한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의 컴퓨팅 파워의 총합이 언제나 해커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사실 해커에게는 공격의 성공을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공격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흥미로운 내용이 존재한다고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 있다.
결국 블록체인은 선한 사람들의 영향력 하에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다. 선한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관리하고 새로운 룰을 제정하며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하지만 다수로 정의된 가장 많은 컴퓨팅 파워를 가진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인지에 대한 기준은 합리적인가?
이중 지불을 시도하지 않고 정해진 룰 내에서 행동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적 모델을 이끌어갈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에서도 정당한 표를 받아 집권한 뒤 현대적 가치에 반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사례가 존재한다.
같은 맥락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이라는 가정은 안일하다. 다수는 그저 다수일 뿐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옳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5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의 의견 하에 생태계가 주도되야함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에는 현실 세계와는 달리 다수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다수의 의견과 합의를 채택하는 것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윤리적인 사회 모델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다수에 의해 선출된 선출직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현대 사회의 모델과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더 나은 사회모델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지만 정작 개선된 사항은 없다는 점이 블록체인의 모순이다.
선한 사람들이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린다는 보장도 없으며 완벽한 사회적 모델을 만들겠다는 블록체인의 야심찬 계획 아래 만들어진 커뮤니티는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의견 대립과는 별반 다를것 없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오히려 소수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기에 현실보다 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한 수많은 조직들로 쪼개지고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인정받는 목소리가 외부에서 충돌하여 더 많은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사회가 성향에 따른 독립된 개체로 나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아 블록체인은 현존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탈중앙화에 대한 의구심이다.
사람들은 사회가 탈중앙화되어 개인의 힘이 강해지고 권력 기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워질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과연 인간은 진정 탈중앙화를 원하는가?
국가의 탄생을 예로 들자면 누군가는 중앙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범우주적인 존재를 가정하며 그에 기대는 행위는 강한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본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합의에 의해 등장한 국가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며 혼자서는 지켜낼 수 없었던 개인과 집단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만약 인간이 진정으로 탈중앙화를 꿈꾸던 존재였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무정부의 카오스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이야기하는 탈중앙화가 해법이 될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하나의 옵션으로 고려될 수 있을 뿐이다. 국가의 탄생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필요에 의한 탄생이다.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꿈꾸는 미래가 모든 것이 탈중앙화된 미래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중앙화된 기관 혹은 중앙에 집중된 강력한 힘은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그 이유는 기존 권력이 새로운 변화와의 대결에서 승리해서가 아니다. 형태와 무관한 강력한 힘에 의한 통제를 원하는 개인들이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번째는 기술적인 전망에 관한 이야기다.
이더리움2.0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더리움 2.0은 기존에 존재했던 블록체인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하에 2018년부터 지금까지 진행중인 프로젝트다. 하지만 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개되고 난 뒤에 여부가 밝혀지겠지만 해결할 수 없는 한계점을 만났음에도 지나치게 거창한 목표를 세운 기술의 말로는 스캠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목적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프로젝트에는 감당하기 힘든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돌파구를 만들어낸다면 블록체인이 그리던 미래에 다가갈 수 있겠지만 아니라면 최악의 글로벌 스캠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끝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이상으로 시리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다면 지적 혹은 좋은 의견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