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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Sep 27. 2023

자의식과잉 치료하기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야무지게 하고 승부욕도 뛰어났었다. 동생도 여럿 있어 철이 빨리 들어서 주위에서도 그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엄마가 말해준 일화가 생각난다. 빨래건조대 살과 살 사이에 허벅지가 들어가 낄 수 있을 만큼 작았던 시절, 그걸 혼자 빼내보겠다고 '아냐,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하며 스스로 응원하며 빼내려고 안간힘 썼다고 한다. 엄마는 옆에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데 나는 울지도 않고 할 수 있다는 집념(?)을 보여주며 끝내 빼내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 엄마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줄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잘되길 바라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AI뤼튼에 ‘뭐든지 잘할 것 같은 여성 이미지를 그려달라’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려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시도했으나 계속해서 실패했다. 청소년기엔 학생 운동선수였다. 잘하는 학교로 전학까지 가 고2 때까지 운동을 했다. 나도 열정적으로 부지런히 운동하고 대표팀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도 보면서 나도 저 사람들처럼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고2 때 그만두었다. 그만둬야만 했던 이유는 없었다. 뭐랄까, 사귀던 사이에도 큰 갈등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냥 마음이 식었던 것 같다.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도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20살 때는 재수를 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약간 기계적으로 나의 망한 내신성적을 입력하고 지원가능한 대학을 뽑아주며 여기 지원하면 되겠네~ 했지만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수를 결심했다. 나의 운동선수 경력과 성적 '비포'를 고려한다면 성공이지만 사실 누군가가 본다면 ‘재수했는데 거기밖에 못 갔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대학이다. 재수가 끝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생겼었다.

 

 가장 큰 좌절은 대학생 때였다. 전공도 매우 잘 맞고 재밌어서 1학년때부터 꼭 대학원에 가겠다고 결심했었다. 다소 오글거리지만 나의 진정한 사랑을 찾은 것처럼 평생 이걸 공부해도 고통스럽거나 인생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인정도 원하는 만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당연히 대학원에 가서 석박사 과정을 해야 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능력도 되고 열정도 충분하고 각종 장학금제도가 있으니 환경도 그리 방해요소가 아니었는데 이때부터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가 ‘엄마의 나르시시즘’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어떻게 그리 살았나 싶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여 학보사 기자를 했었는데 학보사기자는 교내활동 중 가장 바쁜 활동으로 꼽히곤 한다. 거기에 근로장학도 했었다. 휴학 중이었던 것도 아니고 학기 중이었다. 학점도 19학점이었나. 그 맘때 정말 이상한 정신과 의사를 만나 오진을 당해 각종 약물을 투약당하고 있었을 시절이라 (나중에 이것에 대해서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애초에 약물이 ‘거의’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오진으로 인한 잘못된 약물 투여로 인해 말 그대로 자살직전까지 몰렸었다)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불안정하며 자살생각이 계속 침습적으로 들었었다. 약 부작용으로 인해 월경을 잘하지 않아 부인과에 가니 뇌에 종양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단약 하니 정상 수치가 되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입양한 강아지의 퍼피트레이닝도 내가 도맡아 했던 터라 하루에 3번 이상 나가야 하는 산책 중 두 번은 내가 나가고 있었다. 과로와 약부작용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서 식사는커녕 냉장고 문도 열지 못하고 계속해서 음료만 마시고 설사도 매일 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생겨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스케줄이 팍팍하여 화장실을 갈 시간도 부족했다. 화장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더 심하게 배가 아팠다. 우리 엄마는 내가 이러한 고통을 토로하자 학생 기자활동을 그만두고 주말에 쿠팡물류센터에 나가 일을 더 하라고 했다. 뭐, 경제적으로 억압당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한 달에 용돈 30만 원만 달라고 했더니 ‘감히 그런 소리를 하냐.’는 식의 비아냥만 돌아왔다.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었다고 하면 ‘너 알아서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성과를 내고 칭찬을 받으면 하나하나 반박하여 무기력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대학원얘기를 꺼냈을 땐……다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수 학기 동안 이러한 일들을 겪다가 나는 학업을 반쯤 포기했다. 도저히 학교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분노와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주변인들에겐 ‘나중에 여건이 되면 다시 가야지.’라고 태연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역설적이지만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며 더 넓은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출처:

https://youtu.be/x-KnsdKWNpQ?si=4_nCZ6VZPzmxwCYK

 최재천교수는 생물학자라 그런지 이런 식으로 ‘삶의 무상함.’을 자주 말하는 것 같다. 생물은 원래  ‘행복과 안녕'보단 번식을 위해 산다고.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점' 영상

출처:https://youtu.be/x-KnsdKWNpQ?si=X0sV1wvw2j4pHZkI

이 영상의 주요한 메시지는 지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조그마하게 찍힌 지구사진을 보면 ‘저 좁아터진 지구에서 잘살아 봤자 얼마나 잘살겠나, 무슨 의미가 있겠나.’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벌써 박사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아니 박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자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다면 정말 진짜로 인류의 단비 같은 연구를 해서 엄청난 명예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애초에 그런 사람은 인류사에 극히 드물다. 최근에 나온 영화 ‘오펜하이머’를 떠올려보자면 핵무기를 개발하여 종전을 이끌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온 것만으로 판단해 보자면 그의 삶에 ‘행복’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슴 뛰고 역동적인 삶’ 일 순 있어도.

 

 사실 이런 상상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나는 정신과에서 오진을 당해 각종 약물을 투약당하고 주치의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할 시기에 ‘정상인’들을 참 부러워했다. 정신병만 없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매우 많이 했다. 오진당했단 사실이 밝혀지고 단약 한 지 1년째가 된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물론 행복감은 파격적으로 상승하고 마음도 건강해졌지만, 객관적으로 학교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복학하지 못했다. 언제 복학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알바로는 겨우 달에 40만 원 정도 벌고 있어 늘 돈이 빠듯하고 필요한 물건 사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일을 더 하면 당연히 더 벌 수 있지만 사회성과 주의력, 일머리가 부족한 건 여전히 마찬가지라 할 만한 일을 구하기가 까다롭다. 얘기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여전히 친구가 없다. 그러니까 마음이 건강해져서 행복해진 것이지 삶이 확 바뀐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매일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는 중한 정신과환자였다가 ‘멘털튼튼이’가 되었는데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단한 사람이 되진 못했을 거다라는 생각이 ‘저건 신포도일 거야!’하는 여우의 생각 같을 수 있으나 나는 이게 맞는 것 같다. 인간 한 명의 능력 맥시멈은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김미경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돈 많은 남편은 집에 잘 안 들어온다.’고. 그러니까 경제력이 부족한 남편을 둔 아내들은 돈 많은 남편을 갈망하고 집에 잘 안 들어오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늘 곁에 있어주는 남편을 갈망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경제력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이고 일장일단이 늘 존재한다는 뜻.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며, 대단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최재천교수처럼 나도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단 매 순간을 사는 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인듯하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안되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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