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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Mar 29. 2024

28.킵 고잉

 늦은 가을장마가 한 창이던 10월이었다. 서울 용산에 내가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에 반바지 차림으로 서울행 지하철을 탔다. 바지 밑으로 여름의 꿉꿉함과 목 뒤로는 가을바람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날씨였다.


수십 점이 걸려있는 작품 중에서 딱 내 것이 눈에 띄었다. 다른 이 들에 비해 두 배는 크게 출력한 덕분일까 자리도 좋은 곳에 배정받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후후. 내가 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직 최우수 작품도 아니고 대회 입선 수준인 만큼 뒤에서 구경만 했다. 어쩌면 대형으로 출력하는 비용을 고려하며 대회 측에서 노력이 가상하다고 입선시켜주었는지도…….;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운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나에게 있어 이번 일은 행운이 99%였을 거다.

‘네가 무슨 사진을 찍어서 공모전에 제출하냐?’이라는 핀잔 섞인 질문을 몇 번 받았다. 차마, 시켜서 라고는 못하겠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라고 듣기 좋게 포장했다. 매년 반복되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신문과 인터넷 한 페이지를 차지했을 때, ‘이런 장면이면 나도 찍겠다.'라고 건방짐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겁 없이 덤빈 무모함 덕분에 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을 넓힌 결과였다. 좋은 성과 얻은 건 둘째였고.     


 글쓰기를 시작한 일도 지금까지 벌인 것 중에서 제일 잘한 일이었다. 늘 당신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자신만의 주체성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시중에 나온 자기계발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추려지는 내용이 있다. 작가가 지금껏 살면서 겪은 이야기, 극복한 과정과 팁은 덤이다. 그러나 그 자체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저 의미 없이 공중에 떠다니는 라디오의 주파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나마 작가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감동하여 하루 이틀이라도 변한다면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얼마 못 가 자책하기 일쑤.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주체적인 삶''삶의 주인'을 하기 위해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은 있기나 할까?. 만화나 공상 sf 영화 속 주인공처럼 버튼 하나 누르면 쉽게 ‘딱!'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2015년도 즈음 유튜브에 푹 빠져 있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악을 듣는 용도 외에는 알 수 없는 불특정 알고리즘에 의해 무작위로 추천되는 영상의 홍수가 거북해 쳐다도 안 보던 나였다. 모든 건 영상 속 언니의 독설 저자 김미경을 만나게 된 이후부터였다.


 40대를 넘긴 대한민국 아줌마. 하얀 투피스 차림으로 낮은 굽의 힐까지 신고 무대의 가운데 서서는, 청중들 앞을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말하는데, 목에 핏대가 설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떤 사람은 입을 가리면서 웃기도 했다. 수 십 대의 카메라는 장면 하나하나를 담아냈다.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실제 그녀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요, ‘저는 뭐가 될 거에요.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어요. 어디 어디를 가고 싶어요.'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 대부분 지금 뭐 하고 있는 줄 알아요? 평범한 회사 다니고 있고, 가정에서 애 보면서 있고 누구는 퇴근하고 동료들이랑 술 마시러 가요. 그런데도 꿈은 가지고 있어요.”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오해할 수도 있다. ‘아니, 사람이 꿈이 있어야지, 그럼 꿈도 없이 살란 말인가?’     

"꿈은요, 지금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서 지금 계획하고 실행하는 거예요. 그걸 ‘사' 자 들어가는 전문직이 되어야 하거나 어디 유명한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계획하는 겁니다. 꿈을 이루려면 뭘 해야 해요? 계획해야죠. 아이 엄마는 건강하게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험, 운동 계획을 세우고 직장인은 좀 더 나은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2005년 김미경 영상 중-     


 충격이었다. 수년째 제때 나오는 ‘월급의 노예'가 된 것 같아 뭔가 ‘새로운 일'을 찾고 싶어 사표를 내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이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말 그대로다. 월급쟁이로 살아온 내가, 노동력과 그의 가치를 맞바꾸어온 내가, 회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을 때 원하던 꿈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가 '왜 이제야 왔어. 한참을 기다렸잖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직장을 선택했을 때 제일 첫 번째로 고려했던 건 고정적으로 지급될 수 있는 안정성이었다. 이전 부모님이 겪었던 IMF 시대와 경제 대공황이라 불렸던 2000년대 말, 사업에 실패한 한 남자의 인생은 어떤 모습인지 두 눈으로 봤으니까. 그것도 두 번이나.

그래서일 거다. 내 직업의 선택 기준은 무조건 돈이었다. 그런 삶을 수년째하고 있다가 40대 언니의 쓰디쓴 독설을 맞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내 꿈은 무엇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단순하게 ‘여기가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다.’라는 이유보다, 지금 직장 자체를 꿈 터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다짐. 지금껏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 한 건 분명 ‘남이 쥐고 있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노력일 뿐이었으니까.


 우선은 마음을 바꿨다.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 중에서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해보자.'라는 것과 ‘더'라는 곳에 초점을 뒀다. 그렇게 시작된 내 인생의 두 번째 공부. 아니 인생 탐구를 위한 첫 번째 공부였다.

 수능 시험 성적이 잘 나오기 위한 점수가 아니라 내 인생의 진로 탐색을 위한 시간. 정해진 답과 해설은 없다. 오로지 문제, 지금 이곳을 ‘꿈터'로 만드는 방법 찾기. 이미 대학교도 졸업했으니, 대학원 아니, 평생 교육원이라도 가입하여 공부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 역시 참고할 수준이지 내가 원하는 답은 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출근 전 아침에 일어나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도서관과 카페를 찾아 노트북을 편다. 앞으로도 계속 쓸 거다. 건방진 바램은 죽는 순간까지 썼으면 한다.

 23년도에는 책을 끝까지 완독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독서 초보 탈출하는 방법3까지’를 완성해 온라인으로 출간했다.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야, 하나둘 따지고 보면 개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따라가야 해서 그 끝은 셀 수 없다.


 다만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독서 초보 중에 중간 정도쯤 되니까, 아예 책 한 권도 완독하지 못하는 ‘왕초보'의 딱지는 뗀 셈이다. 그러니 나만의 초보 딱지를 떼는 3가지 비법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셈.

 앞으로는 ‘남들의 눈치 보지 않는 법’,‘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법’ 등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열등감에 휩싸여 보내느라 낭비한 시간이 누구에게는 인생‘왕초보' 딱지를 뗄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뿔테안경을 쓰고 아들러의 심리학을 한 손에 들고 다니며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 다거나 주변에 재능기부라도 해서 강연을 나갈 수 있도록 계속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 꿈에는 완전하게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밑을 받쳐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눈이 아프다. 오늘은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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