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리고 9월은 특히 ‘독서의 달’이라고 부른다. 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며, 9월이 ‘독서의 달’이냐고 물으면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답은 ‘책 읽기 좋아서’다. 물론, 책 읽기 좋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습도도 딱 적당하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클리셰다. 그리고 사실 선선하면 책 읽기뿐만 아니라 놀기도 좋다.
그렇다면 가을은 왜 ‘독서의 계절’인가, 9월은 왜 ‘독서의 달’인가. 답하기 어렵다면, 대답 대신 떨어지기 시작하는 낙엽을 가리켜보는 게 어떨까.
“한 잎 두 잎 나뭇잎이/낮은 곳으로/자꾸 내려앉습니다//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그대여/가을 저녁 한때/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사랑은 왜/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가을 엽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치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아주 많다는 듯이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낙엽. 그런 ‘가을의 엽서’와 책은 닮았다. 도서관, 서점, 사무실, 집… 낙엽처럼, 책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조건 없이 떨어지는 낙엽비처럼 우리에게 오래됐지만 정결한 지식을 선물한다.
낙엽과 책, 따라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고, 9월은 ‘독서의 달’이라고 하면 어떨까. ‘국가대표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하는 9월의 책을 소개한다.
■ 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창비 펴냄│312쪽│15,000원
이 책은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형구네 고물상’에서 아역배우였던 형민이 38년 뒤 ‘그 시절, 그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에 섭외돼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형민의 유년시절 회상부터 어머니, 아내, 형민 회사의 동료들, 아파트 이웃들, 길에서 만난 인연, 그리고 형민을 인터뷰하는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사회자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작가는 기쁨과 슬픔의 일상들을 따뜻하지만 덤덤한 어투로 표현했는데, ‘작가는 어느 정도의 슬픔이 적절한지, 또 어느 정도의 희망이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 형민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냥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왜 ‘상냥한 사람’일까? 여기서 ‘상냥한 사람’이란 바로 형민처럼 다른 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닐까.
책 속 한 문장
“중간이라는 말 앞에 붙은 ‘어’ 자는 무엇인가. 어중간, 어정쩡, 어수룩… 어로 시작되는 말들을 찾아보다가 그 모든 단어가 자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5쪽>
■ 러브 인 프렌치
로런 콜린스 지음│김현희 옮김│클 펴냄│364쪽│14,500원
같은 한국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말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심지어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 책은 미국인인 저자 로런이 프랑스 남자 올리비에와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겪은 일들, 특히 언어 때문에 벌어진 다양한 경험들을 다룬 에세이다. 남편의 일 문제로 스위스 제네바에 살게 된 로런.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제네바에서 영어 사용자인 로런이 생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남편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로런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언어가 가진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모국어가 서로 다른 로런과 올리비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 속 한 문장
“말에는 한 가지 이상의 문화, 즉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존재 방식이 담겨 있다.” <242쪽>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프리츠브라이트하우프트 지음│두행숙 옮김│소소의책 펴냄│304쪽│17,000원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는 공감의 말을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공감이 자칫 부도덕적인 행동과 거짓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하며 공감의 진실을 파헤친다. 공감은 자아 상실, 즉 자신의 관심사와 관점을 잃어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저자는 스토커,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자식들을 통해 체험하고 싶어 하는 ‘헬리콥터 부모’ 등을 통해 공감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한다.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스토커 팬,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난민 소녀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책은 공감이 공동체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에서 소개된 공감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모두 다 동의할 수는 없어도 공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책 속 한 문장
“여기서부터 과소평가될 수 없는 공감의 두 가지 어두운 면을 고찰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생각을 선과 악, 흑과 백, 친구와 적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굳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희생자로 표현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124쪽>
■ 월요일 아침의 심리학
하유진 지음│청림출판 펴냄│279쪽│15,000원
일요일 저녁,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출근이 기다려지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답답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월요일 아침이 되면 당연한 듯이 직장으로 향한다.
이 책은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심리학적 측면에서 조언을 건네고자 한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일, 관계, 마음의 문제로 힘들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 유용하다. 저자는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강점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강점을 알고 잘 활용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이 만족스럽고 의미 있다고 느끼게 된다. 만약 관계, 즉 사람 때문에 힘들다면 자신과 상대방이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서일 것이라 진단한다. 이에 따라 갈등에 대처하는 5가지 유형을 제시하며 스스로 자신의 갈등 관리 유형을 파악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실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답해보자. 내일이 월요일이라도 출근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책 속 한 문장
“일의 의미는 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의도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를 모두 가지고 있을 때 가장 굳건해진다.” <93쪽>
■ 포스트트루스
리 매킨타이어·정준희 지음│김재경 옮김│두리반 펴냄│294쪽│16,000원
살면서 증거가 명백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된 판단에 순응한 적은 없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깨졌을 때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위나 행동을 정당화한 적은 없었는가? 이 책의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사회심리학적 인지편향 이론들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성이 포스트트루스 즉, 탈진실 현상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탈진실은 감정이 사실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페이스북, 유튜브 등 개별적으로 맞춤편집이 가능한 소셜미디어 세상 속에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골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인들은 개인의 비판적 사고가 어려운 미디어 환경에 놓여 있다. 이 책은 탈진실의 기원과 현황을 다양한 개념과 사례로 설명한다. 우리 스스로가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여 탈진실에 맞서는 방법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 속 한 문장
“어차피 우리가 모든 사실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마음속 목소리가 속삭이더라도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의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15쪽>
■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송은주 지음│웨일북 펴냄│348쪽│15,000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과학기술의 발달 속에서 우리는 왜 인간인지, 인간이 기계와 다른 것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SF 문학을 통해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과 함께할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고 인간으로서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할지 알려준다. 『이백 살을 맞은 사나이』 , 『화이트 노이즈』 같은 유명 작품을 살펴보며, 인공지능, 복제기술, 유전자 변형 식품, 환경파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의 장점과 문제점을 논의한다. 어려운 과학용어 대신에 SF 문학의 줄거리를 토대로 설명을 하고 있어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다. 과학과 문학의 만남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두 영역을 연결시켜 신선함이 느껴진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편의 SF 소설을 읽은 듯하다. 더불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지 엿볼 수 있다. 불확실성이 점점 높아지는 이 시기에 이 책을 통해 미래 예측을 해보고 대처할 방법을 알아보자.
책 속 한 문장
“과학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놓을지를 생각하기 전에, 그렇게 바꾸어놓을 인간의 모습이, 미래의 세상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22쪽>
■ 해마를 찾아서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안미란 옮김│민음사 펴냄│388쪽│16,800원
우리는 기억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기억이란 정확할 때보다 모호할 때가 더 많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억은 왜 점점 흐려질까? 지난 일을 더듬을 때 종종 엉뚱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연구에 따르면 기억이란 장소, 감각, 인물 등 여러 정보의 조각으로 각기 저장된 뒤, 회상할 때 다시 조합돼 꺼내진다고 한다. 뇌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복합적인 작용이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을 가시화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연구와 실험으로 밝혀낸 사실도 아주 많다. 그중 하나는 바닷물고기 해마를 닮아 이름 붙여진 조그마한 뇌 조직이 기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잊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지만, 기억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런 불안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우리 뇌 속 기억의 생태를 파헤치는 여정을 떠나 보자.
책 속 한 문장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때까지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말하자면 기억을 위한 인큐베이터이다.” <243쪽>
■ 식물학자의 식탁
스쥔 지음│박소정 옮김│현대지성 펴냄│400쪽│17,500원
산을 오르다 옻나무에 살갗이 조금만 스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망고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달콤함을 선사하는 망고 역시 옻나무과 식물이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우루시올’이 소량으로 들어있다. 식물학자인 저자 스쥔은 야생 속 숨어있는 독소와 효능뿐 아니라 올바른 식용 방법에 대한 정보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나한송, 연리초 등 낯선 중국의 식물부터 은행, 고사리, 아스파라거스 등 우리의 식탁에도 자주 오르는 식물까지 과학적인 정보와 함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정보를 담고 있다. 먹을거리는 다양하지만, 식중독 등 식품 관련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 이 시기에, 그가 소개한 50여 종 식물의 영양적 가치와 치명적인 독성의 해결 방법이 궁금한 독자는 이 책을 펼쳐 보길 바란다.
책 속 한 문장
“결국 예쁜 외모와 훌륭한 맛이 바로 앵도의 자본이다. 우리는 앵도에 영양이 있고 없고의 문제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약간의 수분이라도 보충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