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노트
갖기 힘든 것(Things)과 겪기 힘든 경험(Experience).
"이 둘 중 단 하나를 선택하여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가끔 이런 질문을 혼자 해본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경험만이 희소한 가치를 지닌 결과(Things)를 얻을 수 있다."라는 일종의 인과관계를 떠올리면 선택은 훨씬 간단해진다.
경험(Experience)은 지능이 있는 생물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유전자 어디에도 각인되지 않은 후생적 경험을 DNA의 어떤 빈틈에 메워 본능이나 무의식의 자동화된 행동으로 후대에 물려준다. 대뇌신피질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 경험은 더욱 특별하다. 지능을 지성으로, 본능을 문화와 문명으로, 파편 된 경험을 지혜의 재료이자 진화의 동력을 삼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Homo Sapiens)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사유하고 자각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자기실현의 욕구를 채우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남과 다른 경험(그 경험이 고되고 어렵고 힘들수록)은 개인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남과 다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덧대어 보다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게도 한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삶의 게임에서 경험은 지식과 정보일 뿐 아니라 물리적인 수단과 무기로도 언제든 탈바꿈할 수 있다. 대학 입학, 회사에 채용 등 피동적으로 선택받아야 하는 순간에 특별한 경험은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대기업, 상장사,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거치며 수 백, 수 천명의 입사 지원서류와 채용 면접을 봤다. 각각 회사의 유형과 브랜드의 인지도, 경영 수준에 따라 지원자의 수준도 그러하다.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고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반추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Spec.)이 좋은 회사 지원자들의 특징이라면 반대의 경우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든 지원자가 바라는 조건은 같다. '가치를 인정받고, 돈도 많이 받는 것.' 우선은 가치를 인정받아야 그에 따른 금전적 조건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명제와도 같다.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가진 지원자들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 좋은 스펙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 최소 1~2년 공부를 하거나 체류한 경험이 있고, 방학이나 휴학 기간 동안 인턴 생활을 한 경험이 눈에 띈다. 이러한 지원자는 경험치만으로도 1차에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대학 4년간 단 한 번의 휴학도 하지 않은 채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점이나 각종 수상 이력, 외국어 실력을 갖춘다면 이 역시 특별한 경험치로 인정이 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4년이라는 시간을 매우 밀도 있고도 충실하게 살아온 명징한 증거와 결과가 증명되어 있고 지원자의 태도와 모습으로도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원서 상에서 나는 지원자의 특별한 경험을 찾는다. 그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은 특별한 노력, 투지, 투쟁 정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런 것이 찾아지면 반드시 대면 면접을 한다. 그리고, 지원자에게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됐는지 묻고 그 경험을 통한 자산이 무엇인지 그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의 눈과 제스처를 유심히 살핀다.
입으로는 거짓의 말이 뱀처럼 기어 나와도 눈빛과 제스처의 복합적인 변화는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진실의 거울 역할을 한다. 내가 알고 싶은 진실은 그 경험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능동적으로 참여했는지, 목적한 바가 있었는지, 그리고 얻은 것은 무엇인지 그 얻은 것으로부터 지원자는 그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달라지고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눈빛은 그 어떤 빛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은은한 향기마저 공기 중에 스미게 할 수 있다. 눈빛은 마음과 눈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된다. 동공이 열리고 눈동자는 삽시간에 주변의 온기와 빛을 빨아드렸다가 일순간 내뿜기를 반복한다. 주변 모든 인간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어 주목하게 만들고 그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호감과 애정의 감정으로까지 몰아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경험이란 소재는 어느새 행복이라는 소재로 바뀌었고 그만이 경험한 주제로 확장되어 기승전결이 전개되는 동안 흐뭇한 미소는 내 입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서사(Narrative)를 꾸밈없이 전달한다. 행복한 눈빛과 미소와 함께.
기대를 기대치로 하면 기대에 대한 가치(값)를 매길 수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경험에도 경험치라는 가치(값)를 매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경험치를 정량적인 수치로는 측정하고자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지만 경험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역량으로 연결되고 향후, 필요한 순간에 경쟁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쓰인다면 이는 특별한 값어치가 분명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행복을 원할 때가 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능동적이고 주관적으로 헤쳐온 사람들은 새로운 행복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도전도 이와 같은 류의 경험이다. 새로운 물질을 갖게 되는 기대감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기대감이 우리의 행복감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경험으로부터 개인은 성장하고,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연대와 유대를 강하게 한다.
대중교통 이용에서 걷거나 뛰기로 바꾸는 것, 매일 7시의 기상을 6시로 바꾸는 것, 잠들기 전 유튜브 영상 보기에서 책 읽기로 바꾸는 것, 퇴근 후 동료들과의 음주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자리로 바꾸는 것. 이 모든 소소한 일상 중에도 우리가 새롭게 경험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를 지금보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삶의 의미에 무관심할수록 생활 수단에 탐욕스러워집니다.
(...)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헛되이 껍데기를 구합니다.
외적인 것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는 세계를 달구고, 세계를 타락시킵니다.
삶에서 본질적인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양 오해하고,
자아에 도취해 살아가는 가운데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에 자꾸만 비중을 둡니다.
- 마틴 슐레스케, '가문비나무의 노래'에서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