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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m Jul 08. 2019

3분은 너무 길어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06



현재 빌보드 Hot 100에서는 Lil Nas X의 'Old Town Road(Remix)'가 9주째 장기집권 중이다. 이 리믹스 버전의 원곡이자 올해 4월 빌보드 Hot 100에서 1위를 한 'Old Town Road'의 러닝타임은 1분 53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이냐 하면, 2017년의 메가 히트곡인 Lil Pump의 'Gucci Gang'은 2분 4초인데, 이 곡이  지난 42년간 가장 짧은 빌보드 차트 Top 10 곡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42년 동안 10위 안에 든 가장 짧은 곡이 2분 4초짜리 곡이었는데(이것도 놀라운데), 갑자기 1분대 곡이 1위를 해버린 것이다.



연도별 평균 노래 길이 (출처 : Music Brainz)



그런데 사실 2분이 채 안 되는 노래가 인기를 얻은 것이 'Old Town Road'가 처음은 아니다.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60년대에는 노래의 평균 길이가 2분 30초 정도에 불과하다. 빌보드 Hot 100 역대 No.1 노래 중에도 'Old Town Road'보다 짧은 곡이 4개나 있고, 모두 6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역대 최단 곡은 'Maurice Williams & the Zodiacs의 'Stay'이다. 들으면 무슨 노래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면 'Old Town Road'는 2020년대의 음악이 1960년대와 같아질 것을 예견하는 곡일까? 물론 노래의 길이가 짧아지는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Hot 100에 오른 노래들의 평균 길이는 2013년에는 3분 50초, 2018년에는 3분 30초로 5년 사이 20초나 짧아졌다. 이에 대해 미국 경제지 '쿼츠'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함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노래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게 된다. 'Gucci Gang'이 지난 42년 동안 10위 안에 든 가장 짧은 곡이 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Old Town Road'의 성공은 'Gucci Gang'의 히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틱톡 때문이다.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오나나송을 비롯하여 틱톡에서 수없이 패러디되며 밈으로서 인기를 얻은 곡들이 있는데, 이 곡은 그런 유행이  빌보드 장기집권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Old Town Road'의 성공이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노래들이 점점 더 짧아질 거라는 사실이 아니라, 밈으로서의 유행이 3분 히트곡의 법칙도 깨버릴 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45초에 불과한 Pikotaro의 'PPAP'가 역대 가장 짧은 빌보드 Hot 100 곡이 되는 식의 일은 앞으로 더 흔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밈으로서 소비되는 음악에 대해 다루면 좋겠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사실 유행을 잘 모르는 아싸라 대신 1분대의 짧은 곡들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앨범들을 가지고 왔다. 작년 5월부터 6개월 간격으로 나온 3개의 힙합 앨범이다.






1.Tierra Whack - [Whack World]



Tierra Whack의 [Whack World]는 모든 수록곡의 길이가 1분으로 동일하다. 그래서 사전 지식 없이 멜론으로 들으면, 미리 듣기를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bpm도 다른 15곡을 1분으로 맞추다 보니 노래가 갑자기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렇다. Tierra Whack의 랩도 물론 훌륭하지만, 정확하게 같은 크기로 자른 케이크를 하나씩 먹게 하는 듯한 이 대담한 시도는 청자들에게 노래는 3분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의 1분 클립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앨범 전체를 가지고 만든 뮤직비디오가 정말 훌륭하다. 스윙스의 자기암시 곡  하나보다도 짧은 시간이면 15개의 창의성으로 빛나는 이 뮤비를 볼 수 있다.






2. Earl Sweatshirt - [Some Rap Songs]



작년 11월 발매된 Earl Sweatshirt의 [Some Rap Songs]은 성의 없어 보이는 앨범 제목과 2곡을 빼면 1분대의 짧은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Whack World]가 의도적으로 곡들 간의 단절을 부각시켰다면, 반대로 [Some Rap Songs]는 마치 하나의 노래처럼 느껴진다. 작년 초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발매된 이 앨범에서 그는 일관된 정서 속에서 23분간 끊임없이 랩을 한다. 그래서 '몇몇 랩 송들'이지만 앨범 단위로 들어야 한다. 






3. 버벌진트 - [이것은 음악인가 업무보고서인가]



올해 5월 발매된 버벌진트의 [이것은 음악인가 업무보고서인가]에서 버벌진트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마치 업무를 보고하듯이 이야기한다. 심지어 '1월의 업무보고'부터 '3월의 업무보고'까지는 비트도 똑같다. 그래서 정말로 이것도 음악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스윙스의 자기암시도 음원으로 나오는 마당에 그런 질문은 이제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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