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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버섯 Aug 28. 2021

92년생 이아무개

뉴스에서 보이는 젠더갈등이 남 일인 줄만 알았다. 양극단의 싸움이겠거니 싶어 크게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헤어지기 전, 구남친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남일이 아니구나를 실감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누가 너보고 페미니스트라고 물어보면 너 뭐라고 할거야?"

"나 페미니스트 맞는데? 페미니스트라고 할거야."

그런 나를 벌레보듯 바라보는 그 자식을 보니 해소될 수 없는 답답함이 치밀어올랐다.


"페미니즘이 뭔데?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성평등을 말하는 건데 왜 그렇게 쳐다봐?"

"나도 남녀 성평등이 되어야 하는 가치는 존중해. 그렇지만 이렇게 페미니즘이 논란이 되고 있는 시국에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진 않을거야. 마치 개독교로 욕먹는 상황에서 기독교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하니?"

"아니 부부가 되면 이렇게 어느정도 서로 일치되는 입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어쩌구 저쩌구..."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로 인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억압에 저항하여 성평등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상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미니스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고구마 100개를 먹은 느낌에 더이상 대화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날 나의 현실이 10년전 언니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어쩌면 구남친은 ‘페미니즘’ 논란이 많던 그 영화를 본다고 한소리 할 영화일지도 모른다. 꽤나 유명한 소설과 영화지만 어느 정도 아는 이야기일 것 같아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한 7년 뒤에 [92년생 이지영]으로 개봉해도 공감될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사부인. 쉬게 해주고 싶으면 집에를 좀 보내주세요. 사실 그렇잖아요. 사부인도 명절에 딸보니 반가우시죠?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 딸 오는 시간이면 제 딸도 보내주셔야죠. 시누이상까지 다 봐주고 보내시니 우리 지영이는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사돈, 저도 제 딸 귀해요."


명절에 자기네 집 갈 눈치만 보며 시댁에서 일하는 김지영씨를 보니 과연 이게 82년생 김지영씨만의 일이었을까 싶었다. 명절에는 꼭 제사를 지내는 우리집에 가야 한다는 구남친이 떠오르면서 이건 92년생인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뻔한 일이었기에 아찔했다. 헤어지길 잘했다. 휴..



'명절에 똑같이 우리집과 니네집을 나눠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단지 내가 원하는 건 너네 집 먼저 갔다 그다음 명절에는 우리 집 먼저 가는 공평한 명절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 여러 번 물었다. 네가 그렇게 공평과 공정을 추가하는 사람이라면서 왜 너는 너에게 불편한 공평과 공정을 뒤로 미루니? 차라리 ‘나는 가부장적인 집에서 태어나서 당장 공평한 명절을 위해 어른들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다. 미안하다. 네가 희생해라.’ 인정하는 꼴이 더 나을 뻔했다. 그는 꾸준히 자기는 꽤나 열린 생각을 가진 합리적인 남자임을 강조하며 "네가 말하는 명절은 우리 집에서는 당장 어려워. 나는 여전히 성평등, 공평한 세상을 추가하지만 우리 집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순 없다. 내가 언젠가 바뀌긴 바꿀건데.. 당장은 어려워. 당장 바꾸면 어른들과 크게 갈등을 겪으니 소프트랜딩이 필요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가 말하는 점진적 변화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치만 그는 되레 자신이 명절의 풍경을 점진적으로 언젠가 바꿀거라고 말했음에도 자기를 믿지 못하냐며 따져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그 사람을 못 믿는 내가 문제인가? 내가 너무 급진적인 요구를 하나? 싶었으니.


구남친에게는 명절에 왕복 6시간 넘게 시골까지 내려가서 1박 2일 했으면 다음 명절에는 가까운 우리집도 먼저 가자는 게 아직까지 유토피아 같은 일이었나 보다. 사실 내게 명절은 ' 새끼 귀하듯  새끼도 귀한  아니?'라는 자세의 시발점이라고 보았다. 명절에 처갓댁을 똑같이 가는 것조차 양보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얼마나 남의 자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집인지 가늠하게 하니 말이다.  


*며느리를 구해줘!

https://brunch.co.kr/@reading121292/24



그러다 최근 그 사람이 자기 엄마랑 통화하는 걸 들었다.


“아들~ 오늘 생일인데 뭐했어?”

“어 엄마~ 오늘 생일이라 여자친구가 와서 오리고기 사줬어. 용돈은 왜 이렇게 많이 보냈어~”

“겨울옷 사 입으라고”

“겨울옷도 이미 여자친구가 사줬어. 생일이라고 고기도 사주고 옷도 사줬어.”

“그건 좀 마음에 드네.”

“조금이라니~”

“좀 더 두고 봐야지”


저기요. 아주머니..? 저는 아직 당신의 아들과 결혼할 확신도 없고 아주머니 같은 시어머니라면 신발도 안 신고 도망나갈 것 같은데.. 두고보신다니요..? 면접관이세요? 제가 어디 입사하나요? 보통 면접이나 심사 합격하면 연봉협상이나 보상을 하는데 두고 보시고 제가 합격이면 뭘 보상해 주시는 건가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건 그 자식의 항변.


“원래 말을 틱틱하시는 스타일이셔. 그리고 그건 농담이야. 진담이 아니야. 우리 엄마 저번에 한번 봤을 때 엄청 잘해줬잖아! 그건 그냥 농담이야. 결혼하고 이런 일 있으면 당연히 내가 네 편에서 부모님이랑 맞서 싸울 거야. 이건 진담이 아니야.”


‘적어도 아들 생일에 여자친구가 이것도 저것도 챙겨줬다고 하면 고맙네, 좋네, 그랬니?가 먼저 나와야 정상아니니? 너희 엄마는 너한테 엄청 다정하던데 네가 만나는 여자친구에게는 틱틱대시는구나. 아들이 엄청 잘난 줄만 아시나봐? 지금도 내가 기분 나쁘다는 말에 너희 엄마의 농담이라며 감싸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급급하면서 나중에는 내 편을 들어? 내 감정이 정당하다고 인정조차 안하면서? 아니 평생 너희 엄마랑 오손도손 살아. 구역질 나.’

 

미래의 내가 심사위원 두 명과 그 심사위원의 충실한 보좌관 사이에서 나의 감정 따위는 갈등의 불씨 취급을 받을 생각에 치가 떨렸다. 이생망 일 뻔.. 82년도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래도 92년도에 태어나서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피해갈 수 있음에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씁쓸했다.


결혼하기 전에 이런 모습을 알아서 다행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 훗날 어쩔 수 없이 겪을 뻔한 이런 불평등과 갈등을 피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그 통화가 들리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나!!




"보안요원이 몰카를 설치했다고?"

"내가 화나는 건 오과장이야. 아니 인터넷에서 그 사진들 발견하고 우리 회사인 줄 알았으면 신고를 해야지. 어떻게 남자 사원들이랑 돌려볼 수가 있냐고."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씨가 겪는 그다음 장면.. 결혼을 하던 안 하던 피할 수 없는… 회사 화장실에 몰카가 있어 난리 난 장면을 보았다.… 그지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에 구구구남친을 만나면서 구구구남친이 잠을 자던 나를 사진 찍던 걸 발견했다. 아주 당당하게 사진을 촬칵 찍더라. 뭐지 싶어서 앨범을 보자고 하니 미친놈이 나한테 걸린 게 재밌다며 키득거리는 게 얼마나 소름 끼치던지. 울며불며 화내는 내게 그는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며 나를 인터넷 속 이상한 남자들이랑 똑같이 생각하냐고 울분을 토했다. 울분을 토할 사람은 너 같은 쓰레기를 만난 나인데..? 되레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개자식을 보며 '내가 과한 오해를 한 건가? 호기심에 그럴 수 있다고 하면 넘어가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순진멍텅구리 같으니.



그래서 그 이후에 그놈과 헤어지고 나서도 몰카범, 그런 사진으로 협박하는 쓰레기들을 보면 늘 그 개새끼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그 새끼랑 헤어지고 한 2년쯤 지났을 땐가 구하라 양의 사건이 터졌고 나는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카톡으로 정말 쌍욕을 보냈다. 물론 그 자식에게는 욕도 아깝지만.


더 웃긴 건 아무도 그 쓰레기가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다는 거다. 함께 아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헤어진건 순전히 나의 문제처럼 비쳐지고 있었다. 내가 변덕을 부려서 그렇다나. 차마 나는 그 실상을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그저 변덕 부려 헤어짐을 고한 여자가 되어야 했다.




82년도에 태어난 김지영씨는 점점 애엄마, 아내로만 사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경력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게..육아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집에서 쉬는 여자처럼만 보여지는 사회가 두려웠을 거다... 애가 커서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지영언니. 경단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미래 내 모습일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차라리 애 안낳고 말래.


나보다 10살은 많은 같은 팀 회사 선배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다 점점 높아지는 업무강도에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은 가까이 사는 엄마의 도움을 받았지만 출근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도저히 병행이 불가함을 깨닫고 회사에 백기를 들었다. 육아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나는 어쨌든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선배가 부럽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회사를 떠나는 그녀는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부럽다고 말하는 내게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선택이 잘한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엄마가 출근할 때, 울며불며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며 선택한 결정이 자신에게도 후회가 없는 일일지 그녀는 복잡한 마음이라고 했으니.



그녀는 처음 결혼할 때만 해도 자신이 남편보다 연봉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출산과 육아휴직을 거치면서 공백을 둘 때, 어느새 남편은 자기의 연봉을 따라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는 엄마인 자기가 더 일보다 육아에 집중하면서 자기의 연봉보다 남편이 더 높아졌기에 이제는 둘 중에 육아를 위해 회사를 포기해야 한다면 자기가 희생해야 하는 게 더 당연해진 거다. 가끔은 똑같이 결혼하고 부모가 된 건데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마치 K-양극화처럼 벌어지는 남편과 자신의 연봉과 위치를 보며 괜스레 남편의 승진도 배가 아프다고 했다.


“지영아.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니? 너도 니 남편만큼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했는데. 그래 뭐 임신은 어쩔 수 없다고 해. 그래도 육아는 나눌 수 있는 거 아니야?”

“언니 그게 말처럼 쉬워? 사실 시어머니 말씀 틀린 것도 아니지. 뭐. 내가 나가서 오빠만큼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번 돈 아영이 어린이집이랑 시터월급 주고 나면 모자랄 수도 있어.”


내가 지금껏 ‘82년생 김지영’을 보지 않았던 건, 영화 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지극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니 내게도 일어나는 현실이기에 … 이 구역질 나는 현실을 차마 마주 보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나는 결혼하면 아내가 자기만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아내만의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어." 한때 만난 구남친은 말했다.


얼핏 상상해봐도.. 아니 주변만 봐도 내 일(꿈)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을 거란 걸 알기에. 아이를 낳지 않지 않고 사는 건 어떠냐고 물으면 그놈은 아이는 꼭 낳고 싶다고 했다.


너의 꿈을 펼치되 애는 꼭 낳아줘.


이런 모순덩어리. 그들이 말하는 합리적임이 얼마나 모순적인 건지 더 늦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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