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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Sep 25. 2023

어머님, 이번 제사는 쉴게요.

제사에 대처하는 치졸한 며느리의 자세

 5월 2일, 5월 22일, 10월 18일, 11월 20일...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시 할머니 할아버님과 증조할머니 할아버님 기일, 여기에 1월 1일 신정과 추석까지 더해 시댁에서는 1년에 총 6번의 제사상과 차례상을 치른다. 사실 나에게 제사와 명절 차례는 낯선 일이 아니다. 친정에서도 1년에 2번은 제사를 지냈고, 명절 또한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일 하는 엄마를 도와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하는 것도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나마도 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친정 아빠는 모든 제사와 차례를 없애고 기일과 명절 전후로 성묘를 다녀오셨다.

 

 하지만 며느리가 된 나에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분명 내가 없을 때에도 지내온 제사였을텐데, 내가 그 자리에 늘 있었던 것처럼 제사의 의무가 점점 나에게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연애 중엔 제사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남편은 결혼 후 조기 퇴근을 하면서까지 제사에 참석했다. 전 부치기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고, 내가 시댁에 도착할 때까지 전을 만드는 식재료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묘한 불편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린 10월 결혼기념일 즈음 꼭 여행을 떠나는데 공교롭게도 여행 날짜와 제사가 겹친것! 9월에는 날짜를 잡는 족족 아이의 고열, 수족구 등 문제가 생겨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미루고 미룬 여행이라 더 이상 스케줄을 변경하는 건 불가능했다. 휴가가 얼마 없던 시절이라 그 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이번엔 그냥 여행 가자!라는 나와 어쩔 줄 몰라 아무 대답 없는 신랑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신랑은 여행 일정을 미루고 제사에 참여하자고 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년 제사 시즌(!)이 오면 우리의 다툼이 반복되었고 이씨들 사이에서 고씨인 나는 홀로 여전히 제사와 싸우고 있었다.

 

 2009년에 만나 지금까지 13년이 되는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도 절대 좁혀지지 않는 남편과 나의 간격이 있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나는 말로 푸는 편이지만 남편은 반대로 입을 닫는다. 며칠 전, 비슷한 패턴의 문제가 또 생겼고 그동안 쌓인 모든 감정들이 한 번에 쏟아졌다. 그간 쌓인 소통의 부재가 여실히 와닿았다. 하루 이틀의 침묵으로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었다.


2022년 10월


 어제는 할머님의 제사였다. 이 감정으론 제사의 ‘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번 제사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동안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며 시댁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남편을 향한 마음이었지 시어른들을 향한 마음은 아니라고, 어떤 일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 얘기는 그저 편 가르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내 일과 내 일 아닌 것이 어디 있냐며 지금 본인에게 한 이야기들을 어른들 앞에서도 할 수 있다면 제사에 가지 말라고 했다. 왜 못해? 나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사 다음 날, 둘째 아이의 등원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님’ 세 글자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일단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오전 중에 보면 좋겠다. 시간 될 때 전화해 줘.’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놓고 밀린 집안일을 시작했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분명 공기는 차가운데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

 전화를 받았다. 하실 말씀이 있다길래 전화로 말씀하시라 하니 굳이 얼굴을 봐야 한다고 하셨다. 할 말이 아주 많다고 하셨다. 점심 즈음 어머님이 계신 공방으로 찾아갔다.


“너네 싸웠니?” “무슨 일이니?”, “우리(시부모님)랑 관련된 일이니?”

“네. 싸웠어요.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은 아니에요.”

짧은 대답 후 2시간이 넘도록 어머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너는 며느리고, 며느리에겐 의무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 준비와 참여다. 특별히 아파 쓰러지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종갓집인 줄..) 너는 근데 그걸 지키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네. 부부가 싸웠어도 함께 와서 제사는 지내고 그 후에 둘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네 감정을 왜 다른 가족들에게 드러내니? 너는 결혼이 시부모에게서 아들만 쏙 빼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너에게 시부모는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니? 네 행동은 그저 남편을 휘두르기 위한 행동으로 밖에 안 보인다. 상대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치. 졸. 하고 미. 성. 숙. 한 행동이야. 내 말이 틀렸니?


 치졸이라.. 37년 사는 동안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결혼은 각자의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의 독립이 아니었나? 남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결혼이었나..? 10년 동안 아무 말없이 시댁의 크고 작은 일을 모른 척한 적이 없었는데 고작 하루, 한번 제사에 빠졌다는 이유로 치졸하다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치졸'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했다. 사전적 의미로 '치졸하다'는 유치하고 졸렬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치졸한 건 누구일까, 얼굴도 모르는 조부모님과 증조부모님의 제사를 10년 동안 군말 없이 지내온 나일까? 아니면 단 한 번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전에 대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한 시어머님일까?



2023년 9월


 지난해 10월, 남편과의 큰 다툼 후 제사 준비 문제로 어머님과 갈등이 생겼었다. 위의 글은 자다가 화가 나 벌떡 일어나 새벽에 토하듯 쓴 글. 그 후 시부모님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뀐 건 없다. 아버님께선 아버님 세대에서 제사를 마무리 짓겠다고 하셨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남편에겐 큰 형이 있으니 이럴 땐 나도 아버님처럼 지독한 유교인처럼 굴어본다. 모두 (아직 미혼이지만) 아주버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 아니던가.


 1년 사이 시부모님께선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달라졌다.


 1. 제사 준비는 무조건 남편이 가서 함께 한다.(남편이 일찍 오지 않으면 나도 시댁에 가지 않았다.)

 2. 어머님의 부재(미국행)로 혼자 제사를 준비하는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을 받는다.

    (수고비를 주지 않으면 생활비에서 빼돌렸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아버님께서 이번 추석 차례는 성묘로 대신하겠고 연락을 주셨다. 물론 성묘도 남편과 아버님, 그리고 큰 아버님만 가기로 했다.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다. 올해 추석은 쉽게 넘어가지 싶지만 10월, 11월 제사가 연이어 기다리고 있다. 아버님께서 제발 한 번만 '넌 이제 제사에 오지 말아라!'라고 얘기해주셨으면 좋겠다. 신혼 초 합가 시절, '너네 그렇게 매일 싸울 거면 나가 살아라!'라는 한 마디에 다음 날 바로 부동산에 가서 집 계약했던 말 잘듣는 며느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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