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화 아닌 책도 읽고요.
임산부 시절의 나는 '태교'에 비관적이었다. 아이 가졌는데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해야지, 같은 말들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모든 것을 오로지 아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 같아서였다. 그저 나를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평소보다 좀 많이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다소 안일한 마음으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 잠을 많이 자고 음악을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다가 산책을 많이 하곤 돌아와서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많이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산책코스는 중간에 컵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이 있는 길이었는데(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떡볶이 요정이다...) 그 끝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싶던 시기라 별 망설임 없이 그곳에 들어가게 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린이 도서관에는 책이 정-말 많았다. (당연하잖아!) 세상에, 동화책이 이렇게 많다니. 약간 이런 기분으로 서가를 헤맸다. 어떤 책을 볼까, 이건가 저건가, 표지랑 제목들을 둘러보고 책장을 몇 장 넘겨보며 작가도 출판사도 시리즈도 전혀 모르겠는 책들 속에서 나는 좀 막막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이 됐던 것 같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의 느낌이랄까. 내가 몰랐던 이토록 방대한 세계가 있다니! 이렇게 읽을 게 많다니!!! 활자 중독자(aka트잉여)는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즈음 헤매다가 처음 집어 들었던 책이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였다. 그림체가 굉장히 독특해 호기심이 생겼고 익숙한 작가의 이름도 한몫했다. 태어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아이가 비로소 태어나는 이야기. 숙제를 하며 재잘거리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책장을 덮고 그 위에 손바닥을 올린 채로 가만히 멈춰있었다. 햇살이 비추던 그 오후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전히 아이가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어쩌다 나와 만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이 보다 더 잘, 그리고 아름답게 풀어낸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그제야 알았다. 훌륭한 동화책은 아주 좋은 문학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도서관에 가 하루에 한두 시간씩 동화책을 읽다오곤 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빌려가지고 와서 남편과 함께 배 속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갓 낳은 아이를 내 가슴께에 얹고 가장 먼저 한 일도 남편과 동화책을 읽어준 것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순간을 사랑한다. 원래 책은 속으로 읽는 건데 그걸 소리 내어 함께 읽는다는 게, 어떤 마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책 읽기’ 역시 내겐 육아노동의 일부분이지만 그래도 새벽 수유나 수면교육 같은 것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낭만적인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숨겨뒀던 혼잣말을 털어내는 것 같고 약속의 말 같기도 하고 하여튼 함께 목소리를 내고 그림을 짚어가며 책을 읽는 일이 우리를 '느낌의 공동체'로 데려다준다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어린이책이 아이들만큼이나 그들의 양육자들을 위한 책이라고도 생각하기에(차차 쓰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게 해 준 많은 책들이 있었다.) 이제 어린이책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됐다.
그래서 나름대로 채워온 아이의 책장 속 동화책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나의 책장에 대해서도 함께. 하여튼 책은 여전히 많이 읽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