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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Sep 10. 2020

“성범죄자예요”했다가 ‘취소’...


지난 3일 고려대 재학생인 A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A씨는 지난 7월부터 지인 능욕(성인물에 지인 얼굴을 합성하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돼 사진과 이름, 학교, 학번, 전화번호가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앞서 A씨는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링크를 눌렀는데 그때 해킹을 당한 것 같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건 성범죄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다. 올해 초 성범죄자의 신상을 민간 차원에서 공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공간으로 운영자 B씨는 성범죄 피해 제보를 받아 일정 검증을 마친 뒤 성범죄 용의자 신상을 30년간 공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에 일부 누리꾼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그간 성범죄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죽는 세상이 와야 한다” “모든 범죄자(정보를) 다 올려주세요” “디지털교도소에 후원금 보내드리고 싶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법 때문에, 돈 없어서 삭히지 마시고 시원하게 이들의 자살을 최종목표로 댓글 달아 주세요”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법의 심판을 피해 가는 성범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가 일각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디지털교도소의 행태는 현행법상 위법 요소가 크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용의자는 범죄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 죄인으로 취급받지 않아야 하지만 디지털교도소는 피해자로 주장하는 이의 제보만 있다면 용의자 신상 공개에 거리낌이 없다. 신상 공개를 막으려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데, 정황상 그럴 수 없다면 온라인에 신상이 공개되고, 그렇게 그는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B씨는 나름의 검증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하지만, B씨 개인의 주관적 잣대가 반영될 여지가 커 억울한 피해자가 나와도 제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오인된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 7월엔 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공범으로 오인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됐다. 용의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정확한 검증 없이 신상을 공개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B씨는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으나 그사이 가해자로 지목된 유튜버는 막대한 물질/정신적 손해를 입었다. 가톨릭대학교의 모 교수 역시 ‘성착취물 구매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돼 온갖 비난에 시달리면서 교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범죄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위법 정황이 드러나면서 지난 6월부터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신상이 공개된 인물의 성범죄 혐의가 사실이라면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 허구라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7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가능한데, 디지털교도소의 서버가 해외에 위치한 관계로 수사에 다소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최근 디지털교도소의 조력자 두명의 신원이 특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는 B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조력자가 소환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에) 모든 연락을 끊고 연결고리를 해제했다. 애초부터 서로의 신상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여러 폐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교도소를 지지하는 사람, 특히 여성이 많은 건 그간 여성이 성범죄와 관련해 사법제도에 큰 불만을 지녔음을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정법이 속 시원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니 민간의 힘으로 단죄하겠다는 것. 다만 문제는 그런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방식의 ‘과격함’이다. 일부 누리꾼은 “상대가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했으니 가해자의 신원을 공개해도 무방하다”라는 함무라비(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주장을 내놓지만, 사실 함무라비 법전의 탄생은 사사로운 보복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교도소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는 그 논리가 너무 과격하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에서 “여성학을 선택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긍정이 동력이 되는 여타 학문과 다르게) ‘노여움’이라는 감정이 계기였던 경우가 많다. (그들은) 현실 세계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전통과 질서를 완강히 거부해야만 변화가 가능하다. 그 과정은 온순하게만 진행되지 않는다”며 여성인권운동이 과격하게 비치는 이유를 설명한다. 다만 그러면서도 “‘미러링’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의 몸을 몰래 찍어 죄책감 없이 공유하는 남성들의 나쁜 문화를 비판한다면서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퍼뜨리는 식이다. 이는 따져 볼 것도 없이 ‘범죄’다”라고 지적한다.


신원 공개를 통해 성범죄 용의자와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면서 잠시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디지털교도소는 우리 사회로부터 정당한 처벌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고, 그런 능력을 증명하지도 못했다. 성범죄 처벌 기준이 국민정서법 기준에 미흡하고 이로 인해 적잖은 이들이 디지털교도소에 호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범죄에 또 다른 범법 요소로 대응하는 건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려운, 몹시 위험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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