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트리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수 Oct 21. 2023

마술로 시작해 예술로 끝나다

공연 읽기: 이은결 일루션

마술 같은 등장이었다. 그가 무대로 걸어 나오거나 커튼 뒤에 서 있다 등장해도 뭐라 그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은결은 스스로를 마술사가 아닌 일루셔니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무대 등장은 관객에게 환상을 갖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그런 기대감을 간파했다. 라스베이거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 마술 쇼에 준하는 첫 등장을 선보였다. 관객의 기대감을 그 이상으로 채우며 공연을 시작했다.

짧은 인사에 이어 진행한 오프닝 공연도 특별하고 놀라웠다. 어떤 마술사에게는 심혈을 쏟아야 하는 클라이맥스 마술을 그는 오프닝으로 보여주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가지였다. 그는 숨 쉴 틈조차 갖지 않고 연이어 세 개의 마술을 수행했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했다. 특히 상자에 들어간 여성의 순간이동 마술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관객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스피드 있는 진행은 마술의 숙련됨을 입증했다. 그 자신이 표현하는 농담, “클래스가 다르다”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는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화자찬을 즐겁게 하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환상의 세상을 설명했다. 그는 이야기를 품은 마술이 더 매력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서커스를 세계적인 예술로 격상시킨 ‘태양의 서커스’가 떠올랐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야기와 관련된 서커스 기술과 기예를 섞어서 하는 공연은 관객에게 즐거움뿐만 아니라 감동까지 전하기 마련이다. 이은결이 마술보다 일루션을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가 관객에게 들려주며 마술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솔직하고 다양했다. 마술을 준비하는 회의 시간과 아이디어 개발 과정은 힘든 시간일 텐데 유쾌한 이야기로 변했다. 비둘기나 앵무새는 마술사에게 매우 중요한 동반자이다. 오랫동안 함께한 새와 헤어지고, 새 짝을 만나서 호흡을 맞추는 과정도 이야기가 되었다. 어릴 적 꿈꾸며 그리던 로켓도 또 한 편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놀라운 점은 이야기의 다양성에만 있지 않았다. 이야기가 다르면, 그가 구현하는 마술도 달라졌다.

이야기에 빠져 감동을 느끼는 동안에도 그는 관객이 참여하는 마술에 도전했다. 관객 참여는 마술과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높였다. 마술에 필요한 물품을 들어주는 작은 참여부터 마술의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참여를 유도했다. 관객의 선정은 마술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특히 그를 좋아하는 어린이를 참여시키는 마술은 실패할 확률도 높다. 이날 7살 소녀가 참여한 마술은 성공했고, 관객의 감동도 배가되었다.

특히 그가 하는 공중부양 마술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보았을 마술이기에 식상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점을 새롭게 각색하고 관객이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마술사의 노력과 능력에 달린 일이다. 같은 기술이어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면 신선한 경험을 연출할 수 있다.

그의 공연이 갖는 차별점은 마술 자체보다 창의력과 기술이었다. 절단마술, 순간이동, 공중부양, 새 마술 등 쉽지 않은 마술이지만, 다른 마술사도 하는 것이다. 그가 해서 다른 마술사와 달았던 이유는 그의 창의력 덕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공연에는 마술이 아닌 요소가 있는데, 그의 기술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기술로 펼쳤던 공연이 더 감동적이고 감탄스러웠다. 더 이상 놀라운 마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무렵에 그의 기술이 새로운 유형의 공연을 이끌었다. 손을 사용한 공연은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하고, 연습했는지 탄식하게 만들었다. 그의 노력이 빚어낸 공연은 더 큰 감동을 자아냈다.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이은결의 일루션을 함께 본 사람과 평생 잊을 수 없는 환상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꾸던 21세기 만화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