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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2. 2024

작은 사람에게서 얻은 이야기

용기에 대하여

회기역, 2024 / Fujifilm X-E4 + Voigtländer Ultron 27mm F2

  며칠 전 작은 사람과 함께 남양주에 다녀왔다.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꽤나 긴 여정이었다. 배차시간이 긴 중앙선을 기다리는데 철로 위에 떨어진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하트 모양을 한 그 나뭇잎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저것 봐, 저기 하트가 있어."

잠시 두리번거리던 작은 사람은 내가 말한 그 하트를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해맑은 미소를 뗬다. 이내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는 작은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엄마, 근데 저 노란 하트는 친구들이랑 떨어져 있어서 너무 속상하겠다... 외로울 것 같고."

마음 여린 두 모자는 그저 떨어질 때가 되어 떨어졌을 뿐인 나뭇잎 한 장에 잔뜩 감정을 실어 이후에도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잎이 흔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 하트가 움직인다!"

작은 사람은 바짝 다가서서 외쳤다.

  "힘을 내, 노란 하트야! 엄마, 노란 하트는 정말 용감한 친구야!"

우리는 그 나뭇잎에 '용기의 하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티 나지 않아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내 모습 같기도 해서 더욱 응원하고 싶었다.


  언젠가 어린이집에서 보내오는 알림장에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산책을 다녀오던 작은 사람이 손을 잡고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친구야, 내가 용기를 줄게!'

용기가 무슨 뜻이냐고 친구가 묻자, 작은 사람은 '믿음'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였다.

세 번의 생일을 보낸 이 작은 사람은 나보다도 일찍 삶의 진리를 깨달은 현자 같았다. 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마음을 가지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 그게 바로 용기인 것을 어떻게 벌써 알 수 있었을까.

  그 사이 지하철이 도착했다. 우리는 용기의 하트가 나아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러한 것처럼 어쨌든 용기를 냈을 거라 생각한다.


  용기에 대한 일화가 또 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역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마르코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데리고 왔다. 이미 전날부터 마르코를 만난다며 기대에 잔뜩 부풀었던 작은 사람이었지만, 막상 자기 몸집만 한 다른 생명체를 보니 겁이 났던 모양이다. 주저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윤기가 흐르는 갈색 털 위에 살짝 올렸다가 얼른 거두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마르코가 멍멍 짖을 때는 움찔하면서도, 식사를 하는 내내 밖에서 기다리는 마르코를 보러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내 귀에 대고 "엄마, 나 마르코가 조금 무서운데 많이 무섭지는 않아!"라고 속삭였다.

  근교 카페에서 함께 뛰어놀며 조금 친해진 뒤에는 목줄을 잡아보기도 하고, 친구의 집에서 마르코가 누워 자는 자리에 누워보기도, 그리고 마침내 마르코를 안아주기까지 성공했다. 그 얼굴에는 뿌듯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무섭지만 그럼에도 해보는 것, 그 모습을 통해 나에게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작은 사람에게 감사한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자꾸만 흔들리는 요즘. 용기를 상실해 불안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래도 괜찮으니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응원이었다. 그날 나는 뜨거운 응원을 기꺼이 받았다. 내 안에 든든하고 노란 '용기의 하트'를 하나 박아둔 것처럼 매일 묵묵히 걸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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